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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적인 헤어스타일의 역무원을 만났던 인터라켄 동역.
엽기적인 헤어스타일의 역무원을 만났던 인터라켄 동역. ⓒ 김태우
스위스의 인터라켄에서 만난 역무원의 헤어 스타일은 정말 특이했다. 앞에서 보면 분명 반질반질한 대머리인데, 뒤에서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반짝이는 대머리에 금발의 꽁지 머리를 기른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역무원의 헤어 스타일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헤어 스타일을 트집 잡지 않는 그 사회에 매력을 느꼈다.

대걸레 자루가 공중을 가르고, 성적표로 학생의 미래가 미리 결정되는 교실에서 불우한 학창 시절을 보냈던 나는 헤어 스타일과 관련해 사회적 억압을 받았다. 선생님들은 우리의 복장과 헤어 스타일이 곧 우리의 정신 상태이며, 가치관, 미래라고 귀가 따갑도록 말했다.

의학적, 사회적으로 어떤 연구가 이를 입증하는 것일까. 헤어 스타일이 바뀌면 그 사람의 정신 상태와 가치관에도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것일까. 한국 사회에서 왜 한 개인의 헤어 스타일이 그의 가치관과 정신 상태로 받아들여지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 방학을 2주 앞두고 머리를 빡빡 밀었던 적이 있었다. 당시 내가 잘 따르던, 소위 일류 대학교에 다니던 형이 "고등학교 2학년 여름 방학 때부터라도 열심히 공부하면 얼마든지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말 때문이었다.

일류 대학에 가고 싶은 꿈은 애당초 없었지만 나는 꼭 진학하고 싶은 과(科)가 있었다. 비록 충동적이기는 했지만 이발소의 회오리 네온 사인 앞에서 나는 결심했다. 잘려 나가는 머리카락을 거울을 통해 바라보며 나는 숙연해졌다. 그 순간 내가 대단한 결단력을 가지고 있으며 뭔가 이루어낼 수 있다는 감정으로 충만했다. 집안에서도 나의 삭발을 대환영했다.

사건은 그 다음 날 일어났다. 조회 시간이 거의 다 끝나갈 무렵, 담임 선생님의 시선에 달라진 나의 헤어 스타일이 들어왔다. 이미 등교하자마자 아이들의 놀람과 놀림을 동시에 겪은 터라 나는 담담한 마음으로 담임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담임 선생님은 나를 보며 툭 한마디를 던졌다. "너 반항하고 싶냐?"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대단한 결단의 상징이었던 삭발은 순식간에 반항의 상징으로 돌변했다. 교실은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되었다.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나는 그 당시의 모욕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헤어 스타일은 정신 상태도 아니고, 가치관도 아니고, 누군가의 미래나 확고한 신념을 보여 주는 거울도 아니다. 헤어 스타일은 그저 헤어 스타일일 뿐이다. 이 단순한 사실이 왜 그토록 왜곡되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우린 그저 누군가의 헤어 스타일을 헤어 스타일로 인정해주면 된다.

잘 어울리지 않는 헤어 스타일이 있을 망정, 나쁜 헤어 스타일은 없다. 헤어 스타일은 단지 그 사람의 취향과 기호일 뿐이다. 만약 누군가의 정신 상태나 가치관이 궁금하다면 마음을 열고,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누어 보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인터라켄의 역무원이 부러웠고, 그를 역무원으로 채용하면서 그의 헤어 스타일을 트집 잡지 않는 스위스 철도청이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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