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의 땅 제주에서 천주교인과 제주도민들간 충돌로 빚어진 1901년 신축 제주항쟁(일명 '이재수의 난')이 발생한지 100여년 만에 교인과 도민들간의 공식 화해가 이뤄졌다.
1901년 제주항쟁기념사업회(공동 김영훈.김창선)와 천주교제주교구(교구장 강우일)는 7일 '화해와 기념'을 주제로 한 제주항쟁 102주년 기념학술대회가 열린 제주시 열린정보센터에서 '화해와 기념을 위한 미래선언'을 채택. 선포했다.
이들은 "100년 전 제주에서 일어난 역사적 진실을 제대로 밝히고 올바른 해결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며 "사건이 일어난 지 102주년이 되는 해를 맞이해 화해 선언을 대내외에 선포한다"고 말했다.
이날 천주교측은 "과거 교회가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동양 강점을 위한 치열한 각축의 시기에 선교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제주민중의 저항을 불러일으켰던 과거의 잘못을 사과한다"고 밝혔다.
또 제주도민을 대표한 '1901년 제주항쟁 기념사업회'는 "봉건왕조의 압제와 외세의 침탈에 맞서 분연히 항쟁하는 과정에서 많은 천주교인과 무고한 인명 살상의 비극을 초래한 데 대하여 사과한다"고 답했다.
이들은 이어 "우리는 제주의 후손들로서 지난날의 아픔을 함께 하면서 서로 용서하고 화해를 구하고자 한다"며 "향우 과거사의 진실을 명백히 밝히고 제주공동체의 화합과 상생의 길로 나아가고자 적극 노력한다"고 밝혔다.
한편 공동 채택문에 앞서 '화해와 기념'을 주제로 한 심포지움이 제주시 열린정보센터에서 열렸다.
이날 '역사적 기억과 화해'(박찬식 역사학자), '한말 천주교와 제주 전통사회의 만남'(문창우 제주교구청 교육국장), '신축 제주항쟁, 기념사업 어떻게 할 것인가?(박경훈 제주민예총 부지회장)'에 대한 주제발표가 있었다.
또 임문철(제주중앙성당 주임신부), 강호남(제주도의회 의원), 우윤(전주 역사박물관장), 김영범(대구대 교수)가 주제발제 토론자로 참여했다.
한편, 기념행사 참가자들은 오는 16일 100여년 전에 천주교도들과의 전투가 벌어졌던 '관덕정'과 민군들이 집결했던 당시 제주읍성 내 '황사평', '대정읍 삼의사비'가 있는 대정성지 및 대정향교 등 당시의 역사적 현장을 돌아보는 '이재수 난의 발자취를 따라서'를 주제로 한 역사기행에 나선다.
▲<화해 의미> 대통령 4.3 공식사과 이어 천주교회. 도민 동시 '공식사과'
대통령의 제주4.3에 대한 공식 사과에 이어 제주도민과 천주교인들이 '화해를 위한 미래선언' 채택으로 한(恨)이 서린 땅 제주가 또 다른 역사의 전환점을 맞고 있다.
이번 공동선언문 채택은 100년 넘게 '민중항쟁'과 '신축교난(敎難)'이라는 학계 및 사계와 천주교계간의 현격한 시각 차이를 빚어왔던 제주민란('이재수의 난')의 위상을 새롭게 정립한다는데 의미가 있다.
도민의 항쟁 등의 시각에서 보는 역사학계, 사회단체와 당시 첨예한 대립과 갈등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던 천주교계가 공동으로 나서 역사적 화해는 물론 문화, 종교적 화해까지 거론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특히 올해 '제주항쟁’(이재수의 난) 발생 102주년을 기념하여 열리는 학술대회를 통해 '화해와 기념의 미래선언'을 대외적으로 선포, 향후 상호 존중의 기조 위에서 과거의 잘못을 서로 반성하고 모두 다 같은 제주 공동체로서 화합과 상생의 길로 나아가고자 한다"는 취지를 명백히 밝혔다.
특히 이들은 "102년 전 이 땅 제주에서 일어난 사건을 제주 공동체 모두의 경험과 해결과제로 받아들이고자 한다"며 "지나온 시기에 각자 다른 입장에서 평행선을 그려왔던 사건의 평가를 접어주고 서로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는 관용의 정신을 소중히 여기겠다"고 밝힌 것은 제주가 화해와 상생을 위한 평화의 섬으로 자리매김하는데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역사학자 박찬식씨(43.제주대)는 "제주근현대사에서 공동체 분열을 가져왔던 두 사건 중 하나인 '4.3'이 대통령의 사과로 공식성을 인정받은데 이어 100년 전 제주항쟁이 화합과 상생의 정신으로 공식사과를 한 것은 매우 의미가 깊다"며 "'기억 외면'에서 '기억 충돌'로 갔던 시대를 접고 '기억 화합'을 천명한 것은 근현대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일로 평가할 만 하다"고 말했다.
| | 천주교인과 제주도민의 화해가 있기까지 | | | '역사.문화.종교적 화해를 통한 공동체 복원 의의' | | | |
| | ▲ 1901년 제주항쟁 제100주년 기념 학술대회 표지로 쓴 영화 '이재수의 난' 한 장면. 이재수가 '대정창의(大靜倡義)' 깃발을 들고 달려가고 있다. | ⓒ양김진웅 | | 2001년 12월 초 제주에서는 1901년 제주항쟁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공동대표 김영훈·김창선)와 천주교 제주교구(당시 교구장 김창렬)가 공동주최하고 제주도사연구회와 역사학연구소가 주관한 '진실과 화해'를 주제로 한 '1901년 제주항쟁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가 연 바 있다.
당시 각계 참석자 100여 명은 "그 간의 갈등을 씻고 진정한 화해를 위해서 역사적 흔적지에 '화해의 탑'을 세우고 도민과 천주교계가 함께 참여하는 '공동선언문'을 만들자"고 제안했었다.
당시 한말 한반도와 제주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던 이재수난을 재조명하는 작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안팎으로 많은 관심을 끌었지만 공식 화해의 '열매'까지는 거두지 못했다.
참가자들은 당시 "정치, 경제, 문화, 종교적 관점에서의 깊은 연구와 논의도 필요하지만 생명 존중의 인식하에서 서로 화해하는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
이 과정에서 서문천주교회 임문철 신부는 "학계와 도민들이 천주교와 함께 공동 연구회를 꾸려 올해 안으로 화해를 위한 '공동선언문'을 선포하자"고 제기하기도 했다.
천주교측 문창우 신부(천주교 제주교구 교육국장)는 발제문을 통해 "신축교안 당시 교회는 교회다운 모습인지, 종교에 있어서도 그리스도교는 과연 종교적 행위를 표현했는지 반성이 요구된다"며 "종교가 폭력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종교를 잘못 이해한 데서 생긴 것"이라고 '바티칸 2차공의회'의 관점에서 신축교안에 대한 신학적 반성의 견해를 밝힌 바 있다.
당시 참석한 소설가 오성찬씨는 "천주교 공동묘지가 들어선 황사평이나 대정삼의사비 등의 역사적 흔적지에 '화해의 탑'을 세우자"고 제기, 상징 기념물에 대한 중요성을 처음 언급하기도 했다.
이와앞서 한국천주교회는 2000년 12월 3일 과거 210여년의 한국교회사에서 잘못한 일에 대해 반성하는 문건을 발표하고, 전국 각 성당에서 이 잘못들을 고백하며 용서를 청하는 참회 예식을 거행한 바 있다.
당시 교인들은 박해시대때 외세에 힘입어 신앙의 자유를 지키려 했던 점, 일제 식민통치 당시 독립운동에 앞장서는 신자들을 이해하지 못한 점,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인권 및 복지증진에 노력을 다하지 않은 점 등을 고백했다.
하지만 주교회의에서 당연히 거론돼야 할 1901년 제주항쟁(제주민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결국 천주교측은 2001년 '진실과 화해'라는 주제로 기념행사를 가진데 이어 2년이 지난 이날 '화해와 기념의 미래선언'을 대회적으로 선포함으로써 관용의 정신으로서 역사의 아픔을 재조명하는데 기꺼이 참여했다.
이날 천주교측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사목헌장 제3장에서 밝히고 있듯이 교회의 유일한 소망은 진리를 증언하는 것이며, 판단하기 보다 구원하고, 봉사를 받기보다는 봉사라허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의 삶을 지속시키는 것"이라는 종교 본래의 입장을 밝혔다.
이어 천주교인들은 "'화해와 기념의 미래선언'을 통해 향후 상호 존중의 기조위에서 과거의 잘못을 서로 반성하고, 같은 제주공동체로서 화합과 상생의 길로 나아가고자 한다"며 역사.문화.종교적 화해를 통한 공동체 복원을 선언, 100년을 넘긴 갈등과 반목의 역사를 극복해냈다.
/ 양김진웅 | | | | |
| | <'화해와 기념을 위한 미래선언'전문> | | | '무고한 인명 살상의 비극 사과' | | | | 1901년 변방의 섬 제주에서는 제주도민과 천주교인 사이에 커다란 갈등이 빚어졌다. ‘신축년항쟁’ ‘이재수란’ ‘신축교안’ 등으로 불리는 이 역사적 사건은 20세기 벽두에 한국 사회가 근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외래문화와 토착전통문화, 외세와 대한제국, 국가와 지방 사이의 충돌로 일어났다.
지난 2001년 12월 1일 '1901년 제주항쟁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와 '천주교 제주교구'는 ‘진실과 화해’라는 주제를 내걸고 공동으로 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는 100년 전의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밝히고 올바른 해결의 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하였던 것이다.
당시 학술대회 자리에서 ‘화해를 위한 올바른 방향 모색’의 취지로 다양한 논의를 거친 끝에 기념사업회와 천주교 측 양자가 합의하여 제주도민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발표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우리는 이러한 약속을 근거로 대화를 지속시켜 왔다.
이제 사건이 일어난 지 102주년이 되는 때를 맞이하여 다음과 같이 ‘화해와 기념의 미래 선언’을 채택하여 대외적으로 선포한다.
우리는 100년 전 이 땅 제주에서 일어난 일을 제주 공동체 모두의 경험과 해결 과제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지나온 시기에 각자 다른 입장에서 평행선을 그려왔던 사건의 역사적 학문적 평가를 향후 과제로 남기면서, 서로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는 관용의 정신을 소중히 여기고자 한다.
천주교 측은 과거 교회가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동양 강점을 위한 치열한 각축의 시기에 선교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제주민중의 저항을 불러일으켰던 과거의 잘못을 사과한다.
제주도민을 대표한 '1901년 제주항쟁기념사업회'는 봉건왕조의 압제와 외세의 침탈에 맞서 분연히 항쟁하는 과정에서 많은 천주교인과 무고한 인명 살상의 비극을 초래한 데 대하여 사과한다.
이에 우리는 제주의 후손들로서 지난날의 아픔을 함께 하면서 서로 용서하며 화해를 구하고자 한다.
우리는 향후 상호 존중의 기조 위에서 과거사의 진실을 명명백백히 밝힐 것이며 또한 이를 바탕으로 제주 공동체의 화합과 상생의 길로 나아가고자 적극 노력한다.
우리는 향후 제주 공동체의 미래 발전을 위한 사업을 공동으로 구상하고 추진하며, 각자의 기념사업에 대해서는 서로의 독특한 문화적 가치관을 충분히 존중해 시행하도록 한다.
2003년 11월 7일
1901년 제주항쟁기념사업회 (대표 김영훈ㆍ김창선)
천주교 제주교구 (교구장 강우일)
/ 양김진웅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