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 失業의 대낮에 시장 바닥을 어슬렁거리면,
그러나 아직, 나는 아직, 바닥에 이르려면 아직, 멀었구나
까마득하게 멀었구나
나는 탄식한다
아, 솔직히 말하겠다 까마득하게 멀리 보인다
까마득하게 멀리 있는 것이 보인다 내 발 바로 아래에 놓인,
비닐 보자기 위에 널퍼덕하게 깔아놓은,
저 냉이, 씀바귀, 쑥, 돌갓, 느릅나무 따위들이여,
그리고 그 옆의, 마찬가지로 널퍼덕하게 깔아놓은,
저 멸치, 미역, 파래, 청강, 김가루, 노가리 등이여
그리고 또 그 옆의, 마찬가지로 널퍼덕하게 깔아 놓고 앉아서,
스테인레스 칼로 홍합을 까고 있는,
혹은 바지락 하나하나를 까고 있는,
혹은 감자 껍질을 벗겨 물 속에 넣고 있는,
바로 내 발 아래에 있는, 짓뭉개져 있는,
저 머나먼, 추운 바닥이여,
나의 어머님이시여
황지우 詩<신림동 바닥에서> 전문
"나는 아직, 바닥에 이르려면 아직, 멀었구나/까마득하게 멀었구나"라고 탄식하며 시인은 그 바닥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해 낸다. 어느 새 시장 사람들과 그의 어머니가 동류항으로 묶인다.
난 어렸을 적에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어머니, 아버지는 광주 시내에서 장사를 하시기 때문이었다. 아직 시집 안 간 고모 두 분과 누이동생. 모두 여섯 식구가 서마지기 논배미와 대여섯 마지기 밭떼기에 죽어라 매달렸다. 더러는 누에를 키우는 등 부업거리가 없지 않았지만 주업은 어디까지나 논농사였기 때문이다.
어린 나도 한 몫 거들지 않을 수 없었다. 토방 속으로 길게 굴을 뚫은 닭장 속에 가둬둔 닭들에게 모이를 준다거나 소를 비롯한 가축들에게 줄 꼴을 뜯는 것이 내 소관이었다. 새벽에 일어나면 먼저 닭장의 입구를 막아놓은 돌을 치운다. 그리고 토굴 속을 들여다보고 새로 낳은 달걀이 있으면 슬그머니 끄집어낸다. 이렇게 해서 달걀이 열 개 이상 모이면 짚으로 꾸러미를 엮어 시원한 광에 보관해둔다.
이윽고 광주 서방 장날이 되면 동네 사람들은 새벽부터 야단법석을 떤다. 서방 말바우 시장에서 열리는 5일장에 가서 쌀이나 팥, 콩 등 곡물을 '사고' 대신 석유 기름이나 미원 따위의 생필품을 사오는 것이다.
가을에는 두어 접 남짓 홍시를 집어넣은 짚동을 지게에 지고 가서 판다. 어디 길이나 만만한가. 새벽에 출발해서 고개를 오르고 내려서며 산길 오십리 길을 허위허위 걸어가야 한다. 소방서에서 부는 열 두시를 알리는 오포 소리가 난 뒤에야 말바우 장터에 도착하는 것이다.
때로는 나도 어린 장꾼이 되었다. 나도 달걀 두 줄을 달랑 옆에 차고 할머니를 따라간다. 가파른 고갯길이 무척이나 힘들어 걸핏하면 난 뒤로 처지기 일쑤였다.
"할머니, 같이 가" 부르면 힐끔 한 번 뒤돌아 볼 뿐 할머니는 결코 걸음걸이를 늦추는 법이 없으셨다. 그래도 난 불평 한마디 쏟아내지 못한다. 그리되면 할머니는 다음 장엔 날 데리고 오시지 않으실 게 뻔하기 때문이다. 삶에는 침묵을 대가로 지불해야 얻어지는 평화가 너무 많다.
장에는 촌놈인 내겐 처음 보는 신기한 것도 많았고 먹을 것도 지천이었다.
"자, 튀밥 튀어요. 귀막어요!!"
"펑"
튀밥 장수며 고무신 떨어진 데를 기워주는 신기료 장수를 구경하기도 하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마솥에서 끄집어내는 붕어빵이나 찐빵이나 만두 그리고 투가리에 말아주는 국밥을 먹기도 했다.
어쩌다 꿈에 떡본 듯 할머니가 다이야표 통고무신이라도 한 켤레 사주시는 날에는 그야말로 머리가 하늘까지 닿을 것 같은 황홀한 기분이었다.
마르크스가 그랬던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인간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그 말을 조금 풀이하자면 자본주의는 인간의 이기심에 바탕을 둔 제도라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시장이란 자본주의의 꽃이기도 하다. 하나의 이기심이 하나의 이기심과 절묘하게 만나는 곳이 시장이다. 이윽고 맘에 드는 물건이 눈에 띄면 흥정이 시작된다. 간혹 긴장으로 넘쳐 팽팽하게 진행되는 수도 있지만.
"어디 사는 아무개 아요?"
"아다 마다. 나랑 형님 동상허는 사인디라우."
이렇게 얽히고 섥힌 인간 관계가 밝혀지면 흥정은 의외로 맥풀리게 결말이 나는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촌사람들에게 장날은 일종의 사교장인 것이다. 오랫동안 소원했던 이웃 마을 사람들과 만나 반가운 악수 끝에 왕대포 집으로 직행하고, 또 궁금한 사람의 안부를 알음알음 묻기도 한다.
모든 물건을 정가제로 파는 지금의 백화점과 달리 흥정이 있다. 그중에서도 '밑지고 판다"라는 상인들의 넋두리는 실상 삶은 소 대가리도 웃지 않을 수 없는 뻔한 거짓말이다. 그래도 이런 경우 거짓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팽팽한 긴장을 풀어주는 일종의 틈이다. 틈이 있는 만남이 정겹다. 외견상 화려한 백화점이 살 풍경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틈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재화의 일차적 생산자인 농민이 더 좋은 채소나 곡식을 맛볼 수 없다든가 직접 소비자에게 물건을 파는 소매 상인이 자기 물건 가운데서 가장 좋은 것을 자기 몫으로 떼어놓지 않는다는 것은 일종의 불가피한 모순에 속한다. 욕망의 확대 재생산을 위해서 1차 생산자인 농민이나 재래시장 상인들은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억제하는 방식을 택한다.
사람들은 더 이상 소박한 것, 수수한 것, 작은 것을 미더워 하지 않는다. 백화점, 대형 할인 마트에 가야만 사람들은 비로소 안심하고 소비의 욕망에 닻을 내린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사람살이의 요체는 시시한 것에 있다. 거기서 눈물, 한숨, 웃음이 다 비어져 나온다. 거기서 찰떡같은 情이 나오고 거기서 살아있음의 참 맛을 느끼게 된다. 큰 것에는 어떤 살가움도 담겨져 있지 않다.
사람은 나이들게 되면 사회의 모순을 알게되고 제 스스로 그 모순에 발을 담그게 된다. 이른바 철이 드는 것이다. 따지고 들자면 '순수하다'라는 말의 반대말은 '철 들었다'라는 말이 아닐까 싶다. 철이 들고나서도 틈만 나면 시장을 기웃거리는 내 관성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시장에 가면 할머니와의 사이에 얽힌 추억이 가슴을 따뜻하게 해오기도 하고 황지우 시인처럼 삶의 '바닥'을 들여다보며 '난 아직 바닥에 이르려면 멀었구나"라고 마음을 추스르며 바람 빠진 풍선 같은 삶에 바람을 불어넣기도 한다.
차츰 세월의 뒤안으로 사라져 가는 재래시장을 바라보는 심사가 울적해진다. 재래시장이란 단순히 물건만을 사고 파는 장소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마음을 나누는 열린 공간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