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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식의 귀농일기 <아궁이 불에 감자를 구워먹다> 역사넷
전희식의 귀농일기 <아궁이 불에 감자를 구워먹다> 역사넷
내가 알짜배기 농민 전희식씨를 알게 된 것은 <오마이뉴스> 덕분이다. 이태 전부터 '사는 이야기' 코너의 한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 '전희식의 귀농일기'를 눈여겨보면서 참 귀한 글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일찍이 우리의 삶 안에 진실과 정직의 표상인 '흙'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뜻으로 내 고장에서 <흙빛문학회>를 만들고 키워온 나로서는 전희식의 귀농일기들을 읽으면서 진솔한 흙빛의 세계를 접할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도 큰 반가움이었다.

전희식에게 있어 '귀농'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귀농의 진정한 뜻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러자니 전희식의 출신 성분(?)에 대한 호기심이 자연히 생겼다. 그는 경남 함양 출신이다. 농촌의 농가에서 태어나 농업의 실상을 체감하며 자랐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막연히 그렇게만 짐작을 해왔는데, 그가 지난 5월 발표한 <시골집 오시는 어머니를 맞는 설움>(책 149-151쪽에 수록)을 읽고서는 그의 어머니도 농민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전북 완주의 시골구석으로 귀농을 하기 전까지는 매우 신산한 세월을 살았음을 그 글을 통해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와? 너 또 어디 잡혀가제?"
내가 시골로 가서 농사짓겠다고 하니까 또 무슨 일을 저질러 잡혀가는 걸로 알았는지 대뜸 목이 잠기시던 어머니다. 아니라고 했지만 "니 놈이 언제는 기다고 하고 갔었나?"고 돌아앉으시던 어머니다.


위 대목을 종이 책 활자를 통해 다시 읽으면서 가슴 한구석이 저미는 것 같은 아픔을 또 한번 느껴야 했다. 성인이 되어 사회에 진출한 후로 어머니에게 그런 아픔까지 안겨 주면서 전희식은 15년여 동안 서울과 인천 등지에서 사회변혁 운동에 종사한다. 그러니까 그는 농촌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농사꾼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것은 아니다.

'1994년 돌연 귀농하였다'고 소개되는 전희식의 귀농은 그가 농민의 후예이므로 일단 '복귀'의 뜻을 갖는다. 그가 농민의 후예였기에 돌연 귀농이 좀더 가능했으리라는 심증을 갖게 한다. 그런데 농업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지 않은 그가, 그리고 15년여 동안 도시에서 사회변혁운동에 종사했던 그가 왜 갑자기 귀농을 한 것일까?

그의 귀농은 단순히 농업으로의 복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농사를 생존 수단으로 삼아 살기 시작했다는 것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는 삶과 농업의 진정한 가치를 찾아 귀농을 했다.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우리가 잃어버렸거나 잊고 사는 유형무형의 가치들, 어떤 원형질들을 다시 찾고 일으켜 세우고 확인하는 일을 하고자 했다. 아니, 그런 거추장스러운 의식 따위도 잊고 사는 가운데 자신의 삶 자체가 자연스럽게 그런 것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진정한 농부가 되기를 소망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땅을 어머니로 모시고 섬기며 어머니의 한숨과 신음을 들어야 했다. 어머니의 한숨과 신음을 들을진대 생태농과 유기농은 그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한 해 갈무리하며 벌써 내년을 산다'라는 글의 말미에는 그의 귀농의 변, 귀농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게 기술되어 있지만, 마지막 구절인 "그런 농부들이 만드는 생명의 먹을거리들을 덥석 사 먹는 도시인이 그립다"라는 말에서 그의 현실적이고도 최종적인 소망의 실체를 확인하면서 숙연한 느낌이 든다.

'한숨 속의 내 어머니', '고추밭의 서울 여자', '귀농 7년의 회상' 등 유기농과 관련하는 글들을 읽다보면 농민이라고 해서 모두 흙을 사랑하고 섬기며 사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진정한 농부라면 흙을 사랑하며 섬겨야 한다. 흙을 사랑하고 섬기는 농부라면 오로지 소득만을 생각하고 대지를 학대하는 짓은 하지 않는다. 많은 수확량과 겉보기 좋은 소출을 위해 비료와 농약을 무제한으로 사용하는 농부는 이미 농부가 아니다. 그런 농부 아닌 농부들을 일러 '한 해 갈무리하며 벌써 내년을 산다'라는 글에서는 "땅과 공기와 물에 대한 침략자"라고 단호하게 정의한다.

비료와 농약에 의존하는 농사법에 저항하며, 어머니(대지)의 한숨과 신음을 듣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전희식은 알짜배기 농민이다. 제초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강한 내성을 갖지 못하여 "눈만 흘겨도 비실비실 하는" 잡초들마저 함께 거느리고 살아가는 그의 농업은 그리하여 고행 속에서 보람을 찾는 '구도(求道)'이기도 할 터이다.

그러나 그 고행은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고, 끝없는 고행의 길일지도 모른다. "무더웠던 여름이야 일하는 재미로라도 살았지만 이제 긴긴 겨울을 앞두고 시름만 깊어간다. 농협에서는 이자에 원금에 이제부터 닦달이 시작될 것이고, 집안에 가득한 곡식들은 서푼어치도 안 나갈 게 뻔하다"라는 말은 농업 현실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어서 아릿한 연민마저 갖게 한다.

책 안에 「아궁이 불에 감자를 구워먹다」라는 이름의 개별 글은 없었다. 그럼에도 왜 그 이름을 책의 제목으로 삼았을까 생각하니 흥미로움이 느껴졌다. 알짜배기 농사꾼 전희식이 글을 쓰는 일은 '아궁이 불에 감자를 굽는 일일 터이다. 따라서 그의 글들은 모두 아궁이 불에 구워지는 감자일 터이다.

책을 다 읽고 났을 때 나는 아궁이 불에 구워진 감자를 실컷 먹은 기분이었다. 뜨거운 감자를 호호 불며, 입술을 데기도 하면서, 구수하면서도 더러는 아린 맛도 나는 구운 감자를 많이 먹은 기분이면서도 '포식'이라는 단어는 기피하고 싶었다. 명상 수련과 함께 생식을 하고 가끔 단식도 하는 전희식의 책을 읽고서도 그런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리라는 생각 탓이었다.

전희식의 글들에는 순수하고도 정갈한 자연의 온갖 내음들이 다 들어 있다. 흙 냄새가 물씬 풍기는가 하면 향긋한 풀 냄새가 있고, 따스한 재 냄새며, 아궁이 불 속에서 익어 가는 감자 냄새며, 메주콩 냄새며, 굴뚝의 매캐한 연기 냄새며, 땅을 일구고 가꾸는 사람의 땀 냄새며, 퀴퀴하면서도 구수한 거름 똥 냄새도 있다. 냄새뿐만 아니라 새소리와 벌레소리 등 자연의 온갖 소리가 다 들어 있고, 전통 조선집 짓는 소리도 있다.

그리하여 전희식의 글들은 하나같이 자연과 삶의 진솔한 모습이고 언어이며 숨결일 수밖에 없다. 질서 정연하면서도 신비로운 자연의 힘찬 생명력에 의해서 유지되는 갖가지 삶의 율동과 색채들이 그의 글들에 담뿍 내포되어 있음을 다시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삶과 자연과 농업이나 농촌을 이야기하면서 거기에 우리 시대의 어떤 근원적인 문제를 투영시키기도 하는데, 약간은 해학적인 기운을 풍기기도 한다. '산골 마을 눈은 포근하다'라는 글에서 보게 되는 "저녁 뉴스에 나오는 눈은 우리 동네 눈하고 전혀 달랐다. 미쳐 날뛰듯이 거칠고 사나웠다. 부시 같았다. 미끄러지고 무너지고 죽고 깨지고 했다"라는 표현이라든가, '똥들의 외침, 우리는 쓰레기가 아니다'라는 글에서 보게 되는 "어느 한 곳이 막혀서 순환되지 못하면 병이 생긴다. 사람도 그렇고 부모 자식간에도 그렇다. 남북관계도 그렇다. 자연환경은 더 그렇다"라는 표현 등이 좋은 예일 것이다.

이건 좀 시답잖은 얘기지만, 나는 경남 함양 출신인 전희식씨가 왜 전라북도 완주 땅을 택해 귀농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궁금증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그것에 관한 상세한 이야기가 있을지도 모른다 싶었는데, 땅을 무상으로 빌려주는 어느 후배의 존재만 가시권에 들어왔을 뿐 지역주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구체적인 이야기가 없었다.

단지 「귀농 7년의 회상」안에 "지금도 종종 내 억센 경상도 사투리 때문에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을 받는다. 대한민국이 내 고향이라고 둘러대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좋아하신다. 영호남 지역감정에 대한 개탄을 시작으로 나름의 해법까지 내놓으시면서 전라도까지 와서 고생한다고 할 때는 마치 경상도 특사라도 된 듯하다"라는 대목이 있을 뿐이다.

이 한 대목을 나는 곰곰이 음미하면서 나름대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전희식씨가 어쩌면 호남에 대한 일종의 부채의식을 지니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어쨌거나 지금 전라도에 정착하여 살면서 어디에 가서든지 자기 고장을 명확하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그는 경상도와 전라도가 모두 고향인, 그리하여 대한민국 전체가 다 고향인 사람이다. 그 정도로 그는 폭넓고 따뜻하고 경우 바른 심성의 소유자임을 나는 깊이 확신할 수 있었다.

전희식씨의 책 '아궁이 불에 감자를 구워먹다'에는 내가 오마이뉴스에서 읽은 글들도 많지만, 처음 보는 글들도 많다. 오마이뉴스에는 발표되었으나 책에 수록되지 않은 글들도 있다. 나로서는 웹상에서 읽었던 글을 종이 책의 활자로 다시 읽으니 반가움 같은 감회도 있었다. 오랜 세월 종이 활자에 익숙했던 나 자신의 속성을 반추하면서 때로는 가부좌를 하기도 했지만 컴퓨터 앞보다는 훨씬 자유롭고 편한 자세로 책 한 권을 맛있게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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