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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선물> 표지
<바다의 선물> 표지
이 책 <바다의 선물>(바움출판사)을 쓴 작가 앤 모로 린드버그는 최초로 대서양을 무착륙 횡단 비행했던 찰스 린드버그의 아내로서 미국 여성 최초로 비행 면허를 취득했고 그 후 작가·시인·수필가·사회사업가·비행사로 다양한 삶을 살았다.

어느 해 여름 섬에서 홀로 휴가를 보내다 바닷가에 널려있는 조개껍데기들을 통해서 삶의 이면을 관찰하게 된 게 그가 이 책을 세상으로 내보낸 계기가 되었다.

소라고둥

작가는 서두에서 소박한 삶, 간편하게 들고다닐 수 있는 조가비 같은 삶을 살자고 말한다.

소라고둥은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적게 가지고도 살아갈 수 있는지를 나에게 물어올 것이다. 내 생활에 뭔가 하나라도 보탰으면 하는 유혹을 느낄 때 그리고 내가 또 하나의 축에서 벗어나 다른 활동을 하려고 할 때 소라고둥은 내게 속삭여 줄 것이다. 과연 그게 필요하냐고.

ⓒ 이유경
달고둥

작가는 외로이 공중에 떠있는 둥근 달 같은 달고둥의 생김새를 보고 거기서 고독이라는 섬을 환기해 낸다.

나의 핵심, 내면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서는 고독이 필요하다. 그러나 여성이 애써 그 본질을 지켜내지 못하면 내 남편이나 아이들, 친구들 혹은 세계 전체에 내가 나눠줄 수 있는 것이 고갈되고 만다.

해돋이 조개

맞물리면 빈틈없이 맞물리는 두 쪽으로 된 해돋이 조개를 선물받은 작가는 그 쌍각 고둥 속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유추해낸다.

모든 관계의 시작은 순수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남성에게는 사회적 임무가 여성에게는 가족과 집안을 돌보는 전통적인 임무가 부여됨으로써 개인 대 개인으로 맺어졌던 초기의 열렬했던 관계는
ⓒ 이유경
기능적인 관계로 변질된다. 그리고 향수에 젖어 최초에 맺었던 관계의 원형을 그리워하게 된다.

그러나 순수한 관계는 제한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며 따라서 배타성을 내포하는 것이다. 순수한 관계는 인생의 나머지 부분, 여타의 관계들, 개성의 차이, 다른 책임들, 미래의 다른 가능성을 배척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작가는 본질이란 관계가 발전하면서 상실된 것이 아니라 생활의 무게 밑에 깔려 있을 뿐이며 원래의 관계를 재발견하려면 둘만의 여행을 떠나라고 권유한다. 여행이란 빈틈없이 맞물리는 두 쪽으로 된 해돋이 조개를 발견하는 기쁨을 맛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깨지기 쉽고 허망한 해돋이 조개같은 삶이지만 그것은 결코 환영이 아니며, 그것이 영원한 생명을 갖지 못했다고 자칫 냉소주의의 함정에 빠져 그것을 환영으로 치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 이유경


구부정한 등허리에 온갖 지저분한 것들을 덕지덕지 붙인 채 바위에 달아붙어 살아가는 굴의 모습에서 중년의 여성인 자신의 모습을 본다. 그것은 아름다움과는 상관없이 생존의 기능만을 위해 빚어졌다. 그 모습은 결코 조락의 징후가 아니다.

작가에게 있어 중년이란 그 모든 껍데기(야망, 물질적 축적과 소유,이기심)를 벗어던지는 혹은 벗어던질 시기인지도 모른다. 중년기에는 비록 아침과 같은 열기와 속도는 아니더라도 경쟝에 몰두하느라 한쪽으로 밀쳐두었던 지적·문화적·정신적인 활동에 몰두할 수 있는 '오후'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앵무조개

새끼들이 부화해 헤엄쳐 가버리면 앵무조개는 껍질을 버린다. 마침내 굴 껍데기를 벗어던진 중년의 여인도 아무 거리낌없이 제 껍데기를 버리고 앵무조개처럼 열린 자유를 지향할 수 있을까?

ⓒ 이유경
'훌륭한 관계는 춤과 같으며 춤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규칙에 따라 이루어진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춤을 추는 두 사람은 서로 꽉 붙잡을 필요가 없다. 모짜르트의 무곡처럼 복잡하면서도 활기차고, 빠르고, 자유롭게 동일한 리듬에 맞춰 자신있게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필요 이상으로 상대를 붙잡으면 율동을 억제하고 동작을 부자연스럽게 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춤의 아름다움을 그르치게 된다.

인간관계 역시 섬과 같다. 외부와 단절되고 파도가 들이치는 곳. 여기,현재,섬이라는 삶의 한계를 받아들여야 한다.

몇 개의 조가비들

양이 아닌 질, 속도 아닌 정지, 소음이 아닌 침묵, 말이 아닌 사고(思考), 이런 여백이 있는 삶이 아름답다. 그런 여백들만이 나를 '갈가리 찢어발기려는'긴장과 압박에서 자신을 지켜낼 수 있다.

ⓒ 이유경
이 책은 작가가 여름휴가를 바닷가에서 보내게 된 게 계기가 되어 쓰여진 글이다. 도처에 통찰력으로 넘치는 그의 삶에 대한 아포리즘은 결코 관념적이거나 공허하지 않다. 그가 바닷가에서 마주친 소라고둥이라든가 달고둥 따위의 생김새를 우리네 삶에 대비시킴으로써 그는 문장에 현실성과 더불어 견고한 육체성을 부여한다.

소라고동에서는 영혼을 분열시키지 않는 소박한 삶에 대하여 말하고 외로이 공중에 떠있는 둥근 달 같은 달고둥의 생김새에서는 고독이라는 섬을 환기해내고 나의 핵심, 내면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서는 고독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한다.

린드버그는 참된 삶과 삶의 균형에 대해 역설한다. 그에 따르면 여성의 삶은 수레바퀴의 축에서 뻗어나온 바퀴살처럼 모든 방향으로 분열되어 있으며 그 바퀴살을 받쳐주는 것은 수레바퀴 축이다. 그 축과 마찬가지로 여성의 삶도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다의 선물>은 중년여성에게 필요한 삶의 지침서다. 중년 이후의 삶을 역동적이고 보람있게 열어나가고 싶은 여성들에게 자신있게 일독들 권한다.

글에 시각적 재미와 생동감을 불어넣어 주는 사진들
사진작가 이유경은 누구인가?

▲ 사진작가 이유경
이유경은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했으나 지금은 사진의 유혹에 끌려 살고있는 전문 사진 작가다. 음악적 감수성에 영향받은 탓인지 그의 사진은 보는 이의 감성에 부드럽게 와 얹힌다.

평소에도 바다가 좋아서 바다 사진에 천착하고 있는 그에게 이번 앤 모로 린드버그의 책 <바다의 선물>에 사진을 입히는 작업은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 형국이 아닌가 싶다. 그의 섬세한 사진을 통해서 린드버그의 글들은 더욱 해사한 옷으로 갈아입은 셈이다. / 안병기

바다의 선물

앤 머로 린드버그 지음, 범우사(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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