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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3시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5만여명의 민주노총 노동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손배가압류 제도개선 및 비정규직 차별철폐, 이라크파병 반대 등을 촉구하는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2003노동자대회`가 열렸다. 종로에서 노동자들이 화염병과 쇠파이프를 사용해서 시위를 벌였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한 메이저신문은 지난 11월 8일 <왜 '각목시위'를 방치하나>라는 사설을 통해 "경찰이 정치권의 '코드'를 의식해 온정적으로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언급한 데 이어 11월 12일자 사설을 통해서는 <최루탄, 물대포 필요하면 사용해야>란 사설에서 최루탄과 물대포 사용을 강력히 경찰에게 '권고'했다.

같은 신문은 11월 11일자 자사 인터넷판의 '경찰의 착각'이란 한 기자의 칼럼을 통해 " 시위는 언제 누가 죽을지 모를 위험한 쪽으로 격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무탄(無彈)방어'로 버티는 경찰의 태도는 과연 괜찮은 인내심일까. 시위대가 맞짱 뜰 상대쯤으로 여기는 힘없는 공권력을 이제 국민은 원하지 않는다는 걸 경찰이 생각할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한 신문은 논설위원의 칼럼을 통해 경찰의 무최루탄 원칙 고수를 "교만에 가까운 인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하면서 끝부분에는 "최루탄 이상의 방법을 써서라도 불법 폭력시위만은 서둘러 근절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며 경찰에게 애정(?)어린 충고를 하였다.

이를 경찰에서는 언론의 도움이라고 고마워해야 하는가? 이를 확인하기 위해 글쓴이는 11월 9일 화염병과 쇠파이프가 난무하던 집회시위 현장에 있었던 각급 현장 지휘관과 전의경 기동대원들을 대상으로 지난 11월 11일 밤 간단한 전화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질문내용은 "과격 폭력시위에 맞서 최루탄 사용이 필요한가"와 필요하다고 대답한 사람에게는 이전에 최루탄 사용시 기동부대 복무 경험을 물었다.

서울에 있는 5개 기동대 가운데 시위를 진압하고 있는 실무 경찰관 13명과 전의경 10명을 조사하였다. 실무 경찰관들은 기동대의 소대장과 중대장들이 대부분이었음을 밝힌다.

조사결과 총 23명 중 최루탄 사용을 찬성한 기동대원은 4명에 불과하고, 나머지 19명은 반대로 나타났다. 예상과는 달리 화염병과 쇠파이프 공격을 직접 당했던 중대에서조차 최루탄 사용엔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대원중 최루탄 사용을 찬성한 사람은 2명으로 20개월 이상 근무한 고참대원 1명과 기동대 생활이 6개월에서 1년 사이인 일경이었다. 이들은 화염병 시위를 처음 접해보았고, 최루탄 사용은 해보지 않은 세대이다.

현재 전의경은 화염병 시위와 최루탄 사용을 전혀 경험하지 못하였다. 그런 대원 10명 가운데 8명은 최루탄 사용을 반대하였다. 그 이유로는 일반 시민들에게 불편과 고통을 끼치고, 강경대응은 더 큰 과격시위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과 방독면 착용에 따른 대원들의 고통과 피해를 들었다.

경찰관 13명 가운데 최루탄 사용을 찬성한 2명중 1명은 최루탄 사용시 진압부대 근무경험이 없던 경찰관이고, 나머지 1명도 당장은 방독면 착용 등 훈련이 되어있지 않으므로 앞으로 여건이 갖추어지면 사용하자는 유보적 찬성 입장이었다.

나머지 11명의 경찰관들은 대원들의 의견과 같은 의견이었으며, 나아가 "한두 번은 효과를 볼 수 있으나, 과거 경험에 비쳐 보면 결국 시위가 더욱 격렬해질 것이다", "시민의 호흡기 질환에 대한 국가 소송도 염두에 두어야 하고, 경찰관의 피해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진압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작전 시야가 좁아져 오판에 의한 과잉진압이 될 가능성이 많다", "어렵게 지켜온 무최루탄 원칙이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는 만큼 다소 경찰관이 어렵더라도 참아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며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아마 과거에 화염병과 쇠파이프, 그리고 최루탄의 공방을 경험한 경찰관 대부분은 최루탄 사용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과거에 최루가스에 의해 고통을 당해본 국민들 대다수도 매캐한 최루가스가 뒤덮은 거리를 지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기억해야 할 것은 최루탄이 난무하던 그 시절에 시위현장에서 시위대, 경찰 모두에게 '안타까운 죽음'이 분명히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부상자 역시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많았다는 사실이다.

당장 화염병과 쇠파이프 등 과격 폭력시위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치는 경찰관이 '최루탄이 싫다'고 하는데, 일부 언론은 이것을 '오만한 인내'라고 하며 최루탄 사용을 부추기고 있다. 경찰정책의 결정자인 경찰청장이 '최루탄 사용을 고려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일부 언론은 경찰정책의 전문가인양 최루탄 사용만이 불법폭력시위를 근절할 수 있다고 훈수를 둔다.

훈수는 서로의 상처를 봉합하고 통합시키려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면 족할 것이다. '과격'이나 '강경'이란 말이 '리드'에서 빠지고, 이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이 사회를 미리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정론을 이끄는 것이 더 언론의 사명에 충실한 것이 아닐까? 그것이 바로 과격 폭력시위와 강경진압의 악순환을 확실히 근절시킬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제 경찰은 정치권의 '코드'를 맞추려고 하지 않는다. 경찰이 살아남을 길은 오직 '법과 원칙'에 따라 법을 집행하는 것 뿐이다. 더 이상 몇몇 언론이 경찰을 자신들의 '코드'에 맞추려 하지 않았으면 한다.

경찰은 착각하고 있지 않다. 힘있는 공권력은 더 큰 물리력을 보강하는 것이 아니라 '법과 원칙'에 따라 일관되게 '필요 최소한도'의 경찰력을 운용하는 것에서 나온다는 것을 경찰은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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