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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일 국가인권위 배움터에서 '이주여성문제 어떻게 볼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심포지엄이 열렸다
ⓒ 김진석
'이주여성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 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이 이주여성인권센터 주최로 13일 국가인권위 배움터에서 개최됐다.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김현미 교수, 방송통신대 법학과 김엘림 교수, 노동부 외국인 고용정책실장 홍정우씨,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상임대표 박인혜씨 등 외부 패널이 함께 한 심포지엄은 '이주 여성 인권운동이 곧 한국 여성의 인권과 노동 운동의 중요한 기폭제' 가 될 것임을 강조하며 많은 과제를 남긴 채 마무리됐다.

"정체성을 잃어버린 이주 여성의 삶"

이들은 토론에 앞서 발제를 통해 '이주를 하려는 여성들의 다양한 사연' 과 '국내 거주 후 그들이 겪는 삶' 을 살펴봤다.

"1999년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살이 쪄도 벌금, 술 마셔도 벌금을 내야 했다. 그래도 그때는 벌칙도 많고 감시도 많이 당했지만 지금 보다는 좋았다. 그땐 손님들 테이블에 앉아 말을 할 필요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면 됐다. 지금은 말도 해야하고, 술도 마셔야 하고, 함께 춤도 춰야하고, 2차도 나가야 한다." - 러시아 노동자 스타샤.

기지촌과 여러 유흥업소 등을 직접 방문하며 많은 이주여성노동자들을 만났던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김현미 교수는 "지금껏 국제적 이주나 이민 연구에서 여성은 경제적 동기로 국경을 넘는 젊은 남성들의 '반영' 으로 혹은 가족의 한 일원으로서만 취급돼 '안 보이는' 범주였다" 고 발제를 시작했다.

▲ 방송통신대 법학과 김엘림 교수
ⓒ 김진석
이어 김 교수는 "현 이주 여성들은 실업이나 가난이란 이유로 설명될 수 없는 다양한 욕구, 즉 삶에 대한 다른 비전이나 희망 때문에 이주를 결심한다" 며 "그들은 충실하고 영리한 딸, 지혜로운 어머니, 또 다양한 욕망과 삶의 열정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다중적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이주여성노동자들의 다중적 정체성은 국경을 넘어서면 이들을 바라보는 '편견' 과 '차별' 에 의해 곧 계층적, 인종적, 성적 차별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다. 특히, 유흥업이나 성매매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성적서비스' 를 '노동의 범주' 로 고려할 것인가에 대한 여성계의 논란과 '불법매춘여성' 이라는 사회적 인식으로 인해 그들에 대한 정책적 결정이나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한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여성주의자들이 외국인 이주 여성의 '성적서비스' 를 '성의 산업화' 로만 강조해 바라보는 페미니스트적 시각에서 벗어나 또 다른 국제적 노동 이동의 관점으로도 넓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주여성노동자들을 한국인과 공존하는 '정주민' 들로의 사회적 인식 전환을 촉구했다.

"임신 2개월 째로 입덧이 심해 몸무게도 줄었다. 너무 힘들어 엄마가 보고 싶다. 왜 그렇게 고기가 먹고 싶은지…. '나 고기 먹고 싶어요' 라고 말하니 시아버지는 남편이 없을 때 '넌 고기만 먹고 자랐니? 야채, 김치를 많이 먹어야지, 나 돈 없다' 며 야단치셨다. 또 쌀이 빨리 떨어질 것 같으면 밥 많이 먹는다고도 야단치셨다. … 시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남편에게 얘기하면 남편은 '네가 바꿔' 라고만 말해 (남편과도) 대화가 안 된다." - 태국 노동자 소미의 일기 중.

한국 남성과 결혼한 이주 여성의 삶으로 말문을 연 이주여성인권센터 사무국장 최진영씨는 단순히 이주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설명하며, 한국의 많은 여성학자들의 참여와 연대를 당부했다.

최 국장은 소미와의 상담을 통해 이주여성노동자들이 가난한 나라에 대한 인종 차별, 남성 중심적 가족 제도와 사고 등으로 많은 갈등을 겪고 있으며, 또 이주여성들이 점차 사라져 가는 가부장적 가족 제도를 어쩔 수 없이 재생산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어 그는 과연 한국 여성들이 이주여성노동자들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 반문하며 한국 사회에서 이주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법적, 제도적 장치 마련을 위해 한국 여성들의 고민과 노력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이주여성 문제는 곧 우리 한국 여성의 문제"

현재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 여성들은 크게 산업연수, 국제 결혼, 연예인 비자를 통해 입국한다. 전체 외국인 이주 노동자 중 37.3%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은 남성 노동자와의 임금 차별은 물론이고, 성희롱, 강간 등 성폭력과 같은 이중의 인권 침해를 당하고 있다.

▲ 여성의 전화 상임 대표 박인혜씨
ⓒ 김진석
또 생리휴가는 물론, 임신, 유산 후에도 사업주의 중노동에 시달려 여성권은 물론 모성권에 대한 보호 속에도 포함되지 못한다. 더 심각한 것은 이주여성노동자들이 인권침해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항의조차 하지 못해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실정이다.

2002년도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에서 발표한 '이주여성노동자실태조사' 에 따르면 여성이주노동자들의 일주일 근무 시간은 67~88시간이 38.2%로 가장 많았으며, 월 평균 임금은 53-100만원 이하가 70.7%로 가장 많았다.

생리 휴가가 근로기준법에 명시되어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64.1%가 모른다고 하였고, 46.8%가 임금 삭감의 두려움 때문에 생리 휴가를 포기하고 있었다. 과반수가 기혼인 이주여성노동자 중 56.3%가 유산 경험이 있으며 55.6%가 한국인 직장상사에 의해 성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이밖에 국제 결혼한 이주여성들은 한국인 남편과 살고 있으나 방문동거비자로 체류 자격을 취득해야 하는 외국인의 신분이기에 복지대상에서 배제되고, 결혼 사유가 해소되면 법적으로 불법 체류자로 전락하는 등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있다.

심한 경우 브로커를 통해 매매혼이나 사기혼을 당하기도 하며 이런 경우 구타와 외출 금지, 의처증으로 인한 학대, 경제를 위한 중노동 강요 등 철저히 인권을 유린당하는 경우도 있다.

방송통신대 법학과 김엘림 교수는 우선, 외국인 노동자법이 전반적으로 노동자의 인권을 보장하기엔 미약하다고 지적하며 그 실효성에 대해 의구심을 표했다. 특히 김 교수는 이주여성노동자의 특수 문제에 대해 명시된 법률은 전무하며, 여성부 또한 '국제성매매 방지와 외국인 피해자 전용 쉼터 개설' 정책의 실현 의지가 미비하다고 꼬집었다.

▲ 노동부 외국인 고용정책실장 홍정우씨
ⓒ 김진석
이에 그는 이주여성노동자 문제를 고려한 법개정의 필요성을 피력하며 외국인 근로기준법에도 구체적으로 남녀고용평등법, 모성 보호와 성희롱, 성폭력 예방과 방지를 위한 장치 적용을 강조했다.

또 더 나아가 김 교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행사할 수 있는 권리와 활용할 수 있는 권리 구제 기관, 상담소, 교육 등의 정보가 명시된 '인권수첩' 발부를 제안했다.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상임대표 박인혜씨는 그간 이주여성노동자 문제를 발견하지 못함에 반성을 표하며 이는 결국 한국 여성의 삶과 밀접한 우리의 문제라고 단언했다. 이어 박 대표는 이주여성노동자 문제를 지원할 수 있는 여성 단체의 지원망 형성과 외국인노동자센터와의 연대를 다짐했다.

또 그는 이주여성노동자가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폭력적 관계에 억압당하는 이유를 '언어소통의부재' 로 뽑으며, 그들이 자신의 의견을 말 할 수 있게 돕는 여성 통역사의 필요성을 덧붙였다.

노동부 외국인 고용정책실장 홍정우씨는 이주여성노동자 문제에 앞서 고용허가제 실시로 자살한 외국인 노동자가 생겨 솔직히 혼란스럽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합법적 산업 연수제를 통해 들어온 사람 외 결혼이나 성매매등을 한 이주여성노동자는 현행법상 보호받을 장치가 없음을 설명했다.

앞서 토론에 참여한 이들의 의견을 전해들은 그는 솔직히 그간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던 이주여성노동자 문제에 대해선 알지 못했다며 또 다른 과제와 고민을 안고 간다고 말했다.

그 밖에 각종 여성단체 및 여러 외국인노동자센터 등이 함께한 이번 심포지엄은 무엇보다도 그들 연대의 중요성을 공감하며, 연대를 통해 이제 막 독립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이주여성노동자문제의 심각성과 복잡함을 비로소 가시화 시킬 수 있는 신호탄이 된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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