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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아랑은 왜>
책 <아랑은 왜> ⓒ 문학과지성사
이 책 <아랑은 왜>는 여러 가지 스토리가 함께 뒤얽힌 매우 복잡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A, B, C, D의 서로 다른 이야기는 '아랑 이야기'라는 기본 모티프를 토대로 하고 있으나, 각기 다른 목소리와 사건 전개를 가지고 진행된다.

작가 김영하는 실험적 정신을 이 소설을 통해 시도하려 한 듯하다. 그리고 그 실험성은 꽤 성공한 편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서로 다른 혼란스러운 이야기들이 어긋나지 않고 조화롭게 어울려 더 큰 의미망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장편 소설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아랑 전설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적 자료들을 수집하는 과정을 묘사하는 부분이다. 아랑이라는 여자가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유모 밑에서 자랐는데, 음흉한 유모와 통인이 음모하여 어느 날 아랑을 욕보이려 한다.

아랑은 통인에게 항거하다가 끝내는 칼에 맞아 죽고 버려진다. 이 마을에 새로 부임하는 군수들은 이상하게 부임 첫날 죽음을 맞이하는데, 이상사라는 용감한 사나이가 부임 첫 날 원혼을 만나 사정을 듣는다. 그 후 그 통인과 유모를 잡아 엄벌하고 아랑의 시체를 찾아내어 장사지내 주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밀양 지방에서 전해 내려오는 꽤 유명한 전설인데, 이 책의 작가는 이 이야기를 토대로 한 다양한 사적 자료를 모으고, 이본(異本)들을 조사하면서 이 이야기를 재구성한다. 소설 속에는 이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들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바로 이 수집된 자료들을 토대로 하여 작가가 꾸며낸 아랑의 이야기이다. 그는 <정옥 낭자전>이라는 제목으로 아랑 전설을 재구성한다. 이것은 고전 소설과 현대 소설의 중간 단계와 같은 모습을 보인다. 왜냐하면 소설의 배경은 옛날이지만 사건 전개 방식은 현대적인 모습을 지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이야기는 이 아랑 전설을 연구하고 소설을 써 나가면서 작가가 맞이하는 현실 세계의 모습이다. 물론 이것 또한 이 장편 소설의 일부이기 때문에 허구적인 이야기이다. 하지만 네 가지 이야기가 복합적으로 전개되는 구성 속에서 현실감 넘치는 느낌을 부여한다.

세 번째 이야기 속에서 작가인 서술자는 우연히 친구 박을 만난다. 박은 채팅을 통해 만난 한 여성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막상 그 여인이 등장하자 자신이 그 채팅 속의 인물이 아닌 척한다. 이러한 친구의 모습을 보며 서술자는 새로운 소설의 주인공으로 박을 설정한다.

네 번째 이야기는 바로 이 소설 안의 작가인 사람이 쓰는 어떤 소설의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 소설은 아랑의 이야기와 박의 이야기를 적절히 잘 섞고 그 속에 허구적인 스토리 라인을 만들어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번역가인 박이 미용실에서 우연히 만난 영주, 이 둘은 동거 관계를 갖게 되고 소설의 마지막에서 영주는 아랑처럼 죽음을 맞이한다.

그 죽음의 원인을 작가는 한 남자의 질투심으로 표현하였다. <정옥 낭자전>에서 아랑이 다른 남자와 만나는 것을 질투한 부사가 아랑을 죽이는 것처럼, 이 새로운 소설 속의 영주 또한 동거하는 남자 박의 질투심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이 소설은 다양하고 복잡한 이야기들이 서로 얽혀 있어, 언뜻 보면 소설적인 요소를 지나치게 무시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새로운 실험 정신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다른 각도로 소설의 길을 제시했다는 느낌을 준다.

소설을 창작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 스토리 라인을 결정하는 과정, 등장 인물을 설정하는 과정 등등 소설의 창작과정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이점이다. 소설을 창작하는 과정 그 자체를 소설화하였다고 할까?

예술이라는 분야가 끊임없는 실험 정신을 가지고 새로운 시도를 해 나가며 발전하는 장르라는 것을 고려할 때에, 김영하의 새로운 시도는 가치가 있다. 물론 그 문학적 완성도에 대한 평가는 여러 의견이 분분할 것이다. 과연 소설의 창작 과정이 소설 자체가 될 수 있는가는 책을 덮는 순간까지 의문으로 남는다.

아랑은 왜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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