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여행하던 발걸음이 독일에 다다랐을 때, 우리나라의 '슬픈 역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적지 않은 유럽인들은 나의 조국이 Korea라고 말하면 South인지 North인지 꼭 확인하려고 들었다. 나는 한국이 비록 분단된 상황이지만 한국은 하나이기 때문에 나의 조국은 그냥 Korea라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그들의 호기심은 내가 South임을 결국 실토하게 만들었다.
그 때마다 이제 지구상에는 단 하나밖에 분단국가가 없다는 사실이 가슴에 느껴져왔다. 옛 동독과 서독의 도시들을 돌면서 나는 괜히 가슴이 먹먹해졌다.
먼 이국에서 한국인임을 가장 절실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준 것은 음식이었다. 배낭여행을 시작한지 채 1주일이 지나기도 전에 얼큰한 찌개와 짭짭한 젓갈과 시큼한 김치, 풋고추와 마늘, 쌈장과 삽겹살을 넣고 싼 상추가 못 견디게 그리워졌다. 식욕을 통해 나는 내 조국을 느끼고 있었다.
40일을 넘게 여행하면서 밥을 먹은 적도 있지만 유럽의 밥은 우리의 그것처럼 찰지고 쫀득한 맛이 아니었다. 마치 물에 너무 오래 담거두어 불어버린 밥알들, 서로 달라붙지 않고 한알 한알이 다 떨어지는 밥이 바로 '유럽의 밥'이었다. 그건 고향의 맛이 아니었다.
혹시나 하고 거금을 투자해서 들어갔던 중국식당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짜장면이나 짬뽕을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유럽의 현지 음식과 결합한 중국음식은 우리의 그것과는 너무 달랐다.
바가지를 씌우는 관광지 근처의 레스토랑을 피해, 대형 마트에서 산 싸구려 바케트빵과 콜라를 '일용할 양식'(!)으로 먹으며 나는 괜히 서글퍼질 정도였다.
그러다가 문득 언젠가 TV를 통해 보았던 북한 음식이 떠올랐다. 함흥냉면과 개성식 만두, 평양냉면을 먹으며 눈물을 글썽이던 실향민들이 떠오른 것이다.
고향을 떠나, 고향을 그리며, 고향을 갈 수 없었던 세월만큼 그들의 얼굴엔 깊은 주름이 나무의 나이테처럼 새겨져 있었다. 당시엔 그들의 감정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 유럽여행을 하면서 나는 그들이 흘렸던 눈물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그들의 눈물은 '슬픈 우리의 역사'였다. 이데올로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강대국의 힘겨루기 장이 되었던,'우리의 슬픈 역사'말이다.
그들의 혀는 고향의 맛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미각은 정서로 전환되어 그들의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40여일 나는 유럽을 쏘다니며 실향민의 아픔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기름에 절어 느끼한 서양음식 말고 찰지고 쫀득 쫀득한 밥에 어머니가 손으로 찢어주신 김치를 올려 밥을 먹고 싶었다.
언젠가 독일처럼 우리나라도 통일이 되리라 믿는다. 그 때가 오면, 이제 아무도 South인지, North인지 묻지 않는 그 때가 오면, 실향민들도 실컷 북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리라. 빨리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
어떤 사람들은 현실적인 문제와 장애를 들며, 통일에 대해 일면 부정적인 견해를 제시한다. 하지만 장애는 극복되어야 하고, 고난은 견디어내야 한다. 나는 믿는다. 노래 말처럼‘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