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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원공사를 마친 경복궁 근정전
ⓒ 강현식
3년10개월만의 보수 공사를 마치고 지난 16일부터 개방된 근정전을 보기 위해 오랜만에 경복궁을 다시 찾았다. 빛바랜 왕조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보는 일은 여유를 잊고 지내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백성을 중히 여기고 건축을 삼가라“고 했던 <춘추>의 한 구절은 나라 안팎으로 시끄러운 이 때, 경복궁을 찾아가는 발걸음을 평소보다 무겁게 한다.

▲ 근정전 내부 중앙에 위치한 용상
ⓒ 강현식
경복궁은 한반도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 해당한다.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면서 국왕이 사는 경복궁의 동쪽에는 역대국왕을 제사하는 종묘(宗廟)를 두고, 서쪽에는 토지신에게 제사하는 사직(社稷)을 두었는데 이는 좌묘우사(左廟右社)라는 유교적 전범에 따른 것이다.

▲ 새롭게 칠한 단청은 기존 문양을 그대로 모사했다
ⓒ 강현식
1395년(태조 4년)에 창건된 후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나 1867년(고종 4년) 때 중건된 근정전은 국가의 의식을 거행하고, 문무 관료의 조회를 받았던 곳이다. 근정전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5간에 팔작지붕을 한 2층 건물이다.

▲ 168점의 궁중물품을 원래의 자리에 갖다놓았다
ⓒ 강현식

▲ '보국안민'을 실천하고자 했던 왕조를 들여다본다
ⓒ 강현식
건물 내부도 더없이 화려한데 특히 중앙에 위치한 임금의 자리인 용상을 두고 그 뒤에는 국왕의 만수무강을 비는 ‘일월오악병풍(日月五岳屛風)을 둘렀다. 건물을 지탱하는 4개의 기둥을 모두 교체하는 등 최대한으로 원형을 살린다는 원칙을 지켜나간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건물 처마에 연달아 있는 ’잡상‘, 예스러운 궁중 물품들을 바라보는 눈길은 이러한 배려에 힘입어 한껏 부드러워진다.

▲ 경회루에서는 '달항아리'의 자태가 느껴진다
ⓒ 강현식
근정전을 지나 그 뒤로 세종 때 집현전이 있던 수정전 뒤쪽으로 향하다 보면 연회를 베풀던 경회루가 있다. 태종 때 만든 경회루는 기둥에 용을 조각하여 물에 비쳐 꿈틀대는 용기둥이 장관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볼 수가 없다. 다만 임금과 신하가 서로 어울려 정감을 나누던 그 곳에서 우리는 호방하게 웃게 만드는 ‘달항아리’의 자태를 느낄 수 있다.

▲ 수문장 교대의식에서 장난기는 찾아볼 수 없다
ⓒ 강현식
굵고 억센 바람이 궐내의 나무들을 한 차례 흔드는 시간이 되면 수문장 교대의식이 시작된다. 교대의식은 정해진 절차와 신호에 의해 이루어지며 부대간 교대시 상호예의를 갖춰 임하게 되는데, 이를 재현하는 과정에서 장난스러움은 찾아보기 어렵다.

사람들의 관심이 모두 그 쪽에 쏠려 있는 동안에 근정전 뒤로 천천히 걸어 가보자. 물 위에 떠있는 향원정을 건너면 명성황후가 시해된 비운의 장소에 갈 수 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풀들은 무성해지고 2폭의 그림으로만 남겨진 황후의 쓸쓸한 모습을 확인하노라면 '돌아가다 생각하니 가엾어진' 역사를 실감하게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파온다.

▲ 근정전 월대 난간을 장식하는 십이지상이 재미있다
ⓒ 강현식

▲ 통일신라의 유물이 궁궐 안으로 흘러온 까닭은 무엇일까
ⓒ 강현식
경북 금릉군에서 옮겨왔다는 통일신라의 갈항사 삼층 석탑이 조선의 궁궐 안에 들어온 까닭은 무엇일까. 몇 천 년을 거슬러 올라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시대에 같이 살고 있는 문물 앞에서 한 장의 사진을 남기는 사람들은 멋쩍은 웃음을 흘린다.

▲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멋쩍은 웃음을 흘린다
ⓒ 강현식
가을이 저만치 가고 있다. 이파리들을 다 떨군 나무들, 새롭게 단장한 근정전의 단청빛깔, 멀리서 들려오는 대취타에 흠뻑 취하고 싶은 오늘, 가까운 경복궁에 다녀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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