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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4일 새벽 고 정몽헌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 영안실에 들어서고 있는 부인 현정은씨.
지난 8월 4일 새벽 고 정몽헌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 영안실에 들어서고 있는 부인 현정은씨.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재벌가의 경영권 싸움은 역시 처절하기만 하다. 정씨(鄭氏) 성이 아닌 조카며느리에게 현대그룹 경영권을 넘겨줄 수 없다는 정상영 금강고려화학 명예회장은, 고 정몽헌 전회장의 탈상과 동시에 '숙부의 난'을 일으켰다.

전격적인 거사 앞에서 현정은 현대엘리베이터 회장의 경영권은 상실 직전의 위기에 처하는 듯했다. 숙부가 조카며느리를 도와주기 위해 주식을 매입하는 줄로 알았던 현 회장은 '뒤통수'를 맞게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더 나아가 금강고려화학측에서는 수익전망이 불투명한 대북사업의 재검토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기업의 입장에서 수익이 나지않는 사업에서 철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도 있지만, 대북사업 지속이라는 정몽헌 전회장의 유지가 부정된다는 점에서, 이 역시 냉혹한 모습으로 비쳐졌다.

자본주의 경제 아래에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통한 경영권 확보를 탓할 일은 분명 아니다. 누가 경영권을 갖느냐 하는 문제는 시장의 기능을 통해 결정될 문제이지, 누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리 한국 사람들의 정서라는 것이 있다. 아무래도 조카의 유지를 받들겠다고 나선 조카며느리의 경영권을 하루아침에 빼앗는 숙부의 모습이 그리 좋아보일 수는 없는 것 같다. 기업 내부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재벌가의 경영권 싸움이라는 것이 이렇게 잔인한 것인가 하는 느낌이 든다.

더욱이 현대그룹 경영권 행사를 선언한 금강고려화학 측에서 대북사업의 중단까지 검토하겠다고 한 마당이라, 단지 현대 내부의 일만도 아니다. 정몽헌 전회장의 자살 이후 대북경협사업의 지속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되었던 분위기를 돌아보면, 자칫 이마저도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 걱정이 들기도 한다.

시장의 논리도 논리이지만, 우리네 사는 것이 어디 논리로만 설명되는 것이겠는가. 정상영 회장측의 '난'을 지켜보는 마음이 그리 편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상황이 반전되는 모습이다. 현정은 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를 국민기업화하겠다는 선언을 하고 나선 것이다. 유상증자 방식의 국민주 공모를 통해 현대엘리베이터를 선진 우량 국민기업으로 거듭나게 하겠다며, 현대그룹 살리기에 국민들이 적극 동참해달라는 호소를 하고 나섰다. 이같은 국민주 공모가 성공하면 정상영 회장측의 지분이 크게 낮아지게 돼, 다시 현 회장에 밀려 대주주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

국민기업화라는 초강수 반격을 통한 사태의 반전이다. 현대 계열사 노조들도 정상영 회장측에 대한 반감을 보이며, 국민기업화 구상에 호응하는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현정은 회장을 돕자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판단이 조심스럽다. 현대엘리베이터의 국민기업화, 그리고 정몽헌 전회장의 유지를 계승한 대북사업 지속이라는 입장의 의미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생략되어 있는 문제들이 여럿 있기 때문이다.

우선 국민기업화를 말하기에 앞서, 과거 현대가 보여준 잘못들에 대해 국민들에게 사죄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정몽헌 전회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현대에 대한 동정여론이 형성된 것도 사실이었지만, 현대의 비자금 추문과 불투명 경영은 결코 그냥 지나갈 문제가 아니었다. 정권의 말 한마디에 수백억원을 갖다바친 현대의 모습에 대한 처절한 참회 없이 '국민기업'이라는 말은 한낱 구호에 불과할지 모른다.

이는 국민기업화의 청사진과도 연결되는 문제이다. 국민기업의 의미가 단지 현정은 회장의 지분상승을 통한 경영권 유지를 국민이 도와준다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현대가의 경영권 싸움에 국민들이 단지 들러리를 서는 모습밖에는 되지 않는다. 비자금 추문으로 불투명 경영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현대로서는, 마땅히 국민기업화가 갖는 적극적인 변화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전제들이 충족이 되지 않으면 국민기업이라는 말은 내부 경영권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명분축적용 전략에 불과하게 될지 모른다. 기왕에 '국민의 힘'을 빌려 상황을 돌파하기로 했다면, 진정 국민이 기업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었던가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그러고 난 뒤에 '국민기업'이라는 이름을 쓰는 것이 도리이고 순서이다.

현대엘리베이터의 국민기업화 선언이 경영권 싸움의 도구일 뿐인지, 아니면 실제로 국민기업의 가능성을 보여주려는 새로운 시도인지를 우리는 더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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