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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전 용산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의장행사에 참석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
17일 오전 용산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의장행사에 참석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는 "북한에서 억압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며 "정권 유지를 위해 수십년간 주민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고 이를 통해 반영구적으로 주민을 억압할 수도 있다"며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럼스펠드는 또한 오산공군기지에서 미군 장병에게 행한 연설을 통해 김정일 정권을 향해 주민들이 굶는데도 무기에만 돈을 쓰는 "악(evil)"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억압받는 것이 틀림없는 북한 사람들은 아이들이 야위어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무)껍질을 먹고 있다"면서, 반면에 "사악한 (북한)정권은 무기에 엄청난 돈을 쓰고 있다"며,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을 재생하기도 했다.

부시 행정부의 강경 보수정책의 실세로 꼽혀온 럼스펠드가 이처럼 대북한 독설을 퍼부은 것은 향후 한반도 정세의 불확실성을 높일 것이라는 점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게 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강경파들이 이라크에서 발목이 잡히면서 대북정책의 주도권이 콜린 파월 국무장관에게 넘어가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점에서 미국내 대북정책을 둘러싼 논란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 타임즈, "북한 남침시 미국 핵무기 사용"

한편, 미국의 보수일간지인 <워싱턴 타임즈>는 럼스펠드가 방한 기간에 북한의 남침에 대해 남한의 방어 차원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고 18일 보도해 6자회담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이 신문은 한미연례안보회의 공동성명에서 미국의 방위공약에 남한에 대한 핵우산을 계속적으로 공급하기로 한 것은 이를 반영한다고 덧붙였다.

공동성명에는 또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사용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임을 재확인하였다"고 명시해, 북한이 생화학무기나 탄도미사일을 사용해도 핵보복을 당할 것이라는 점을 강력히 암시하기도 했다.

미국이 이처럼 핵우산 제공 명시와 북한에 대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한국전쟁 이후 미국은 수천개의 핵무기를 한반도 안팎에 배치해 북한의 남침시 대량보복전략을 가지고 있었으나, 1990년대 초 남한 내 핵무기 철수와 이듬해 한반도 비핵화 선언, 그리고 94년 제네바 합의이후에 대북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은 철저하게 '모호성'을 유지했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핵태세검토보고서(NPR)를 통해 핵선제공격 대상에 북한을 포함시켜, 북한의 강력한 반발을 야기한 바 있다. 이러한 전례를 미뤄볼 때, 한미연례안보회의 공동성명에 대북한 핵사용 계획이 포함된 것에 대해 북한이 강력하게 반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참고로 미국은 태평양에 배치된 잠수함 발사 핵미사일을 비롯해 단추만 누르면 평양까지 도달하는데 1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수천기의 핵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17일 오전 용산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의장행사에 참석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가운데)과 조영길 국방장관(오른쪽).
17일 오전 용산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의장행사에 참석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가운데)과 조영길 국방장관(오른쪽). ⓒ 오마이뉴스 권우성

남한 유감 표명을, 북한 의연한 대처를

이와 같은 럼스펠드의 독설과 대북한 핵사용 언급은 2차 6자회담이 활발하게 모색되고 있는 와중에 나왔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끈다. 특히 이라크에서 발목이 잡힌 상태에서 6자 회담에 불만을 품고 있던 럼스펠드 등 강경파들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일부에서는 미국의 강경파들이 이라크에서 발을 빼는 과정에서 시선을 딴 데로 돌리기 위해 한반도에서 농간을 부릴 수도 있다는 전망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부시 행정부는 조기 주권 이양과 미군 철수를 골자로 한 이라크 정책에 대한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고, 때마침 럼스펠드의 대북 강경 발언이 쏟아졌다.

관심의 초점은 이에 대해 북한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로 모아진다. 최근 불가침조약 체결 요구를 철회하고 부시 대통령이 제안한 문서화된 형태의 다자간 안전보장 수용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동시행동' 및 '일괄타결' 의사를 밝힐 만큼, 북한이 유연한 태도를 보여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은 동시에 부시 행정부의 의도가 이라크에서 그랬던 것처럼, 대량살상무기를 이유로 자신을 공격하거나 정권을 붕괴시키는데 있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북한의 의구심을 씻기 위해 남한, 중국, 러시아 등이 발벗고 나서 북한을 설득했고, 이에 미국의 온건파와 북한이 호응함으로써 어렵게 6자 회담이 진행되어온 것이다.

럼스펠드의 독설이나 핵사용 가능성에 대한 공식적인 언급이 북한에게 미국의 의도에 대한 불안감을 다시 상기시켜 북한의 강력한 반발로 이어질 경우 한반도의 정세는 또 다시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는 6자 회담에 불만을 품어온 럼스펠드 등 미국 내 강경파가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북한은 바로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즉, 럼스펠드의 발언을 문제삼아 6자 회담에 나오지 않거나 대미외교를 강성기조로 되돌릴 경우, 이는 럼스펠드의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가장 현명한 대응 방법은 럼스펠드의 발언을 '무시'하고 6자 회담에 성실히 임하는 것에 있다.

부시의 이라크 발빼기 작전과 북한의 벼랑끝 시위가 맞물릴 경우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자제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노무현 정부 역시 이 점을 북한에게 주지시키면서 럼스펠드의 발언에 유감을 표명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이라크 추가 파병을 통해 미국의 대북정책을 유화시키겠다는 외교안보전략도 전면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확고한 원칙과 당당한 자세를 갖지 못하고 대미 저자세 외교로 일관할 경우, 미국은 동맹국으로서의 한국에 대한 예우보다는 길들이기 편한 상대로 계속 인식할 것이다. 한국을 떠나면서 럼스펠드가 쏟아 부은 발언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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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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