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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경기 양주 삼성개발공원묘원에서 있었던 '임용준 의문사' 관련, 분묘개장에 앞서 임수경씨가 제례의식을 올리고 있다.
19일 경기 양주 삼성개발공원묘원에서 있었던 '임용준 의문사' 관련, 분묘개장에 앞서 임수경씨가 제례의식을 올리고 있다. ⓒ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진상조사· 책임자 처벌, 이런 거까지 바라는 건 아닙니다. 단지 정확히 죽은 이유라도 알아야 할 것 아닙니까."

19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아래 의문사위)는 1984년 군복무 중 숨진 임용준(당시 22세, 연세대 심리학과 3학년)씨 사건을 재조사하기 위해 경기 양주군 삼성개발공원묘원에 있는 임씨의 분묘를 개장했다.

임씨는 지난 89년 전대협 대표로 북한에 다녀왔던 임수경(35)씨의 둘째 오빠다. 묘원에서 만난 임수경씨는 기자에게 위와 같이 말하며 "가족들은 아직까지 죽을 이유가 없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무언가 감춰진 것이 있다면 밝혔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권위주의 통치시대에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국가공권력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보이는 사건에 대한 진상을 규명'을 위해 대통령 직속으로 만들어진 의문사위는 2000년 10월부터 1년여간 제 1기를 끝냈고 지난 7월 제 2기를 출범시켜 1기 때 마무리 짓지 못한 17건의 의문사를 조사하고 있다. 이날 행사는 2기 들어 처음 가진 분묘개장이다.

19일 '임용진 의문사' 관련, 분묘 개장을 시작하고 있는 모습.
19일 '임용진 의문사' 관련, 분묘 개장을 시작하고 있는 모습. ⓒ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기록 남지도 않고 군 당국 협조 적어 힘든 사건"

"아들아, 내자식 용준아! 왜 너는 이렇게 억울하게 보냈는고…."

아들을 보낸 지 19년이 지났지만 유족들의 눈물샘은 마르지 않았다. 분묘 개장을 하기 직전 유가족들은 묘소 앞에서 오열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 유족들은 의문사위에서 준비한 간단한 제례의식에 동참했다. 그리고 오전 11시 30분, 19년 동안 땅속에 묻혔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묘소를 파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날 분묘개장에는 임수경씨와 아버지 임판호씨 등 유가족 6명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한길로 박사, 의문사위 홍춘의 상임위원 등 15여명의 관계자들이 참가했다.

개장이 진행되는 동안 묘소 바로 밑에서는 의문사위 이번 사건을 책임지고 있는 박종덕 조사 3과장의 인터뷰가 있었다.

- 이번 분묘개장의 목적은 무엇인가
"(임용준 의문사는) 사건이 일어난 지 20여년이 지났지만 사진, 기록이 전혀 없는 특이한 사건이다. 당시 군 당국은 자살이라고 했지만 유족들은 타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오늘 수습된 유골을 감정해 총알이 어느 부위에 어떻게 관통했는지 알아볼 것이다. 또 당시 동료 부대원 중 총성이 1번이 아니라 3번이라고 밝힌 사람도 있다."

- 현실적인 어려움은 없는지?
"조사를 진행하는데 있어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당시 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보안대(현 기무사)에서 협조를 않고 있다. 허원근 일병 사건의 경우, 우리가 타살로 발표했지만 이를 군 당국은 자체조사를 통해 다시 자살로 번복 발표하는 등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비교적 잘 보존된 목관이 관계자에 의해 묘 밖으로 올려지고 있다.
비교적 잘 보존된 목관이 관계자에 의해 묘 밖으로 올려지고 있다. ⓒ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1시간 여가 지난 낮 12시 20분께, 드디어 시신이 담긴 목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위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모여든다. 잠시동안 관 위에 있던 흙을 마저 파낸 뒤, 드디어 관이 번쩍 들어올려졌다.

관 사이로 드러난 시신은 예상과는 달리 유골 상태가 비교적 잘 보존돼 있었다. 유골에는 군복이 입혀져 있었고 거기엔 양말까지 신겨 있었다. 국과수 한 박사는 이에 대해 "습기가 차 있으면 시신 보존이 이렇게 (비교적 잘)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유골을 유심히 살펴본 한 박사는 유골을 수습하며 "일단 조사를 해봐야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조심스레 말했다.

"죽은 바로 다음날 면회하기로 했는데 왜 자살하겠나?"

오빠의 무덤을 지켜보고 있는 임수경씨
오빠의 무덤을 지켜보고 있는 임수경씨 ⓒ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모든 작업이 끝난 시간은 오후 2시 30분께. 이미 대부분의 취재진이 돌아간 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을 덤덤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임수경씨가 입을 열었다.

"고2 때의 일이다. 6년 터울의 둘째 오빠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죽은 바로 다음날 가족이 면회를 가기로 해 오빠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군에서는 자살이라고 했다. 특히 오빠가 좋아했던 캐나다에 사는 고모도 함께 간다는 걸 알았다. 적어도 왜 죽었는지 이유라도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임씨는 차분히 자신의 생각을 펼쳐나갔다. 당시 유서는 나오지 않았고 용준씨는 일병 진급 뒤 휴가를 앞둔 상태였다고 한다.

"당시 가족들은 진실을 밝히고 싶었지만 상황(5공 시절)이 그랬으니 만큼 삭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내가 그렇게 되고 (북한 방문 등) 김대중 정부 들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생겨 우리가 가장 먼저 진정서를 냈다. 19년간 어떻게 이 일을 잊을 수 있는가."

임씨는 이어 "유골을 통해 진실을 밝히기 힘들다고 해도 끝까지 노력하겠다"며 "의문사위에서 애써줘서 고맙다"고 의문사위에 감사를 표시했다.

임씨에 따르면, 당시 자료는 군의관 검안서 한 장이라고 한다. 현재 대전 모 병원에 근무하는 이 의사는 입을 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날 끝까지 자리를 지킨 20여명은 묘원 밑 한 음식점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했다. 유가족과 관계자들은 홀가분한 표정이었지만 이들의 얼굴에선 무언가 모를 그림자도 찾아볼 수 있었다.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의문사위 한 관계자가 답했다.

"강제로 일을 추진할 수 없다는 어려움이 크다. 하지만 이렇게 조금씩 일이 추진되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언론에서도 도와줬으면 한다."

포병부대 근무중 자살... 유족들, 타살 주장

연세대학교 81학번으로 연세교육방송국(YBS) 취재부 기자로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임용준씨는 '81년 11월 교내 시위에 참여했다가 서대문 경찰서에 연행됐다. 이후 조사를 받고 풀려나 84년 4월 군입대까지 대학당국과 경찰, 안기부 등 기관원으로부터 입대를 종용받았다고 의문사위는 밝혔다.

용준씨는 입대 뒤, 강원도 철원의 한 포병부대에 근무하던 중 자살했다고 알려졌다. 유족들은 자살 아닌 타살 가능성이 높다며 2000년 11월 의문사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제1기 의문사위 동안 진상규명 불능 판단으로 제2기로 넘겨졌다.

위원회는 이 건을 "학생운동 관련자 격리를 목적으로 구속 조치와 별도로 군 입대시킨 뒤, 운동 전력에 대해 보안사령부 등에서 사찰, 내사, 수사 대상으로 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로 판단하고 있고 이에 대해 의문사진상규명을위한유가족대책위 관계자는 "프락치 활동을 강요했다가 말을 듣지 않아 첫 휴가 전에 죽였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용준씨는 첫 휴가를 곧 나올 예정이었다. / 강이종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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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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