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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
책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 ⓒ 문학세계사
아멜리 노통의 이 소설은 기상천외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세 살 이 안된 아기의 생각을 전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 천재적인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세 살이 될 때까지 아기다운 행동을 보여야만 어른들이 실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기 같은 행동을 보여 준다.

이 조그만 꼬마 주인공이 하는 생각들은 어른들의 사고를 뛰어 넘는 철학적인 내용들이다. 신과 실존, 삶과 죽음, 언어의 위력 등 철학적 사고를 펼치는 아기의 엉뚱함에 독자는 웃음을 금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철학적인 내용들은 아기의 시각과 혼합되어 경쾌한 문체로 전개된다.

소설의 발단은 신에 대한 의미 부여로부터 출발한다.

"태초에 아무 것도 없었다. 그 없음은 공(空)도 불확실함도 아니었다. 그냥 무(無) 그 자체였다. 그것은 신이 보기에 좋았다. 아무리 대단한 것을 줘도 신은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았을 것이다. 신은, 무(無)의 상태가 단순히 마음에 드는 정도가 아니었다. 신은 무(無)에서 충만감을 느꼈다."

여기서 신은 곧 아기이다. 아기에게 있어 세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기라는 존재가 그렇듯이, 신은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부터 충만감을 느낀다. 이처럼 아기의 속성과 신의 속성은 서로 유사하기에 일찍이 일본에서는 아기를 '신'이라고 부르고 대접했다고 한다. 그것도 오직 세 살 이전까지의 어린 아이만.

하지만 무(無) 속에 존재하던 아기가 어느 날 깨어난다. 그 깨어남은 소리지름을 통해 표출되고 이 집안의 모든 사람들은 아이의 깨어남에 무척 당황한다. 이 당황스러운 순간을 해결하는 것이 바로 할머니가 주는 화이트 초콜릿이다. 이 초콜릿의 달콤함으로 아기는 세상에 눈을 뜨게 된다.

아기가 겪는 온갖 혼란스러운 세상의 상황들은 재치 있는 문체로 묘사된다.

"파이프도 똑같이 하고 싶었다. 우주를 명명하는 것이야말로 신의 중요한 특권 중 하나가 아닌가? 그래서 그는 손가락으로 장난감 하나를 가리키고 나서, 장난감에게 존재를 부여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가 만드는 소리들은 일관성 있게 이어지지 않았다. 제일 먼저 놀란 사람은 그였다. 말을 할 수 있다고 아주 자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놀라운 느낌이 가시자, 이런 상황이 수치스럽고 도저히 용납할 수 없게 느껴졌다. 그는 분노에 사로잡혔다."

아기들이 처음 말을 시작할 때에 느낄지도 모르는 감정들을 재구성하여 전하는 내용이다. 이 책이 지닌 문체의 매력은 바로 이와 같은 아기의 엉뚱한 생각들에 대한 묘사에 있다. 독자는 이처럼 아기의 생각을 읽으면서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상상하고 재미를 느낀다.

"두 살 반. 고함, 노여움, 증오. 신의 손과 목소리는 세상에 접근할 수 없다. 신의 주변은 접이식 철제 침대의 세로대가 막고 있다. 신은 감금되어 있다. 나쁜 짓을 하고 싶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침대 시트와 이불에 마구 발길질을 하면서 분풀이를 한다."

어린 아이가 하는 행동들을 한 실존적 인간이 생각을 가지고 하는 행동처럼 묘사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의 서술자가 지닌 가장 큰 특징이다. 너무 일찍 정신적으로 성숙한 아기가 '아기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어른이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과 너무 다르다.

남자아이를 상징하는 것이 잉어라고 듣는 순간 주인공은 자기가 제일 싫어하는 오빠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잉어를 싫어한다. 하지만 이 아기가 잉어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는 부모님은 세 살이 되는 생일 선물로 잉어를 선물하는 것이다. 그들의 먹이 먹는 입을 보면서 그녀는 튜브 모양을 생각하고 인간의 죽음을 생각한다.

이 아기는 어른들의 마음까지 아주 배려하는 아이이다. 그래서 부모들을 흡족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 가장 처음 던지는 언어로 "엄마, 아빠"를 선택한다. 그 이유는 오로지 부모로 하여금 "본인들이 중요한 존재라는 느낌을 받게 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그 다음 단어로 "진공청소기"를 잘못 선택하는 바람에 부모님으로부터 약간의 실망을 받는다.

"언어에는 어마어마한 위력이 있다. 내가 큰 소리로 언니의 이름을 부르기 무섭게 우리 두 사람이 서로에게 불타는 애정을 느끼게 된 것을 보면 말이다. 언니는 나를 붙잡고 꼭 껴안았다.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마신 사랑의 묘약처럼, 이 단어는 우리 두 사람을 영원히 하나로 묶어 주었다."

언어의 의미에 대하여, 사람의 죽음과 존재에 대하여, 강대국과 약소국의 관계에 대하여, 인간 관계에 대하여, 이 조그만 아이가 전하는 이야기들은 가볍지만 무거운 주제성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해학적이면서도 철학적이다.

가벼움 속에 무거움을 전하는 것이 이 소설의 목적이라면, 작가는 꽤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복잡한 아이의 생각 속에 그 무거운 주제들을 찾아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독자의 몫에 맡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

아멜리 노통브 지음, 전미연 옮김, 문학세계사(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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