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중앙역에 내렸다. 일부러 인터넷을 통한 사전 정보 없이 부딪히며 헤쳐나가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에 투어리스트 인포메이션을 찾고 있었다. 15분 가까이 찾았지만 투어리스트 인포메이션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 때, 동양인 남자 한 명이 내 앞을 지나갔다.
배낭여행을 하면서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을 나름대로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얼굴 생김새에도 묘한 차이가 있는데 그건 뭐라고 꼬집어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설명할 수 있는 기준으로 이야기 하자면 커플이 함께 다니면 대부분 일본인, 가족이 함께 다니면 대부분 중국인, 친구와 함께 다니면 대부분 한국인이었다. 나는 그 동양인 남자가 한국인이라고 확신했는데 그는 일본인이었다.
우린 함께 투어리스트 인포메이션에서 같은 숙소를 배정받았고, 그 인연으로 네덜란드에서의 여행을 함께 했다. '요시'라는 이름의 이 일본인 친구는 내가 흉내낼 수도 없을 만큼 꼼꼼했다. 말로만 들었던 일본인의 철두철미함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는 트램(전차) 번호와 내릴 역을 확인하고, 지도에 유스호스텔의 위치를 표시하고, 그것도 모자라 유스호스텔의 전화번호까지 받아 적고서야 그곳으로 출발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트램에서 내려 유스호스텔을 찾아갈 때, 그는 한 블록을 지날 때마다 자신의 위치와 지도를 확인했다. 무작정 길을 나서고 보는 나와는 확실히 다른 '길찾기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에겐 모두 자신의 가치와 라이프 스타일이 있다. 여행을 할 때 길을 찾아나서는 방법도 수없이 많다.
방향감각이 무디고 공간지각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에게 지도는 사실 무용지물이다. 그런 이들에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사람에게 길을 물어보는 것이다. 혹은 나처럼 어느 정도 지도로 방향을 잡고, 일단 무작정 길을 나선 후에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는 스타일도 있다. 그리고 요시처럼 지도를 확인하면서 나아가는 방법도 있다. 요시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는 것 자체를 쑥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요시의 방법은 '정확한(!) 길찾기'였으므로 길을 잃어버리는 미연의 사태를 방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 시간을 지체했다. 지도와 거리명을 확인하느라, 좀처럼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계속 시간을 잡아 먹었다.
주위의 풍경과 사람들 구경을 할 수 없다는 것도 단점이었다. 말없이 그의 뒤를 따르던 나는 요시에게 “이번엔 내 차례다. 내가 앞장을 서 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 나갔다.
길을 잘못 들어선 경우도 있었지만, 다시 방향을 잡고 길을 나섰다. 아예 방향을 잡지 못할 때는 지나는 사람에게 길을 물어 다시 방향감각을 되살리려고 애썼다.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 우리는 목표한 풍차마을(잔세스칸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는 길이 아주 쉬웠던 탓도 있지만 지도만을 믿고 살리지 못했던 방향감각을 활용했기 때문이었다.
풍차마을은 정말 근사했다. 강변에 늘어선 풍차가 바람을 맞으며 돌아가고, 그 뒤로 펼쳐진 목초지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여행에 지친 육체의 피로가 조금씩 바람에 날려 사라졌다.
나는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생각에 잠겼다. 문득 내 20대 생각이 났다. 나는 '완벽한 계획(!)'을 짜려고 늘 준비했다. 완벽한 계획, 완벽한 지도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으며 길 떠나기를 미루었다. 단 한 방의 펀치로 나를 가로막는 세상을 때려 눕히고 싶어했다.
서른이 되어 난 깨달았다. 이 세상에 '완벽한 지도'는 없다는 걸. 다만 앞으로 나가면서 부딪히고, 실수를 하는 것만이 있다는 걸. 그 대결과 실수를 통해서만 불완전한 계획이 조금씩 완전해 질 수 있다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더듬이를 세워야 한다. 그래서 자신의 방향감각을 믿고 헤매며, 부딪치며 나아가야 한다. 길이란 '완벽한 지도' 속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헤매며 찾아지는 것이었다.
인생의 교훈은 '계획'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늘 우연과 실수를 통해 사람들에게 임한다. 중요한 건 머뭇거리지 말고, 주저하지 말고, 망설이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지나치게 완벽한 지도를 가지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 곳도 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