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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신문을 읽었다> 표지
<옛날 신문을 읽었다> 표지 ⓒ 다우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시간과 공간을 단 한 순간도 벗어날 수 없다. 그 중에서도 단 한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시간의 소중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 한 개인의 삶에서나, 한 조직, 나아가 한 국가의 흥망성쇠 역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기와 자서전을 쓰고, 역사를 기록한다.

그 중에서도 신문은 특별한 역사책이다. 신문은 오늘의 역사를 기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만큼 생생하고, 당시의 사회 분위기와 기자의 관점이 여실히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을 고려해보면 신문만큼 살아있는 역사책도 드물 것이다.

신문사에서 일했던 저자 이승호는 옛날 신문을 뒤져 읽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 취미가 바로 이 책을 묶게 된 결정적인 동기가 되었다. 그는 옛날 신문을 통해 '옛날의 오늘'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옛날의 오늘은 단순히 과거의 기록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반성과 도약의 다짐을 하게 만든다. 그게 저자가 주장하는 옛날 신문의 좋은 점이다.

<옛날 신문을 읽었다>는 신문 자료를 바탕으로 한 저자의 분석과 기억의 토대 위에 쓰여졌다. 저자는 쉽게 읽히는 편안한 글을 쓰면서도 날카로운 지점을 찾아내 사회와 한국인의 의식구조에 쓴 소리를 한다. 그의 목소리엔 더없이 정겨운 옛날의 향수와 추억도 묻어있다.

그리운 불량, 그리운 옛날

우리의 추억 속에서는 선연하지만 이제 주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사라진 소품들.
우리의 추억 속에서는 선연하지만 이제 주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사라진 소품들. ⓒ 다우
이 책의 차례가 적혀있는 페이지에는 군고구마를 굽던 드럼통과 머리를 박박 밀 때 쓰던 바리깡, 태엽을 감아 턴테이블을 돌리던 축음기와 구형 라디오, 털이 달린 옛날 고무신의 사진이 여백을 채우고 있다. 옛날을 기억하게 만드는 소품들. 저자는 옛날로 여행을 떠나는 '타임머신'에 시동(!)을 걸며 옛날을 기억하게 만드는 첫 소품으로 불량식품을 끄집어낸다.

옛날의 추억을 조금씩 되짚어가면서 저자는 독자들을 과거로 데려간다.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을 준다는 이유로 경찰이 장발을 단속하던 두발자유 상실의 시대, 이름도 거창한 재건대원(넝마주이)이 활동하던 절약시대, 기생충 박멸을 국가에서 강력하게 추진했던 채변봉투의 시대, 눈 오는 날 캠퍼스에서 영화 <러브 스토리>의 명장면을 흉내내던 연인에게 총장님이 정학처분을 베푸신(?) 남녀칠세 부동석 시대 등등…

채 반세기도 지나지 않은 옛날의 오늘은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도통 이해하기 어려운 일 투성이다. 하지만 그런 시대가 있었기에 사회는 변화의 계단을 밟아 현재에 이르렀다는 걸, 저자는 아주 쉽고 명쾌하게 보여준다.

옛날을 기억하고, 옛날을 산 어른들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옛날이 없었다면 오늘도 없었다.

국민은 계몽의 대상이 아니다

2003년 늦가을 우리 사회는 진보와 보수(이런 이분법적인 개념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가 서로 목소리를 높이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적어도 둘 이상의 관점이 존재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군인이 아닌 사람이 대통령인 시대, 방송에 출연해서 대통령을 '무능력자'(?)라고 비판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만큼이라도 우리의 사회가 관대해지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걸까.

저자는 옛날 신문을 통해 슬랩스틱 코미디를 떠올리는 과거의 닫힌 사회를 보여준다. '보리밥 잘 먹어 표창장을 수여함'이라는 글에서 저자는 70년대 사회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일화를 하나 들려준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엔 혼식이 국가 차원에서 국민의 의무로 강요되던 시절이었다.

1976년, 서울 용문고등학교 2학년 시절입니다. 저의 어머니 김득중 여사는 그날 아침 깜빡하셨는지 쌀밥을 짓는 실수를 저지르셨습니다. 뒤늦게 실수를 발견하신 김 여사는 "얘야, 어떡허냐"하면서 큰 걱정을 하셨습니다. 저는 "어머니, 걱정마세요. 별일 없을 겁니다"하면서 씩씩하게 등교길에 올랐지요.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입니다. 그날 대대적인 도시락 검사가 있었지요. 키가 작아 땅콩이란 별호를 갖고 계시던 공포의 훈육주임께서 직접 우리 반에 왕림하셨습니다. 제 도시락의 흰쌀밥을 보신 그 분은 저를 매우 치셨습니다. 한 10분간 이렇게 소리소리 지르시면서. 10분간 떠드신 내용이지만 요약하면 이런 거였지요.
“이 애국심이라곤 코딱지 만큼도 없는 놈! 나라 걱정 하나도 안 하는 놈!”


혼식이 곧 애국애족의 길이었던 시대는 지나가고 2002년에는 '아침밥 먹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과연 시대가 변하기는 변했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 사회가 아직도 국민을 계몽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분명한 건 국민은 계몽의 대상의 아니며, 자율적이고 민주적으로 설득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이다.

이 밖에도 영화 상영 전에 애국가를 틀어주던 시대와 스포츠로 국민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스포츠 금메달이 최고의 애국으로 인정되던 스포츠 전성시대 따위 소재를 통해 저자는 닫힌 사회에서 열린 사회로 이동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거듭나기를 짚어주고 있다.

하나만 덧붙이자면 스포츠에서 승리와 연관된 지나친 집착(?)이 어떤 국가이데올로기에서 시작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마라톤 우승해서 조국통일 앞당기자'라는 옛날 신문의 기사를 인용했다. 축구를 비롯한 스포츠의 지나친 승리에 대한 집착은 어쩌면 닫힌 사회의 유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기는 자와 지는 자가 있기 마련이므로 승패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스포츠는 즐기기 위해 있다는 걸 잊지 말자.

밑줄 그은 부분 1
국가가 강요한 애국이데올로기

'극장 애국가' 얘기를 안 할 수가 없군요. 한 시절 영화 보러 극장 가면 상영 전에 관객들을 일으켜 세우고 애국가를 틀었지요. (무슨 얘긴지 모르시는 분은 아버님이나 형님, 누님에게 물어보시길)

근데 이게 참 그랬던 게 '성웅 이순신' 같은 영화를 보기 전에 애국가를 듣고 부르면 괜찮은데, '피조개 뭍에 오르다' 같은 영화를 보게 되면 그 기분이 영 묘해지는 겁니다. 심하게 말하면 무슨 인격분열 되는 느낌까지 들고 말이지요.

애국심에도 근대적인 애국심이 있고, 전근대적인 애국심이 있을 겁니다. 시민의 자유, 민주주의의 원칙을 근거로 한 애국심에 대해서는 누가 뭐라 시비를 걸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개인이든 집단이든 파워엘리트 그룹이든 특정 대상을 우상화하고 신격화하기 위한 공작의 산물이라면 그것은 위험천만한 전근대적 애국심일 겁니다.

이런 오도된 애국심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절대화하고 자신이 속한 집단 밖의 다른 집단에 대해 적대하고 두려워하고 시기하는 원시감정(原始感情)인 이른바 에스노센트리즘(ethnocentrism)에 빠질 위험이 농후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회일수록 국가의 상징과 슬로건, 국가의 도덕률이 넘쳐흐르게 되지요>
(이상 ‘애국심 전성시대’ 중에서)

사실 한국의 국가주의적(혹은 군국주의적?) 스포츠 발전에는 박정희와 전두환의 공이 큽니다. 특히 축구와 배드민턴을 즐기던 만능 스포츠맨 전두환은 스포츠 대통령이라고 불릴 정도였지요.

전두환이 정권을 잡고 이른바 3S정책(스포츠·섹스·스크린)을 통해 전국민의 우민화(?)를 시도했다는 것은 이제 정설로 굳어져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스포츠 입국'이라는 구호 기억나세요? 아마 전 정권 때 나온 말일 겁니다.

한국에서 '스포츠 정치학'이라는 용어는 그래서 아주 불온하며 음모의 냄새를 풍깁니다. 파쇼정권은 체제유지를 위해 안전장치로써 늘 스포츠를 동원합니다.
('마라톤 우승해서 조국통일 앞당기자' 중에서) / 이승호


반공 이데올로기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재건대원(넝마주이)의 절약시대와 두발자유 상실의 시대
재건대원(넝마주이)의 절약시대와 두발자유 상실의 시대 ⓒ 다우
한국사회의 문제점 중 하나는 권력의 잘못을 끝까지 추궁하여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는데 있다. 멀리는 친일매국의 원흉을 가려내는 일이 그랬고 가까이는 광주민주화 항쟁이 그랬고, 금강산댐 사건이 그랬다. 근현대사의 비극적인 사건들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역사를 되돌아보고 철저하게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필자는 책을 읽으며 저자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왜 한국사회는, 한국검찰은 희대의 사기극, 금강산댐의 전모를 밝혀내지 못하는 것일까. 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확실하게(!) 회수하지 못하는 것일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지며 죄 지은 자는 반드시 처벌을 받고, 고난을 참으며 희생한 자는 반드시 보답을 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의 역사 속에서 불의와 맞서며 진실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나타날 것이다.

저자는 70년대에서 90년대까지 한국사회를 철저하게(!) 장악했던 반공이데올로기의 실체를 여실히 보여준다. 반공이 국시였던 시절, 반공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독재정권은 철저하게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민족을 양분화시켰다.

햇볕정책 덕에 금강산에도 갈 수 있고, 이해와 상호협력의 기틀이 마련되고 있지만 한반도는 여전히 세계에서 전쟁 위험이 높은 곳이다.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과거를 거울 삼아 깨달아야 한다. '무조건적인 반공'이 국가안보를 위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저자가 들려주는 70~90년대의 반공 포스터 표어는 의미심장하다. 변해야 한다. 그래야만 통일을 이룰 수 있다. 반공 이데올로기의 조작에 더 이상 속지 말자.

밑줄 그은 부분 2
진실은 밝혀지고 죄 지은 자 처벌받는 사회되어야 한다

당시, 즉 1987년에 전국민을 공포와 저주에 빠져들도록 한 주문과 주술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 정체는 전두환 정권 희대의 사기극,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북한이 금강산댐을 무너뜨려서 남한을 물바다로 만들지도 모르니 우리도 그 물공격에 대비해 평화의 댐을 만들자"는 것이었지요.

기억 나시나요? 그 때 막 뽀뽀뽀를 따라 부르던 유치원생부터 경로당에서 화투 치시던 할머니까지 TV에 줄줄이 나와 김일성과 김정일을 규탄하며 돼지저금통을 깨고 그랬잖아요. 그 비이성적인 집단 히스테리! 그 히스테리는 공포 때문이었지요.
(이상 '금강산댐, 87음모' 중에서)

'때려잡자 공산당' 혹은 '쳐부수자 공산당'이라는 표어지요. 뭐 이런 포스터를 너나 없이 그렸고 어떤 친구들은 더 멋진 표어를 찾기 위해 국어사전을 뒤지기도 했습니다. 다음은 그렇게 생산된 반공 표어 히트작들입니다. (띄어쓰기 무시하고 운율에 맞게 붙여 쓰겠습니다)

우선, 해방 이후부터 70년대까지는, "승공만이 살길이다 북진통일 이룩하자" "때려잡자 김일성 물리치자 공산당" "어둠속에 떨지말고 자수하여 광명찾자" "우리모두 계승하자 이승복의 반공정신"이 히트작이었습니다.

80년대에는 "의심나면 다시보고 수상하면 신고하자" "한순간의 좌경사상 후손들의 눈물된다" "혼란속에 간첩오고 안정속에 번영한다"가 있었습니다. "후손들의 눈물"이라는 표현은 자연스레 그 고약한 연좌제를 떠올리게 하고 있지요?

자, 90년대 역시 오십보백보입니다. "북한속셈 변화없다 위장평화 경계하자" "체제전복 획책하는 좌익사범 신고하자" "확고한 안보의식 자유민주 꽃피운다" "환상적 통일논의 경계하자 적화통일"이 있군요.

햇볕정책의 2000년대, "이곳은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우리의 몫입니다", "때려잡자"에서 "다름 인정"까지 오는데 한 사오십년 걸린 것 같습니다. ('데마고그의 시대' 중에서/ 데마고그 demagogue: 대중에게 과대한 공약을 내세운 선동으로 권력을 획득, 유지, 강화하는 정치가) / 이승호


옛날부터 피땀 흘린 사람들은 서민이었다

힘들고 고단했던 시절의 출근길. 서민을 대표하는 안내양. 그 옛날 땀 흘리며 사시던 우리 부모님들의 모습은 아닐까.
힘들고 고단했던 시절의 출근길. 서민을 대표하는 안내양. 그 옛날 땀 흘리며 사시던 우리 부모님들의 모습은 아닐까. ⓒ 다우
버스 뒷문을 두들기며 '오라이, 오라이'를 외치던 사람을 기억하시는지. 바로 버스 안내양이다. 저자는 안내양과 재건대원 같은 옛날에도 그랬고, 현재도 사회의 가장 큰 줄기를 이루는 서민층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목숨을 걸고 월남에 가고,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중동으로 떠났던 사람들. 그들이 오늘의 풍요를 일구어낸 우리 사회의 진짜 주인이라고 말한다.

지금 한국경제는 불황이다. 더욱이 정치도 혼란스러운 지경을 넘어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를 정도다. 하지만 하나만은 기억하자. 우리 사회가 무엇을 하든지 그건 이 땅을 일구는 농민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 박봉의 월급봉투에서 세금을 꼬박꼬박 바치는 샐러리맨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 사회의 약자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저자는 이제는 할머니가 되었을, 고단했던 시절의 안내양을 위한 기도를 한다.

안내'양'이 한국에 등장한 것은 60년대지요. 교통부장관이 1961년 6월 17일자로 여차장제를 도입했던 것입니다… 그 이후로 전국 모든 버스의 차장은 17~18세에서 23~24세까지의 여성으로 바뀌었고 무작정 상경한 소녀들의 직업전선을 형성했던 것입니다.

안내양의 가장 큰 임무는 사람들을 버스 안으로 우그려 넣는 것이었습니다. 푸시맨의 역할이 가장 중요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기를 쓰고 차에 오르려 하고, 안내양은 그들을 끌어내리고… 안내양이 우리들의 시야에서 사라진 것은 아마 80년대 중반일 겁니다. 당시 정부는 시내버스 자율화 조치라는 것을 내놓았는데 그 뒤로 안내양이란 직업이 사라진 겁니다.

"안내양을 직업인으로 당당하게 대해주기 바란다"는 말에서 비애감도 듭니다. 사실 한강의 기적, 번영의 신화를 만든 진정한 주체는 바로 문 양과 같이 열심히 살고, 열심히 사랑한, 소박한 노동자 아니겠습니까? 이제 쉰 정도 되었을 그 시절의 '문 양', 아드님이 운전하는 자가용 승용차에 올라 여행도 다니시고, 맛있는 음식점도 찾아 다니시기를. 그렇게 행복하게 살고 계시기를('큰 언니 훈장 받았네'중 에서)

옛날 신문을 읽었다 - 1950~2002

이승호 지음, 다우출판사(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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