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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병진
폭력과 만행으로 점철된 지난 세기 일본의 전쟁책임을 끈질기게 추궁하기 위해서다. 이는 독일과는 달리, 전후 일본이 구일본 제국이 저지른 범죄를 스스로 심판하기는커녕 오히려 은폐, 왜곡, 부인으로 일관하면서 버젓이 계승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저자들이 불행한 과거사를 따져 묻는 것은, 오늘의 현실이 과거를 '소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서경식과 다카하시의 연속대화는 1998년부터 1999년까지 총 일곱 차례나 계속되었다. 그 대화 내용을 일본의 진보적 잡지 <세카이 世界>가 기록하여 연재했던 것을, 이 책은 수정 보완하여 단행본으로 엮은 것이다. 전후 일본 문제에 관하여 길고도 진지한 두 저자의 대화는 약 반년간이나 진행되었다. 그렇다면, 역사학자도 아닌 그들이 무슨 계기로 이런 작업을 시작했을까?

재일 조선인인 서경식씨는 71년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사건'으로 긴 옥고를 치른 서승·서준식씨의 동생이다. 이러한 그의 개인 내력은 제국주의, 국가주의의 폐습 및 냉전체제의 희생자들에 대한 관심을 자연스레 갖도록 만들었다.

다카하시의 경우엔 토종 일본인에 속하지만, 유럽철학을 연구하다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홀로코스트(유태인 대량학살) 문제와 부딪히면서 '일본인의 전후 책임'이라는 과제에 깊이 관심 갖게되었다고 한다. 그는 정치 폭력의 피해자에 대한 '응답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들은 전쟁에 대한 기억과 증언을 아무도 들으려고도, 믿어주려고도 않는 현상에 깊은 우려를 갖고 있다.

그들이 보기엔 이는 유대계 정치사상가 한나 아렌트가 제기한 '망각의 구멍'과도 같은 것이며, 나치 독일과 스탈린의 소련 전체주의가 보여준 특징이었던 '기억의 말살' 정책에 그대로 동조하는 꼴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도 피해국의 국가수반 조차 "역사의 청산"을 너무도 쉽게 말하면서, 지난 과거사를 미래를 위해서는 마치 거추장스러운 듯 취급하려 드는 현실이다.

심지어 지난 김대중 정권은 일본 천황을 초청하고 싶다는 뜻을 정식으로 표명하기도 한 바 있다. 천황 초청으로 '역사 청산'과 '한일 신시대'를 연출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이럴진대 일본 내에서 보수파들이 자위대의 군대화를 서두르며, 역사교과서를 제멋대로 왜곡하고, 각종 망언과 야스쿠니 신사를 통해 군국주의 회귀를 획책하는 것을 어찌 문제삼을 수 있겠는가. 서경식씨는 소위 "역사의 청산"에 대한 다음의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고 있다.

"역사는 책의 페이지를 넘기듯이 갱신해 가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제아무리 국가 권력이라고 해도 있었던 것을 없었던 일로 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의 청산'이란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역사는 지층처럼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문서 자료가 남는 일도 거의 없을 뿐더러 문서를 남기는 사람은 권력의 중심에 가까운 사람, 남성, 글을 쓸 수 있는 사람뿐입니다. 그러니 문서만이 아니라 전승되는 이야기나 신화, 고고학적 수법 등을 활용해 오래된 지층에서 기억을 불러일으키려 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현재의 요청에 의해 과거의 지층으로부터 죽은 이들, 망령이 된 증인들이 소환되고 있는 것입니다." <43쪽>

이 책은 현재 일본 내의 정치 사상적 흐름을 잘 보여주며, 저자들의 풍부한 지적인 사유와 통찰 또한 맛보게 한다. 그러면서 전후 일본의 책임이 어떤 방식으로 은폐, 왜곡되는 지를 예리하게 파헤치고 있다.

저자들이 특히 가장 걱정하는 바는 일본 내의 사회 각층에 널리 퍼져 있는 "비판 정신의 쇠약"이라는 현상이다. 지난 2001년에 일본 극우파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가 터지자 이를 규탄하는 국내 여론이 한참 들끓었다. 그러다가 결국 몇 군데 학교에서 채택하는 데 그치자, 그것을 두고 한국 정부는 "일본 시민 양식이 발휘되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서경식씨는 그건 상황을 잘 모르고 하는 오판이라고 보고 있다. 현지 일본에서 그가 실감하기로는, 현시점에서 "일본 시민의 양식"이라는 것에 별로 큰 기대를 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사죄와 망언 사이에서/ 원제- 패전후론>라는 책으로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는 가토 노리히로만 해도, 한국 내에서는 우파의 국가주의에 대항해 아시아의 전쟁 피해자에 대한 사죄를 부르짖는 사람인 양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가토의 논리는 사실상 국가주의에 투항하는 시민 리버럴에 다름 아님을 설득력 있는 논리로 조목조목 비판을 가하고 있다.

국가가 전쟁에서 죽은자를 '자국을 위해 죽은 자'로서 위령하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는 타카하시의 주장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는 국가에 의한 관리하에 죽은 자를 두는 것이 아니라 가족, 유족에게 돌려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만일 국가가 그들을 부추겨 전쟁에서 죽게 한 것을 진정 미안하게 생각한다면, 정부 대표자가 각 유족에게 가서 조의를 표하면 된다고 말한다.

파국으로 치달은 일본이라는 상황을 통해서 나온 성찰이지만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의 이런 주장은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넘어서고자 하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국가와 비판적 거리를 두는 저자들의 비판적 구상력은, 스스로를 국가가 벌인 전쟁에 "말려들었다"며, 국가와 자신을 일체화하여 그릇된 피해자 의식을 가진 일본인들 각 개인에 대한 책임까지도 분명히 하고자 한다.

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

서경식.타카하시 테츠야 지음, 김경윤 옮김, 삼인(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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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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