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 나졸이, 금군 모조리, 순령이 수십 명이 일시에 내달라 토끼를 에워쌀제, 진황 만리장성 쌓듯 산양싸움에 마초 싸듯, 영문출사 도적 잡듯, 첩첩이 둘러싸, 토끼 드립디 잡는 모냥, 토끼 두 위를 꼭 잡고, ‘엇다, 이놈. 네가 퇴끼드냐?’ 토끼 깜짝 놀래 사지를 벌벌 떨며, ‘아니 내가 토끼 아니오.’ ‘그러면 네가 무엇이냐?’ ‘내가 강아지요.’
‘개 같으면 더욱 좋다. 선간목후간족이라, 삼복달음에 너를 잡아 약개장(약을 넣어 끌인 개장국)도 좋거니와 니 간을 내어 오개탕(개의 간과 닭으로 요리한 음식) 달여 먹고, 네 껍질은 벗겨 내야 잘량 모아서 깔고 자면 어혈 혈담 명약이라. 이 강아지를 몰아가자.’ 우 달려드니, ‘아니 내가 강아지도 아니오.’ ‘그럼 네가 무엇이냐?’ ‘내가 송아지오.’”
이것은 바로 신나라뮤직(대표 정문교)에서 판소리가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기념으로 내놓은 음반 ‘판소리-판소리의 젊은 명창들’의 한 부분이다. 그동안 우리는 소위 귀명창이라 하여 임방울, 박동진, 조상현, 김소희 등의 명창소리만 들어왔다.
명창들은 완숙한 경지에서 나오는 기막힌 소리를 뽑는다. 그러데 어딘가 모르게 힘이 약하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 음반의 소리는 20대 젊은 소리꾼들답게 정말 힘있게 뻗어 나간다. 춘향가를 부른 정은혜(20)부터 흥보가의 임현빈(28)까지 이 음반을 녹음한 이들의 나이가 모두 20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의 힘찬 목소리는 판소리가 나이든 명창들만의 전유물이 아니고, 얼마든지 젊은이들의 매력을 뿜어낼 수 있는 미래의 음악임을 말해주고 있다.
이 시디에서 처음 들리는 소리는 현재 서울대 국악학과에 재학 중인 재원으로 무형문화재 최승희, 송순섭 등에게 배웠으며, 2002년 21세기를 빛낼 우수 인재상(대통령상)을 받은 정은혜이다. 고수 임현빈의 북장단에 맞춰 <춘향가> 중 ‘오리정 이별’과 ‘옥중가’를 정은혜는 힘이 넘치고 강한 개성이 돋보이는 소리를 선보인다. 상청이 거침없이 뿜어져 나온다. 이런 젊은 소리의 아름다움도 있었구나. 나이든 명창들의 소리에선 느끼지 못했던 그 무엇인가가 느껴진다.
두 번째는 현재 전라북도 도립창극단원이며, 명창 이일주, 안숙선으로부터 소리를 배우고, 1994년 전주학생대사습에서 장원한 장문희가 역시 고수 임현빈의 장단에 맞춰 <흥보가> 중 ‘제비노정기’와 ‘흥보 박타는 대목’을 소리한다. 장문희도 정은혜와 마찬가지로 힘찬 소리가 듣기 좋고, 풋풋한 매력이 넘친다. 또 아직 다듬지 못한 미완성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이어서 현재 전북대학교 한국음학과에 재학 중이며, 명창 안애란, 성우향으로부터 공부하고, 2001년 동아국악콩쿠르 일반부 금상을 받은 현미의 소리가 이봉근 고수의 장단과 함께 어울어진다. 나는 갑자기 귀를 의심한다. 아니 아직 20대의 젊은 소리꾼에게서 이런 걸걸한 소리가 나올 수 있단 말인가? 흔히 '곰삭은 맛'이라고 하는 명창들의 소리를 닮았다.
이제 두 번째 시디를 들어보자.
먼저 들리는 남자소리꾼은 전설의 명창 임방울의 집안으로 명창 한애순, 성우향, 이난초에게 소리를 배웠으며, 1993년 남원 흥부제 학생판소리대회 대상을 수상한 임현빈이다. 현재 남원시립국악단 창악부 차석인 임현빈은 남상일 고수의 장단에 <수궁가> 중 ‘고고천변’, ‘토끼 배 가르는데’를 부른다.
듣는 도중 내 귀를 다시 한번 의심한다. 아니 박동진 명창이 살아 돌아왔나? 아니면 박동진 명창의 젊었을 때 소리가 아닐까? 계속 정진하면 혹시 임방울을 능가하는 명창이 탄생하는 것은 아닐까?
마지막으로 임현빈이 소리할 때 고수를 했던 남상일인데 그는 명창 조소녀, 민소완, 오정숙, 안숙선에게서 소리를 배우고, 1999년 동아국악콩쿠르 일반부 금상을 받았으며, 현재 국립창극단 단원이다. 남상일은 젊은 남자답게 <적벽가> 중 ‘자룡 활 쏘는 대목’과 ‘군사설움’을 부른다.
“청룡, 주작, 양각이 백호, 현무를 응하야 서북으로 펄펄. 삽시간에 동남대풍이 일어 기각이 와지끈, 움죽 음죽. 깃복판도 떠그르르르르르 천동같이 일어나니, 주유가 이 모냥을 보더니, 간담이 뚝 떨어지는지라.”
위 대목 중 “펄~펄, 움죽 음죽, 떠그르르르르르”에서 적벽가의 맛이 잘 우러난다. 역시 적벽가는 남성 소리꾼의 힘있는 소리가 어울린다.
우리는 5명의 소리꾼에게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판소리의 미래를 보는 듯하다. 물론 그들은 아직 완전히 가다듬어지지 못하여 매끄럽지 못하거나 슬퍼야 할 대목에서 절절하지 못하고, 걸걸한 맛이 덜할 때도 있지만, 연륜을 쌓아가면서 보완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동안 우리는 귀명창에 만족하여 새롭게 떠오르는 젊은 소리꾼들을 외면해왔다. 그러나 이 5명의 소리꾼을 보면서 그런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야만 한다는 명령을 받는다. 우리의 소리가 앞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끊이지 않는 대를 이음이 필요한 것이다.
아직 그들의 음반은 명창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겠지만 우리에게 전통문화를 이어갈 재목임을 분명히 한다. 제발 그들의 음반도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