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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 우리한테 이러면 안되는 겁니다."

30일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가 주최하는 '중국동포·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연합예배'에 참석한 300여명의 중국동포들은 한국 정부에 대한 원망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 송민성
"우리는 그래도 민족심이 있는 사람들"

96년에 연수생으로 입국한 조선족 김종학(53)씨는 비자만료기간인 6개월이 지난 후에도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학에서 음악을 공부하는 아들의 뒷바라지를 해야했기 때문이었다.

중국에서는 림업국(우리나라의 산림청) 공무원이었다는 김씨는 한국에서는 주로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로 일했다.

"한국 말과 연변 말이 또 다르잖습니까. 연장 이름도 모르고 일도 몰라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는 '언어와 핏줄이 같은 나라니까 일하기도 수월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한국에 들어오기로 결정했다. 일이 힘들더라도 한국 사람들이 자신을 따뜻하게 받아주리라는 기대도 결정에 한몫 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한국 사람이 중국에 나가서 어려운 일 있으면 그 곳의 동포들이 도와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씨 자신도 환전을 하지 못해 곤란해하는 한국 사람을 도와준 일이 있었다. 하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자신을 같은 민족으로 인정해주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나는 호적은 중국에 있지만 한국 사람과 같은 민족이라는 생각을 버려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그래도 민족심이 있는 사람들인데 말입니다. 여기서는 우리를 사람 취급도 안해줍니다."

아들이 북경중앙예술대학을 졸업했다며 자랑스러워하는 김씨는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과 하나 다르지 않았다.

"이식돈(이자)도 못내는데 쫓아내면 어떡해요"

▲ 연신 ‘기자양반이 방 좀 많이 해달라’고 부탁하던 오영금씨.
ⓒ 송민성
오영금(48)씨는 올해 1월 한국에 들어오면서 1500만원의 빚을 냈다고 했다. 그 돈을 채 갚기도 전에 불법체류자로 강제추방될 상황에 처한 그는 "그러면 나 어떻게 살아요"하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지난달 15일 단속이 시작되면서 일거리도 끊겼다.

"이식돈(이자)만 3%를 매달 내야하는데 그 돈도 못내고 있어요. 왜 다 같은 동포인데 일본, 미국 동포는 합법체류할 수 있게 해주고 우리는 강제출국 시키는지 의문이에요."

오씨는 국적 회복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그저 강제로 쫓아내지만 않으면 돼요. 우리를 쫓아내는 건 진짜 자살의 길로 내모는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오씨는 강제로 끌려갈까봐 밖에도 잘 다니지 못한다고 했다.

"학교 다니고 있는 자식이 둘인데 어떻게 살아요."

오씨는 연신 '기자양반이 방 좀 많이 해달라(많이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왜 오긴요, 조국이라 왔지"

▲ 황혜성씨.
ⓒ 송민성
중국 길림 출신인 황혜성(32)씨는 밀입국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왔다. 작년 봄 비자가 나오지 않아 밀입국을 선택했지만 황씨는 그래도 그때는 희망이 있었다고 했다.

"중국에 일자리도 없고 생활도 개선하고 싶어서 왔어요. 중국에도 조선족이라고 차별하고 그런 게 좀 있거든요."

황씨는 한족은 비교적 쉽게 관광비자를 받지만 조선족들은 비자가 잘 나오지 않아서 대부분 한족으로 위장해서 비자를 받거나 배를 타고 밀입국을 한다고 설명했다.

"한번 여기 있는 사람들한테 물어보세요. 주변에 밀입국해 들어온 사람 있나. 다들 한두명씩은 안다고들 할겁니다."

그는 한국에서 일하면서 자부심도 꽤 컸다고 한다. 한국 경제를 돕는 일원이자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로서의 자부심이었다. 그러나 그 자부심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산산조각이 났다.

"미국 동포 잘 사니까 얼마나들 좋아합니까. 10~20년만 지나면 우리가 더 잘 살 수 있는 일 아닙니까. 그땐 어쩔 겁니까?"

황씨는 왜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냐는 물음에 간단히 대답했다.

"왜 오긴요, 조국이라고 생각하니까 왔지."

나갈 수도, 머물 수도 없는 사람들

▲ 다른 동포와 재외동포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임영준씨(오른쪽)
ⓒ 송민성
황씨가 밀입국한 사정을 털어놓고 있는데 임용준(49)씨가 슬쩍 대화에 끼여든다. 임씨는 "밀입국은 다 한국정부 책임"이라고 단정지었다. 조선족이라고 비자를 내어주지 않으니까 밀입국을 통해 들어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바다에 빠져 시체도 못찾고 죽은 사람들 많아요. 오는 동안의 인권유린이야 말할 것도 없고."

임씨는 자신의 이웃과 친척 중에도 밀입국해 들어온 사람들이 여럿 있다고 고백했다. 중국에서 조선족 학교 교원으로 근무했던 임씨는 학생이 줄어들면서 한국행을 택했다. 그는 조선족의 미래를 걱정하며 한국 정부가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사람들이 다 어떤 사람들입니까. 일제 탄압 때 항일했던 사람들이 다 거기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한국 정부는 땜질처방이나 하면서 추방하려고 합니다."

임씨는 현재 중국동포들의 상황을 "나갈 수도 없고, 나간다고 해도 살 수 없으며 그렇다고 여기 있을 수도 없는 벼랑끝"이라고 묘사했다. 임씨는 일단 모든 노동자를 합법화한 후에 차차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며 정부가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을 것을 촉구했다.

"내 발로 돌아가겠다"

▲ "내 발로 돌아가겠습니다" 윤옥매씨.
ⓒ 송민성
윤옥매(53)씨는 95년부터 불법체류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불법체류'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떨린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윤씨는 절대 나갈 수 없다고 단언했다.

"내가 가고싶을 때 가지, 쫓겨서는 절대로 갈 수 없습니다."

올해 초 윤씨는 법무부 직원들에게 끌려가는 한 중국동포를 목격했다.

"나 죽는다고 소리를 질러도 막무가내로 끌려갔어요. 남자 하나를 다섯 명이서 족쇄를 채워 끌고 가는데 내가 그걸 보면서 마음이 얼마나 터질 것 같든지."

그는 같은 민족에게 이런 취급을 하는 한국 정부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한국 정부는 앞으로 한국 사람들이 중국에 가면 어떤 위기를 맞을 지를 생각해봐야 할겁니다. 주위 친구들이 그럽니다. 잡혀가면 나중에 우리 땅에 돌아가서 한국 놈 하나씩 죽이겠다고."

윤씨는 자신도 그런 생각을 한다며, 왜 한국 정부는 "후과(뒷일)를 생각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윤씨 역시 국적취득을 바라지 않는 조선족 중 하나이다. 그는 "국적 준다고 해도 안받는다"면서 돈만 벌면 자신도 곧 돌아갈 거라고 강조했다.

"3D 업종에 일하는 사람들이 벌면 얼마나 벌며, 부자가 되면 얼마나 부자가 되겠습니까. 그저 먹고살 만큼만 벌면 다들 못 가서 안달일 겁니다."

▲ 강제추방 반대 팻말을 들고선 아이
ⓒ 송민성
중국동포들은 현재 13일째(12월 1일 현재) '불법 체류자 전원사면'과 '재외동포의 출입국 및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재외동포법) 개정과 자유왕래' 등을 요구하며 각지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같은 언어와 핏줄이라는 '비빌 언덕'을 찾아왔지만 한국이 그들에게 준 것은 차별과 불법체류자라는 '딱지'뿐이었다.

한편 이날 예배에서는 장기체류 외국인 노동자의 강제추방을 반대하고 재외동포법 평등개정을 촉구하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의 성명서가 발표되었다.

총회는 성명서에서 현재 정부의 외국인 노동자 정책은 "상식적이지도 못하고 인권유린의 사태도 야기시킬 수 있는" 무모한 대책이라고 비난했다.

또 총회는 "암울했던 역사의 청산을 제대로 하지는 못하고 오히려 그들을 우리 민족이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정부의 태도에 실망을 금치 못한다"면서 차별의 소지가 있는 재외동포법 조항을 철폐할 것을 촉구했다.

재외동포법, 무엇이 문제인가?

지난 1999년 통과된 재외동포법은 제2조 2호에서 재외동포의 정의를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했던 자 또는 그 직계비속으로서 외국국적을 취득한 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 법에 의하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전에 다른 나라로 간 사람들은 동포로 인정받을 수 없다. 1948년 이전 한국을 떠난 이들은 대부분 일제의 징용과 수탈을 피하기 위해서 살 길을 찾아갔거나, 항일투쟁을 하기위해 만주나 연해주로 간 독립투사들이었다. 그러나 재외동포법에 의하면 이들 모두 우리의 동포가 아니다.

이에 2001년 8월 중국동포 조연섭, 문현순, 전미라 3인이 재외동포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그해 11월 헌법재판소는 2003년 12월 31일까지 제2조 2호 등의 차별조항을 개정하도록 하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한편 법무부에서는 지난 9월 입법예고안에서 재외동포의 범위를 '부모의 일방 또는 조부모의 일방이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했던 자로서 외국국적을 취득한 자'로 재규정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 역시 1948년 이전에 출국해 현재 외국국적자, 무국적자로 살고있는 동포들을 제외시키는 한계를 안고 있다. 또한 시행령에서 국외이주시점에 대한 문구만을 삭제해 위헌 시비를 은폐하려고 한다는 비판도 적지않다.

현재 이주영, 송석찬, 김원웅 의원 등이 개정안을 대표발의했지만 현재 방치되고 있는 상태이다. / 송민성


▲ 할아버지들이 예배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송민성
▲ 드럼소리에 맞추어 "강제추방 반대한다"를 외치는 노동자들
ⓒ 송민성
▲ "왜 우리를 쫓아내는가" 그들의 억울한 원망이 정부에게는 들리지 않는가.
ⓒ 송민성
▲ 강제추방 결사반대 불법체류 사면하라
ⓒ 송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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