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에서 첫 한국인 희생자가 발생한 가운데 미국의 언론통제로 현지 실상이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라크의 <알 무하자하 신문>의 살람 알 주보리 기자는 "이라크 저널리스트에게 표현의 자유란 전혀 없다"며 "이라크 언론은 미국 정부 정책과 미군에 유리한 내용만 보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전쟁종식과 이라크의 평화를 위해서는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언론의 활동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과 함께가는사람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파병반대국민행동, 시민의신문은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느티나무 카페에서 '이라크 현지 상황과 언론탄압 현황'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파병계획 철회를 촉구하는 한편 언론에 정확한 보도를 주문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바그다드대학교 정치학과장인 리야드 아지즈 하지 박사와 살람 알 주보리 기자, '이라크판 안네의 일기'로 알려진 아말 후세인 알완 소녀가 함께 참석했다.
이라크 소녀의 대답 "한국 정부와 한국 국민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한국의 이라크 파병과 관련해 "무장한 군인이 필요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이라크에서 필요한 것은 의료와 기술지원 등 재건을 도울 민간인이지 군대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이라크에 군대를 보낼 계획을 취소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또 한국인 2명이 죽은 사실에 대해 "재건을 돕기 위해 온 사람들이라 더욱 미안하다"며 애도를 표했다.
리야드 아지즈 하지 박사는 "이라크 안정을 위해 제한적으로 외국군이 필요하지만 지금의 다국적군과 다른 유엔의 깃발 아래 와야 이라크 국민의 환영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과 이라크가 경제와 문화 등에서 활발한 교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13세의 아말 후세인 알완 소녀는 "한국 사람들이 이라크 사람을 사랑하고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이라크가 갖지 못한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 힘으로 이라크 사람들을 도와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8남매중 다섯 째인 아말 수세인 알완은 부친이 90년대 중반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어머니, 남매들과 조그만 아파트에서 어렵게 살고 있다.
이 소녀는 "미군이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통제하고 있다"고 지적한 뒤 "한국 사람들이 이라크 사람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길 원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한국 사람은 좋은 사람들이므로 이라크를 도울 것으로 믿는다, 무슬림은 살인을 금하고 있기 때문에 이라크 사람들이 한국인을 죽이지 않았을 것"이라며 미안함을 나타냈다.
"미군의 우방인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아말 후세인 알완은 "한국이 미국을 지지하는 나라로 알고 있으나 사람들과 정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또 "한국이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게 되면 이라크와 한국인 자신들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는다"며 "의료지원이나 학교 건설 등 재건을 위한 활동에 필요한 민간인을 보내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살람 알 주보리 기자 역시 이라크인이 테러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만약 이라크 사람이라면 다른 나라에서 온 무장그룹의 강제적 지시에 의해 이뤄졌을 것이다, 기자나 의사 등 외국인을 죽이는 게 이라크를 안정이 아닌 혼란에 빠뜨리기 때문에 이같은 짓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라크내 테러리스트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지원을 받는지 개인인지 여부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말한 뒤 미국의 석유통제권 독점을 원하지 않는 세력을 지목했다. 그는 "이라크에서 공격을 행하는 세력은 이라크 안정을 원하지 않고 이라크 혼란을 바라는 세력"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이라크의 평범한 사람들만 무고한 희생양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라크 기자가 말하는 이라크 언론
주보리 기자는 이라크 민주화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미군이 이라크 언론을 교묘하게 통제하고 있는 현황에 대해 자세하게 소개했다.
"이라크 언론은 전쟁 전인 사담 정권 때도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TV방송사의 경우 사담 후세인 장남이 소유한 방송사와 정부 소유 2개 등 3개사 밖에 없었다. 이들은 사담 후세인 정책을 과장해서 보도하고 사담 정권이 선택한 화면만 보여줬다.
또 신문 등 언론의 자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떤 언론인이든 정부를 비판하면 감옥에 구금하거나 심지어 처형하기까지 했다. 반대로 정부에 대해 좋은 이야기만 하는 언론인은 저명한 언론인으로 치켜세우고 직위를 줬다. 언론사 수는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우리는 몇몇 유명한 아랍권 위성방송을 볼 수도 없었고 정부소유 3개 방송사만 시청해야 했다. 그래서 다른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 수 없었고 이라크 내부의 일도 전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에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 이라크엔 100개가 넘는 신문사가 있지만 대중적인 신문은 20여개 남짓이다. 그중 가장 대중적인 신문은 <알 자만>으로 편집장이 국외로 추방당한 적이 있는 약간은 독립적인 신문이다. 그외 대부분 신문은 정당과 정치조직에 속해있다. 이 신문들의 관심은 오로지 정당에 관한 이야기와 자기 정당이 얼마나 훌륭한가, 사담 정권에 얼마나 많은 당원이 죽어갔는가 등뿐이다.
이라크 기자들은 쓰고자 하는 것을 모두 쓸 수 있는 충분한 언론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기자들은 모든 장소에 자유롭게 드나들지 못한다. 아무 것이나 자유롭게 찍을 수도 없다. 기자들이 금지된 것을 찍으려고 한다면 '몹쓸 미군들'이 와서 체포하거나 최소한 그의 카메라와 필름을 압수할 것이다.
일례로 나에 관한 기사를 쓰기 위해 취재를 하던 한 영국 여기자와 길을 지나다가 미군 탱크와 이라크 자동차가 충돌한 사고를 목격하고 취재했을 때, 우리는 체포 당하는 대신에 카메라와 필름을 압수당한 적이 있다. 당시 미군은 우리를 총구로 겨누고 자신들의 기지로 사용하던 소방서의 한 방에 구금했고 영어로 욕설을 퍼부었다.
이는 매일 벌어지는 수많은 사례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연합군은 <바그다드 나우>라는 무료신문을 자체로 발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 신문은 바그다드 거리의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 신문을 읽지 않고 거리에 버린다.
이라크의 대중신문들은 처음에는 미군을 지지하는 입장이었지만 지금은 별로 우호적이지 않다. 그래도 미군은 그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따라서 대중신문들은 결정적일 때 후원자인 미군을 위해서 일하게 된다.
미군은 일부 신문을 자체 홍보와 함께 미국이 사담으로부터 이라크를 자유롭게 만들었다고 알리기 위해 이용하고 있다. 또 자신들이 이라크 언론을 지원하고 있고, 언론이 이라크에서 미군의 정책을 비판하는 것마저도 허용하고 있다고 홍보한다.
동시에 이라크를 해방시켜준 미국을 위해 기도할 것을 요구하고, 미국인들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그래서 사람들이 이에 동의하도록 만들기 위해, 미군이 하고 있는 건축과 싸구려 물품 지원 등 '좋은 것'만 보여주고 있다. 이어 이들 신문들은 미군에 의해 얼마나 많은 테러리스트들이 죽었고 얼마나 많은 지뢰들이 제거됐는지 보여주고 있다.
텔레비전의 경우 사담 시절에는 3개의 국영방송사가 있었으나 지금은 그 숫자가 늘고 있다. 그러나 종전 뒤 처음 생긴 방송사는 '어리석은 방송'이 되었다. 지방 방송에서 위성방송으로 발전한 이 방송사의 조지 만수르 사장은 예전에 추방당한 적이 있지만 그와 그의 TV는 완전히 미국의 것이다.
그들은 미군을 흉내내는 앵무새에 불과하다. 방송에는 이라크 사람 편에서의 진실은 없다. 최근 그들은 일부 좋은 프로그램을 내보내기 시작했고 일부 진실을 내보내기도 하지만, 아직도 미군과 어깨동무한 친미주의자들이다. 다른 TV방송이 있기는 하지만 쿠르드 정당과 같은 정치조직에서 운영하는 방송사이다. 그들이 방송을 하고 있지만 이라크에 관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이라크 국민의 고통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더욱이 나는 미군 점령 아래 일부 신문 편집인들이 내 기사가 실리는 것을 거절한 경험이 있다. 그들은 미국을 두려워하고 있다. 여기서 그들의 이름을 말하고 싶지는 않다. 언론통제의 다른 양상은 이라크 방송의 화면에 사담 궁전에 있는 미군들이 파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라크팀과 미군팀의 축구 경기도 보여준다.
하루는 CPA(이라크 연합군 임시기구)에 있는 이라크 방송사를 찾아간 적이 있다. 여기서 나는 이라크 방송사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라크 사람이 아니라 미국인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프로그램을 통해 '미군이 이라크 사람들을 돕고 있다'고 말하면서 미국 정책을 보증하고 있다.
'이라크미디어네트워크'는 유일한 네트워크 방송사로 처음에는 정부 소유였다가 전쟁 이후 미국이 지원하면서 미국 정책을 긍정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라크미디어네트워크는 미국 언론과 다름없다. 요즘 미국 정책에 비판적인 프로그램을 방영하기도 하지만 미군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실제로 이라크에는 언론자유가 전혀 없고 보도할 때마다 구속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한국 언론의 이라크 보도 '엉터리'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이라크의 언론자유 부재와 함께 우리나라 보수언론의 보도태도에 대한 질타도 쏟아졌다. 오랫동안 이라크에서 활동을 벌이다 귀국한 한상진 함께가는사람들 평화팀장은 한국언론의 이라크 보도를 '엉터리'라는 표현으로 압축했다.
한 팀장은 "한국 언론은 이라크의 치안 상태를 과장해서 왜곡하고 있으며 미군과 협조하는 민간인에 한정된 일부 민간인에 대한 공격도 부풀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군을 위한 이라크의 치안은 열악하지만, 이라크 민중을 위한 치안은 상대적으로 좋은 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라크는 현재 정부가 없는 상태에서 모든 사람이 총기를 소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스스로 치안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매우 양호한 상태"라며 "그런데 언론들이 이라크 치안 전체가 안 좋아진 것으로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라크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보다 언론이 해줄게 많은 듯하다"고 말문을 연 최민희 민언련 사무총장은 "현지 사정을 정확하게 보도하고 이라크 국민의 목소리를 사실대로 전달하는 게 전쟁 종식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최 총장은 "그러나 한국인 2명이 사망한 뒤 언론의 보도태도가 양극화되고 있어 심히 우려된다"며 "특히 안전보장을 위해 전투병을 파병하자는 논리는 섶을 지고 불길에 뛰어들자는 격"으로 비유했다.
강명욱 언론노조 부위원장은 "개전 이후 5만5000명의 이라크 민간인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우리 언론을 통해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면서 "큰 사건이 있을 때마다 언론보도가 타깃이 되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강 부위원장은 "파병을 주장하는 수구언론을 탓하기에 앞서 정부가 합리적으로 판단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