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광고 낙서운동을 벌이고 있는 프랑스의 광고반대주의자.
광고 낙서운동을 벌이고 있는 프랑스의 광고반대주의자. ⓒ 박영신
파리의 지하철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다 보면 종종 기발한 낙서로 훼손된 광고지들을 만날 수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패스트푸드 맥도날드를 상징하는 M자 다음에 'erde'를 써넣어서 'Merde', 우리말로 '똥'이라는 말을 만들어 내는 식이다. 누군가가 재미로 혹은 의도적으로 기존의 광고에서 새로운 단어를 재창조해 냈을 것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공공 시설은 우리의 것인가, 사기업의 것인가. 이 새로운 경향에 의해 활발히 제기되고 있는 의문들은 바로 이것. 광고반대운동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광고가 우리를 구속한다

지난 11월 28일 금요일 저녁 7시, 파리 12구 나시옹(Nation) 광장에 50여 명의 광고반대주의자들이 선전광고 낙서 작전을 위해 모여들었다. 작전명 '세기의 악-그들의 표현에 따르면-', 선전 광고를 퇴치하라….

주최그룹 'StoPub'을 지지하는 메시지가 일찌감치 인터넷 상에 떠돌았고 또 모든 것이 이전의 유사한 시위들처럼 시작되는 듯했다. 그러나 작전은 무산됐다.

'아무 것도 파손하지 마세요. 우리는 광고벽보만 손댑니다.'

참가자들이 행동지침을 숙지하는 동안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경찰이 들이닥쳤으며 결국 여경찰이 현장에 없었던 까닭에 여성 참가자들은 현장에서 풀려나고 남성 참가자들만 인근 경찰서에 호송되는 것으로 얄궂은 체포소동은 일단락됐다. 경찰서로 향하는 버스 차창에 한 사람이 급하게 휘갈겨 쓴 종이 쪽지가 나붙었다.

'광고가 우리를 구속한다.'

기물 파손은 금물... 광고벽보를 공격할 뿐 공공장소는 보존한다

그러나 이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 10월 17일, 역시 StoPub단체가 주도한 그들의 첫 돌발작전 이후 세 번째 시위였다.

운동가건 혹은 단순 지지자건 10월 17일 저녁, 붓과 수성펜, 페인트로 무장한 200여 명(주최측 주장 500명)은 이탈리아(ITALIE)광장과 바스티유(BASTILLE), 몽빠르나스(MONTPARNASSE), 나시옹(NATION) 등 파리의 7개 지하철역에서 시종일관 침착하고 질서 정연하게 지하철 승강장 벽면의 10여 개 광고 벽보를 낙서로 덮어버렸다.

이들의 행동수칙은 엄격하다.

기물 파손은 금물.
경찰 투입 시 집단 행동할 것.
광고벽보만 공격할 뿐, 공공장소는 보존한다!


작전 1단계, 파리의 지하철 동역. StoPub 주동자 한 명이 현장에 있는 경찰의 감시를 분산시키기 위해 일단의 그룹을 역 앞으로 불러낸다.

작전 2단계, 지하철역 다른 한 편에서는 공연예술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휘하는 또 다른 그룹이 갑자기 역내 벽에 붙어있는 선전 광고지에 페인트를 덧칠하고 스프레이를 뿌리거나 갈기갈기 찢어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위에 그들의 슬로건 '광고는 건강에 해롭습니다'를 덮어씌운다. 11월 7일 금요일 밤에도, 1백여 젊은이들의 제 2차 파리 지하철 습격작전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세계의 민영화', '정신의 상품화'에 도전

ⓒ 박영신
그렇다면 이들로 하여금 광고 벽보를 찢어발기도록 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자본주의 체제'의 메커니즘이다. 광고는 거대 다국적 기업과 이윤 창출을 목표로 하는 기업의 전유물이라고 말하는 광고반대주의자들에게 광고의 첫째 표적은 문화, 보건 그리고 교육.

운동가들은 현재 WTO(세계무역기구)에서 논의 중에 있는 '서비스교역에 관한 일반협정'에 의거, 병원과 사립학교를 포함한 사회 모든 기관이 광고를 필요로 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경고하며 '세계의 민영화', '정신의 상품화', '광고 폭력'에 항의하기 위해 광고 공간을 뒤엎어버리는 시위를 감행했다고 주장했다.

프랑스는 이미 예고된 교육의 지방 분권화, 연금을 비롯한 사회보장제도 개혁의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시위현장에 뿌려진 전단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학교와 의료기관은 상인들의 손에 넘어갈 것이고 사회적 권리와 평등의 기초가 되는 원칙은 점차적으로 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WTO가 교역 장애로 지적한 것들이므로'.

더 나아가 광고는 우리의 공공시설 즉 거리, 지하철 심지어 TV까지 침해하고 있다고 말하는 이들은 '우리의 옷에, 벽에, TV화면 여기저기에 광고가 깔려있다'며 합법적, 창조적인 방법으로 대응할 것을 주장, '환경을 손상시키지 말고 도시와 시골을 장악하고 있는 광고판을 철두철미하게 덮어버리고 세계의 민영화에 항의하는 집단 행동으로써 공공장소를 우리에게 돌려주자'고 말한다. 이것은 정신과 문화, 세상의 상품화에 맞선 선전포고에 다름 아닐 것이다.

광고 없는 세상은 이제 비현실적이다

사실, 프랑스 광고반대운동의 특공작전은 운동가들조차 놀랄 정도의 규모로서 광고업자들이 우려해온 이른바 세계적 조류에 급물살을 탔다고 볼 수 있다. 지난 11월 29일을 '쇼핑 없는 하루'로 선언한 캐나다 단체 애드버스터(Adbuster)를 본 딴 '광고습격레지스탕스(RAP)', '광고파괴자'와 같은 단체들이 프랑스에서도 이미 수 년 전부터 광고의 반대편에서 투쟁해왔다.

'광고파괴자' 단체는 '선전 광고는 우리가 원치 않는 길, 선택하지 않은 세상을 강요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난하며 광고가 과도한 소비 세상을 부추긴다고 일갈한다.

"광고는 사회 어디에나 존재한다. 몇몇 컴퓨터게임은 가상세계에까지 광고를 끼워넣고 있다. 마치 광고에 둘러싸인 사회가 당연한 것처럼."

광고 없는 세상은 이제 비현실적이다.

프랑스는 이렇듯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선전 광고를 공격하기 시작했으며 이것은 마침내 법적 문제로 비화되기에 이른다. 최근의 사례로 지난 11월 5일, 디낭(Dinan) 지방법원은 랑스(Rance)의 풍치지구(風致地區) 부근에 설치된 광고간판을 떼어낼 것을 요구한 시민단체의 손을 들어주었다.

법정으로 간 '광고 없는 세상'

그러나 광고반대주의자들의 특공작전은 파리교통공사(RATP)의 자회사로서 지하철과 시내버스 광고를 전담하고 있는 교통광고공사 메트로뷔스(Métrobus)가 불특정 X를 고소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동시에 3500개의 시민단체 사이트를 소유하고 있는 네티즌 조합 Ouvaton(우바똥, '어디로 가나'라는 뜻의 불어)의 대표를 소환할 것을 결정했는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stopub.ouvaton.org' 사이트는 지난 10월 17일과 11월 7일 파리 지하철역 10여 개의 광고지에 낙서를 휘갈긴 광고반대주의자들의 집합소다.

이에 그치지 않고 메트로뷔스는 Ouvaton 사이트 자체를 폐쇄할 것을 요구하며 시위로 인해 거의 1백만 유로(euros, 한화 13억원 상당)에 가까운 재산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지난 11월 6일부터 StoPub 단체의 인터넷 사이트가 표면상 폐쇄됐으며 현재 StoPub의 임시 사이트 역할을 하고 있는 ouvaton.org가 온전히 메트로뷔스의 표적이 되고 말았다.

이런 가운데, 지난 11월 24일에 이어 12월 1일, 사건 관련 결심 공판이 열렸으며 여기서 Ouvaton은 모든 범법행위에 대한 누명은 벗었지만 조합 총 수익의 10%에 해당하는 소송비용을 지불하고 조합 회원 2000명 중 주동자 명단을 법원에 제출하게 됐다. 이로써 관리자가 모두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그리고 연 3만 유로의 회원 회비로만 유지돼 오던 Ouvaton은 2900유로를 지불하게 된 것인데, 일개 인터넷 조합으로서는 치명적인 액수다.

광고는 공중보건에도 이득이 있다?

아이러니 하나. 의류업체 베네통(Benetton)의 선전광고를 담당하면서 매번 도발적인 광고 표현으로 논쟁을 불러일으킨 바 있는 올리비에로 토스카니(Oliviero Toscani)는 2000년 베네통을 떠나기 전, 이런 말을 했다.

"나는 광고를 증오한다. 그것은 문화를 죽이는 식인종이며 결정은 늘 재력가가 하기 때문에 창조성이 없다."

그러나 광고업자들은 여전히 그들의 업무가 소비 촉진 뿐만 아니라 공중보건에도 이득이 있다고 항변하며 광고반대운동에 대응하고 있다.

비평과 여론, 특히 젊은이들에 예민한 광고업자들은 지난 11월 26일, 광고주간을 이용해 유일하게 효과적인 선전광고를 시상하는 2003 에피(EFFIE)상 수상작으로 광고대행사 BETC-Euro RSCG가 제작한 국립위생연구소(INPES)의 금연운동 캠페인을 선정했다.

2002년 6월, TV와 신문을 통해 이상한 메시지가 전달된 일이 있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소비 제품에서 청산(靑酸), 수은, 아세톤, 암모니아 성분이 검출됐습니다. 더 많은 정보를 얻으시려면 무료전화 0800 404 404번을 이용하세요."

그 제품이 바로 '담배'라는 사실을 알기 위해 수화기를 든 사람은 1백만 명에 달했다고 국립위생연구소는 밝혔다.

이것은 소비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방법으로 그리고 소비자 스스로가 광고를 찾게끔 만들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발상이었다. 그러나 이와같은 공익 캠페인에 그랑프리를 안겨주면서 일반적으로 광고에 집중된 따가운 시선을 교묘히 따돌리려 했다는 의혹을 피하지는 못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