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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도법 스님. 2001년 2월 16일부터 시작하신 1000일 기도가 11월 12일 끝났을 때, 언론 보도를 접하고 스님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습니다.

제가 도법 스님을 처음 뵌 것은 2001년 4월입니다. 저는 당시 '흥부 기행'의 기행단 일원으로 스님과 만났습니다. 남원의 지리산 앞 자락에 고즈넉하게 자리한 실상사는 봄을 맞을 준비가 안 되었던지 앙상한 나무들만이 몇 그루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드문드문 보이던 노란 산수유 꽃이 이제 막 봄을 물들이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도법 스님은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공동대표로 '귀농학교', '지리산 살리기 운동'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계셨지요. 안방에 저희를 앉히시고 1시간이 채 안되는 짧은 시간 동안 '강연'해 주신 것은 '인드라망'의 정신이었습니다.

인드라망이란 화엄경에 나오는 '하늘의 그물'로 우주 만물이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그물처럼 엮으면서, '관계'를 맺는 과정 속에서 존재 의미를 갖는다는 철학이지요. 이본 배스킨의 '아름다운 생명의 그물'은 인드라망을 떠올리게 합니다.

생태계는 먹이 사슬을 이루며 거대한 생명은 이 그물을 이루며 유지되죠. '일류'만 생존하는 사회, 편의적인 공존 논리, 그 때 스님은 이를 '패거리주의'라고 설명하셨습니다. 패거리주의가 판치는 현대 사회를 엄중하게 경고하는 목소리가 바로 인드라망이라구요.

인간에게 '똥'은 버릴 것이지만, 배추에게 '똥'은 먹을 것입니다. 인간은 '똥'을 먹은 배추를 먹고 '똥'을 버립니다. 도법 스님의 설명에 따르자면 현대 사회는 배변 기능이 마비된 사회입니다. 인간은 더 이상 무엇인가를 되돌려 주려고 하지 않죠. 더 이상 쓸모없을 것들만을 줄기차게 만들고 있을 따름입니다. 한 시간도 채 안되는 만남과 그 만남에 대한 몇 줄의 글로 어찌 설명이 될까요.

2년이 더 지난 지금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시는 스님의 말씀을 경청하다 보면,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같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지혜임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자연과 단절한 인간 지상주의, 세계와 단절한 미국의 패거리주의, 힘의 논리에 좌우되는 특정 집단의 패거리주의는 모두 인드라망의 경고를 무시한 오만임을 보게 됩니다. 귀농 운동에 앞장 서고 계신 스님은 분명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며 살아가지 못하는 현실을 바로잡고 싶은 마음이실테지요.

실상사와 노고단에서 각계 인사들이 모여 발족한 '지리산평화결사 추진위원회'도 인드라망의 정신에서 나온 것 아니겠습니까. '평화'는 우리가 가꾼 만큼 가꾸어지고 지켜진다고 역설하시던 스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마음의 평화는 깨달은 뒤 얻어지는 게 아니라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내가 평화를 가꾸기 위해 행동할 때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달으셨다고, 가꾼 만큼, 행동한 만큼 평화로워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도 2001년 봄의 말씀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새로운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길은 본래부터 있었는데 다만 우리들이 본래 있는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해 온 것이라고, 그래서 잃어버린 본래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올바른 방향인 인드라망 세계관의 확립과 더불어 함께 사는 길, 서로 돕는 길, 균형과 조화의 길에서 삶을 가꾸어야 함을 압니다. 희망의 길이요, 생명의 길이지요.

2년 전에도 같은 말씀을 하셨듯, 2년 후에도 같은 말씀을 하시겠지요. 2년 뒤에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인드라망의 철학에 가까운 삶을 영위하고 있기를 바랍니다. 스님은 늘 그 자리에 계시겠지요. 언제쯤 스님을 다시 뵐지 모르겠지만, 인드라망에 대해 말씀하셨던 스님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기억하며 제 삶을 차분하게 돌아보며 성실히 실천하겠습니다. 추운 날씨에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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