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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6일 오후 6시23분, 오마이뉴스에 3만번째 뉴스게릴라가 이름을 올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를 자축하며 <뉴스게릴라 3만돌파 기념 이벤트>를 다양하게 펼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이벤트의 일환으로 기획된 '뉴스게릴라가 만난 뉴스게릴라'의 두 번째 기사입니다... 편집자 주)

ⓒ 김상돈
작년 장상 총리 임명 동의안이 부결되자 민주당은 "거대 정당의 횡포다. 이회창 후보는 호화빌라 문제 등 장상 총리 후보보다 훨씬 더 심각한 도덕적 흠결을 안고 있다"며 한나라당을 맹비난했다. 그때만 해도 영원히 으르렁댈 것 같았던 두 당의 관계는 최근 많이 달라졌다.

격세지감을 느끼게 만드는 만평이다. 그래서 혹자는 만평을 역사의 그림일기라고, 시사만화가를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史官)과 같다고 했는지 모른다. '역사일기'를 쓴 '사관'은 김상돈(37) 화백. 김 화백에게는 더욱 뜻깊은 작품일 것이다. 작년 7월 28일 <오마이뉴스>에 처음으로 송고한 만평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김 화백이 <오마이뉴스>를 통해 선보인 만평은 모두 371작품. 아마도 전문가가 아니었다면 소화하기 힘들었을 수량임에 틀림없다. 7년째 <경인일보>에 만평을 연재하고 있는 시사만화가가 <오마이뉴스>에도 만평을 올린 이유는 무엇일까. 12월 4일 경인일보사에서 김상돈 화백을 만났다.

"첫 번째 독자의견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존경합니다'는 극찬이었죠. 온라인은 반응이 팍팍 와요. 부족한 작품에는 융단 폭격처럼 비판이 쏟아집니다. 피드백이 바로 이루어지니까, 작품에 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더군요. 그리고 제 만평 싫어하는 사람도 많아요. 그들의 의견을 접하면서, 시각의 다양성을 체험할 수 있었죠."

김 화백은 <오마이뉴스>로 작품 활동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김상돈'이란 이름의 인지도가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부수입'도 생겼다. 지난 9월 첫 번째 개인 전시회 때는 멀리 지방에서 화분을 보내겠다는 전화도 걸려왔다.

ⓒ 이정환
"'무응답'이 독자들의 가장 큰 비판이더군요. 그때는 작가로서 처참했죠. 메아리가 울려 퍼지지 않으면, 누가 산에서 소리 지르고 싶겠습니까? 독자와 자극을 주고받는 과정이 이제는 중요한 에너지원이 됐습니다."

- 어떤 비판이 가장 많습니까?
"너무 한나라당만 까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요즘은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도 비판 많이 듣습니다. 최근 민주당 행로가 옳지 않다고 생각해서 많이 비판해서 그런가봐요. 하지만 저는 노빠 아닙니다(웃음). 우리당의 절대적 지지자도 아니고요. 파병이나 노동문제에 대해서는 노무현을 굉장히 비판했어요.

만평은 주장입니다. 양비론은 주장이 될 수 없죠. 따라서 양비론 만평은 삽화입니다. 만평은 논조가 분명해야 가치가 있습니다. '너도 옳고 너도 옳다'는 곤란합니다. 민주당이 100%로 잘못됐다는 것 아닙니다. 잘한 것도 있죠. 하지만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을 동시에 도마 위에 올려놓을 수는 없습니다."

- '누구를 얼마나 많이 비판하느냐'는 문제로 바꿔볼 수도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다 잘했습니까? 못하는 것 굉장히 많죠. 다만 이것을 자주 부각시키지 못하는 이유는 노무현 정부의 개혁의지와 정책을 깨려고 하는 수구세력들이 득세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김 화백의 작품 색깔은 아주 강하다. 박수를 많이 받지만, 반감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가끔 오해를 낳기도 한다. 대선 기간이었던 지난해 12월 10일 송고한 "권영길 화이팅" 만평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김 화백은 민주노동당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당했다. 권영길 후보가 극우언론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였다. 본의 아니게 발생한 사건은 민주노동당에 해명서를 보내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 2002년 12월 10일자 '권영길 화이팅'
ⓒ 김상돈
"(송고) 전날 조선일보 사설을 보니까 권영길 후보를 선전하더라고요. 도대체 왜 조선일보가 권영길을 띄워줍니까? 노무현 표 잠식을 위한 의도적 행위로 판단했죠. 민주노동당을 비판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거든요.

그런데… 황당했죠. 물론 민주노동당 입장도 이해합니다. 권 후보의 생명은 진보와 개혁인데, 그런 가치가 한 순간에 사라지는 것 아닌가. 그래서 과민하게 반응했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섭섭했어요. 다른 작품을 보면 내가 잠재적 우군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었을 텐데…."

- 조중동 만평에 대한 견해는?
"섣불리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만평가는 신문사 논조에 휩쓸리면 안된다는 것 하나만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네요. 제가 여기에서(경인일보사)는 한나라당 비판하다가, 조중동에 갔다고 노무현을 까면 되겠습니까? 만평가의 색깔은 어디서든 변하면 안됩니다. 신문사 논조가 어떻든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만평가의 고유한 몫입니다."

- 하지만 현실적으로 굉장히 어렵지 않을까요?
"단순하게 만평가를 신문사 소속 직원으로 봐서는 안됩니다. 충분히 가능해요. 만평하는 후배들에게 '싸우라'고 충고합니다. 만평가로서 자신의 주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독립적인 입지를 굳혀야 한다구요. 신문사 논조 안에만 머무르는 사람은 죽은 만평가죠. 물론 '각 신문사가 만평에 대해 얼만큼 깊이 이해하고 있는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요."

그렇다면, 만평가로서 입지를 넓히고 독립적인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 <오마이뉴스>에 만평을 올리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이에 김상돈 화백은 동의했다. 결국 더욱 좋은 만평을 그리겠다는 '고집'이 김 화백을 <오마이뉴스>와 만나게 한 셈이다.

ⓒ 이정환
- <오마이뉴스>가 이른바 '노빠신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데요.
"글쎄요. 어느 신문이나 다 가질 수밖에 없는 문제 아닐까요? 노무현 비판 사설도 톱에 실리던데요.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 인터뷰도 크게 올라가잖아요. 독자가 보고 판단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오마이뉴스>가 '노빠신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마이뉴스>가 출발할 때 갖고 있던 색깔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봅니다."

- <오마이뉴스>의 색깔은 무엇입니까?
"우리나라 신문들은 크게 개혁과 보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개혁적인 신문으로 자기 역할을 하고 있고, 변화를 리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는이야기'를 볼 때마다 자주 감명 받아요. 아주 진솔한 이야기들을 크게 다뤄주고 있지 않습니까? 당분간 <오마이뉴스>가 탈색되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 <오마이뉴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웃음)선을 넘지 말아야죠. 어느 당의 대변지가 되어서는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언론으로서 기본 가치가 없어지니까요. 만약 <오마이뉴스>가 그렇게 된다면, 같이 할 수는 없겠죠. 아마 모든 시민 기자들도 같은 생각일 겁니다."

- '선'을 구체적으로 말해주신다면.
"같은 기사라도 어디에 올리느냐에 따라 반응이 엄청나게 차이납니다. 편집권은 <오마이뉴스>를 지탱하는 가장 큰 무기죠. 그런데 만약 노무현을 논리적으로 비판한 시민기자의 기사는 생나무에 두고, 별로 내용도 좋지 않은데 노무현에게 우호적이라는 이유로 서브나 톱에 올린다면 '선'을 넘었다고 봐야죠. 기사 판단은 독자의 몫입니다. 이 판단을 <오마이뉴스>가 독자에게서 뺏어서는 안됩니다."

- 끝으로 뉴스게릴라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3만 명이 된다는 이야기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다른 신문사에서 절대 흉내내지 못하는 거죠. 정말 따뜻한 이야기들이 많더군요. 뉴스게릴라들이 삶의 밑바닥에, 아무도 찾지 않는 구석까지 접근해서 많이 활동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따뜻한 이야기가 많아질수록 더욱 따뜻한 세상이 되겠죠."

김상돈의 <시사만평> 바로가기

"박재동 화백을 가장 존경합니다"

ⓒ이정환

뉴스게릴라를 주제로 만평을 부탁했다. 조심스러운 제안이었지만, 김상돈 화백은 의외로 선선하게 승낙했다(기사 하단 참조). 그림을 그리는 김 화백에게 개인사를 묻기 시작했다.

원래 김 화백의 직업은 미술교사였다. 디자인을 전공하고 학교에서 강의를 하던 남편은 어느 날 갑자기 만평을 하고 싶다고 했다. 당연히 아내는 반대했다고 한다. 김 화백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고 아내를 설득했고, "지금은 집안에서도 만족하고 있다"며 웃었다.

그는 존경하는 시사만화가로 박재동 화백을 꼽았다. 박재동 화백은 1996년 <한겨레신문>에 연재한 만평을 모아 '제 억 공화국'이란 단행본을 펴낸 적이 있다.

책에서 박재동 화백은 "시사만화가란 때로는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사만화를 '그림으로 나누는 하루 한 마디' 또는 감히 '역사의 그림일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연히 김 화백도 공감을 표시했다.

만평가에게 가장 괴로운 날은 역시 '조용한 날'인듯, 김 화백은 "지옥 같은 날"이라고 표현했다. 반면 "뉴스거리가 풍부한 날, 강한 이슈가 터지는 날에 신명이 난다"고 말했다.

아이디어가 만족스럽지 않은 상태에서 퇴고할 때는 죽을 맛이란다. "누구한테 심하게 모욕당한 느낌으로 잠도 잘 오지 않는다"고 하니,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인가. 만평가의 평균 수명은 짧다고 알려져 있다. 김 화백은 "휴가나 월차를 다녀오면 맥이 끊긴다. 정치적 흐름을 타고 있어야 미래를 전망할 수 있기 때문에 휴가를 가서도 신문이나 잡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면서 "신경 쓰지 않으면 못 해 먹는 직업이다. 누구에게 권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김 화백이 담배를 피지 않고, 술을 즐기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독자들에게 어떤 만평가로 기억되고 싶나'라는 질문에 김 화백은 "어떤 사안이라도 분명하게 입장을 내세우는 강직하고 주장이 뚜렷한 만평가"라고 대답했다.

철학이 뚜렷한 만큼 계획도 많다. 가깝게는 "캐리커처 전시회를 열어 수익금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예정"이고, 장기적으로는 "자유기고가 형태로 독립해서 작품 활동을 하고, 후배들에게 시사만화를 가르치고 싶다"는 포부도 갖고 있었다.

현재 김 화백의 작품중 상당수는 <오마이뉴스>와 <경인일보>에 함께 실리고 있다. 처음에 회사에서 굉장히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회사 입장에서는 결코 반갑지 않은 일이다.

김 화백은 "회사 명예를 훼손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경인일보>를 전국에 알리는 좋은 수단이 된다"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김 화백의 작품에는 대부분 '이 만평은 경인일보에 게재됩니다'는 문구가 따라 붙고 있다. / 이정환

ⓒ 김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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