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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없어서 농약을 치지도 못하고 관리도 못한 귤밭입니다.
ⓒ 김민수

무농약 귤이 나오게 되기까지 수고하시는 분들은 두 부류가 있는데 아예 유기농 농사를 짓기로 작정을 하신 분들과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서 거의 귤밭을 관리하지 못해서 방치하다 보니 농약을 주지 못하시는 분들의 경우로 대별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귤을 따온 곳은 후자에 속합니다.

'이번엔 얼마나 못생긴 귤일까?' 생각하며 귤밭에 도착을 했는데 올해는 작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예쁜 귤밭입니다. 조금은 실망(?)했지만 역시나 하나하나 살펴보니 역시나 못생겨서 상품화될 수 없는 귤들입니다.

일단 하나 따먹어 봅니다. 아주 잘 익어서 당도도 높고 신맛도 없습니다. 방치해 두고, 추운 겨울을 지내고 나면 아무래도 껍질도 두꺼워지고, 신맛도 나고, 귤도 조금 시들기 마련인데 한창 수확철인 요즘 수확을 해서인지 그 맛은 상품용 귤에 비해 전혀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귤이 선과장에 가면 파치(비상품 귤)로 선별되겠죠.

'못생긴 것'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는 순간입니다. 바로 이웃해 있는 잘 가꿔진 귤밭에서는 어쩌다가 못생긴 것이 나오는데 이 귤밭에서는 어쩌다가 잘생긴 것이 나옵니다. 물론 잘생긴 것, 못생긴 것은 외적인 요인만 보고 평가를 하는 것입니다.

ⓒ 신미영

작년 경험을 살려서 새들이 쪼아먹은 흔적이 많은 귤나무를 찾습니다. 컨테이너에 귤이 하나 둘 쌓일 때마다 이미 마음은 이 귤을 먹을 사람들에게 가 있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보낼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 해를 지내면서 고마움을 표시해야 할 분들을 떠올려봅니다. 어쩌면 이런 상상이 먹는 것 보다 더 재미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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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귤에 대한 변명

저희 교회에는 팔순이 넘은 권사님 한 분이 계십니다. 한 평생을 제주의 농어촌마을에서 살아오신 분이신데 몇 해전부터 거동이 불편하셔서 유모차에 의지하여 다니십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평생동안 가장 재미있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귤 딸 때가 제일 재미있었수다. 지금도 기력만 있으면 꼭 한번 해보고 싶은 게 귤 따는 일이우다."

"그렇게 재미있으셨어요?"

고개를 끄덕이시며 건강한 시절 귤을 따던 추억들을 떠올리시는 듯 아련한 추억을 더듬는 듯 눈시울이 촉촉해 지십니다.

귤을 따는 일뿐만 아니라 수확하는 모든 일에는 기쁨이라는 것이 동반되죠. 그 기쁨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생각해 보면 단지 일당을 받기 때문에, 단지 팔아서 목돈을 만질 수 있다거나하는 물질적인 것만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저는 그것을 '나눔'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돈을 받고 판다고는 하지만 결국 그것은 자신의 땀방울을 나누는 일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팔고 남은 것은 지인들과 나눌 것이고, 농장주가 아니더라도 먹는데는 아무 지장이 없는 파치들을 실컷 얻을 수 있으니 이 모든 것이 '나눔'과 결부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나눔' 속에는 자연의 나눔이 있습니다. 햇살, 하늘, 땅, 구름, 바람 그리고 땅 속에 사는 지렁이를 위시한 모든 미생물들과 하늘을 나는 저 새들까지도 그 나눔의 한 몫을 담당한 것이죠.

귤을 따면서 새들의 먹이를 남겨둡니다. 마치 까치밥을 남기듯이 새들의 몫을 조금씩 남기면서 따니 오히려 귤을 담는 컨테이너가 더욱 더 풍성해 지는 것 같습니다.

▲ 싱싱함의 상징으로 귤가지를 하나 잘라놓아봅니다.
ⓒ 김민수

자, 그럼 이제 이렇게 얼룩덜룩 껍질에 무늬가 있어 못생긴 귤을 땄으니 어떻게 할까요? 일단 한해를 살아오면서 고마움을 표시해야 할 분들에게 조금씩 맛이라도 보라고 보내드려야죠. 물론 못생긴 것에 대한 변명으로 '무농약'임을 강조하면서 말입니다. 대지의 힘만으로 자란 것이니 귤껍질까지도 버리지 말고 잘 다려서 몸에 모시라고 거듭거듭 강조하겠죠.

그런데 사실 농약을 친 귤도 소금물에 살짝 담가서 씻어 말렸다 다려먹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어쩌면 괜스레 유난을 떠는 것일 수도 있죠. 좀더 솔직하게 말하면 박스 값과 우편료만 해도 만만치 않으니 귤값이라도 아껴보자는 속셈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저런 계산이 깔렸든지 아니든지 간에 귤을 따는 그 시간은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릅니다. 무슨 일이든지 이런 재미가 있으면 하나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땀까지 적당하게 나고, 하늘까지 맑으니 금상첨화입니다.

이제 누구에게 보낼지 결정이 되면 박스에 귤을 담습니다. 하나라도 상한 것이 들어가면 연쇄적으로 썩을 수 있으니 상한 귤은 절대사절입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담으면서 귤만 담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분에 대한 고마움도 담고, 사랑도 담고, 나의 정성도 담고, 마음도 함께 차곡차곡 담습니다.

그리고 한 박스 가득 차면 그 모든 것들이 하나라도 세어 나오지 못하도록 테이프로 꽁꽁 붙이고, 줄로 묶습니다. 이제 박스정리가 끝나면 우체국으로 갑니다. 이런 정성을 담아서 보내는 우체국은 항상 만원입니다. 아마 서울 우체국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일 것입니다.

▲ 빠른 우편으로 11시 이전에 보내야 다음날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11시 전이 가장 붐비는 시간입니다.
ⓒ 김민수

이 많은 박스에 담긴 귤들 중에서 아마 우리 집 귤이 가장 못생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많은 박스에는 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감자, 당근, 갈치 등 종류도 많습니다. 철을 따라 밭에서 농장에서 바다에서 거두는 것들을 보내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우체국에 가서 박스들을 볼 때마다 그 안에 담겨있는 사랑들까지도 봅니다.

올해도 귤값이 별로 신통치 않은 것 같습니다. 농민들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고, 폐원을 하는 귤밭에서는 귤나무를 태우는 연기가 종일 올라오기도 합니다.

싼 맛에 하나 둘 수입을 하고, 온갖 농약들로 버무리 된 농산물들이 우리네 식탁을 점령해가고, 우리들 몸에 쌓여가니 농민들도 죽고, 우리들도 죽습니다.

정치인들이 이런 문제들만 가지고 고민을 해도 시간이 모자랄 판인데 요즘 하는 짓들을 보면 그야말로 가관입니다. 국회의원이라는 분들이 자기의 기득권을 지키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국민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일하는 사람일진데(너무 순진한 기대죠?) 이건 뭐, 자신들의 비리를 덮는 일에만 급급하고(방탄국회라고 합디다), 자주국방을 해야할 자주국가에서 되려 '가지 말라'고 외국군대 바지가랑이나 붙들고, 개혁을 하겠다 어쩌겠다 하더니만 갖가지 사건에 연루된 이들까지도 묻지마 영입을 하고, 지들끼리 치고 받는 일에만 정신이 팔려서 국민들은 죽는지 사는지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내년 4월이 되면 또 90도 각도로 인사를 하면서 표 한 장 달라고 구걸을 할 터이고, 그러면 언제 그랬나든 듯 학벌과 지연에 얽매여 또 한 표 사탕발림에 속아 주거나, 아니면 고고한 척 투표권을 거부해서 어부지리로 국민들 생각은 눈꼽만치도 않는 그런 의원들만 잔뜩 뽑아 놓겠죠.

기분 좋게 못생긴 귤을 따서 보내다 말고 우리의 정치현실을 돌아보니 이런 추한 것들이 못생긴 것의 진의를 왜곡하고 모독하는 일인 것 같아 화가 납니다. 추한 것과 못생긴 것은 다른데 말입니다. 정치인들에게 한 마디 하고 싶습니다. "못생긴 것을 왜곡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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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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