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사진은, 평범하다. 기교도 없고 각도의 변화도 드물다. 반면 그의 카메라에 담기는 이들은 평범하지 않다. 손가락 세 개가 잘려진 손을 들고있는 남자, '대한(大恨)민국'이라는 펼침막 뒤에 선 여자, 뇌졸중으로 쓰러져 움직이지 못하는 남자, 좁은 방 안에 아무렇게나 누운 여자….
그 중에는 한국에 와서 일을 시작한 지 나흘째 되던 날 오른손이 프레스에 말려 들어가는 바람에 한쪽 팔을 잃은 재중 동포 이림빈씨도 있다. 염색 공장에서 일하다 기계가 폭발해 온몸에 화상을 입은 재중동포 김명식씨도 있다.
상처받고 눈물짓는 이들, 재중 동포와 외국인 노동자들을 찍는 그는 사진작가 김지연(32)씨이다.
소녀, 카메라를 들다
김지연씨가 카메라를 처음 만진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우연히 사진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 그는 "부모님을 잘 만난 덕에" 프랑스에서 사진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 머물면서 순수예술을 공부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허전함을 느꼈다. 더 이상 사진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다고 판단한 그는 7년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사진을 그만둘 작정이었다.
그런 김지연씨에게 다시 카메라를 집어들게 하는 '사건'이 생겼다. 바로 성남 외국인노동자의 집 김해성 목사와의 만남이었다. 비록 라디오를 통해서였지만, 김 목사가 설명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상황은 그에게 섬뜩한 느낌마저 안겨주었다고 한다.
"내가 우리 사회를 몰라도 너무 몰랐구나, 우리 사회에 이런 일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그는 곧바로 성남 외국인노동자의 집을 찾아갔다. 그와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사진을 찍을 생각은 없었다. 노동자들을 돕고 싶은 마음에 종종 상담소에 들러 전화를 받거나 노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부였다. 행사나 집회와 같이 촬영이 필요한 때에만 사진을 찍던 것이 점차 빈도와 횟수가 늘어났고, 마침 김 목사가 사진집을 내자고 제안하면서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 분들과 많은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했죠. 사진집을 내기 위해 사진을 찍은 것은 2년 정도지만 그 전부터 노동자분들과 적지 않은 시간을 함께 했어요. 한 2년 정도? 지금은 으레 오는 사람이 되었죠. 요즘에도 기독교회관에 사진 찍으러 가면 "작가님" "작가님"하며 챙겨 주세요. 사진을 찍어서가 아니라, 와 주는 것 자체가 고마우신 거예요."
'잘나빠진' 한국 정부는 뭐하고 있나
작업을 하면서 마음 아픈 일도 무던히 겪었다.
"손발이 잘리거나 목숨을 잃는 분들을 많이 봤죠. 그럴 때면 참 허무해요. 우리는 모두 지구에 잠깐 들리러 온 이방인들이구나 싶고. 그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을 떠올리면 또 가슴이 무너져 내리죠."
중국에 갈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재중동포들은 선물이며 편지들을 한아름 안겨 주었다. 가족들에게 전해 달라는 것이다. 선물과 편지 보따리를 들고가면 또 공항은 그것을 받아든 가족들의 눈물 바다가 되었다.
김지연씨가 만난 재중동포와 외국인 노동자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엄청난 빚을 지고 들어와서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하다 엄청난 상처를 지고 돌아가는 사람들, 때로는 그렇게라도 돌아가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 '잘나빠진' 한국 정부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재중 동포들이 고국에서 받는 서러움, 외국인 노동자들이 타국에서 겪는 인권유린들, 한발만 들어와서 보면 다 보이는 것들인데. 왜 그것을 외면하고 비현실적인 정책만 내놓는지를 모르겠다는 거죠."
그럼에도 웃음과 희망을 잃지않는 재중동포들을 보면서 김지연씨는 많은 것들을 느끼고 배운다고 했다.
"기독교연합회관에서 농성하는 분들 중에는 어르신들이 많아요. 그 분들이 추운 데서 자고 나면 입이 돌아가고 마비가 되고 그러세요. 그런데도 희망을 버리지 않으세요. 그들과 함께 해주는 한국인들이 있으니까, 이렇게 농성을 하면 바뀌리라는 믿음이 있으니까요."
대상의 이미지만을 훔치는 사진은 찍고 싶지 않아
김지연씨는 자신이 전달자일 뿐이라고 말한다. 만국 공통어인 사진을 통해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대신 전달해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사진이 하나의 재밋거리로 전락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소외된 사람들의 사진을 통해 다들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착각에 경종을 울릴 수 있는 거죠. 그것이 내가 무언가를 가르치거나 바꾸고 싶다는 뜻은 아니에요. 김 목사님을 만나기 이전의 나처럼, 기회가 없어서 현실을 몰랐던 사람들에게 진실을 전달해주고 싶은 것 뿐이죠."
김지연씨의 사진에 기교가 없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사진은 나와 대상 간의 끊임없는 소통이자 싸움이거든요. 단순히 대상의 이미지를 훔치는 사진은 보는 이의 마음을 두드릴 수 없죠. 사진을 찍는 동안 동포분들과 이야기도 많이 하고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그 분들이 눈물 흘리는 모습을 찍으면 이야깃거리는 될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전 그런 상황에서는 사진 안 찍어요. 차마 못 찍겠더라구요."
현재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그는 학생들에게도 '뼈가 있는 작업을 하라'고 가르친다.
"무엇을 하든 자기 안의 뚜렷한 주관을 가지는 게 중요해요. 자신의 철학이 서서히 작업 속에 스며들도록 해야 하는 거죠. 언젠가 외국인 노동자의 장례식장에 학생들을 데리고 갔는데 많이들 놀라고 혼란스러워하더군요. 그 친구들이 이후에도 농성장을 찾아 와요. 자원봉사도 하고 촬영도 하고. 그런 걸 보면 뿌듯해요."
"사진을 찍든 공부를 하든 그것을 사회에 어떻게 돌려줄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는 일은 곧 쓰레기이고 공해"라고 말하는 김지연씨는 또 한권의 사진집을 낼 계획이다.
"고려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인데 한창 막바지 작업 중이에요. 역사의 굴곡 속에서도 땅을 일구고 전통을 이어나간 고려인들을 보면서 한국인의 자긍심을 오랫만에 느꼈어요. 그런 사람들이 지금은 너무 많은 것들을 잃어가고 있고, 한국 정부는 그들에 대해선 어떤 조치도 하고있지 않죠."
얼핏 보면 그의 사진은, 평범하다. 기교도 없고 각도의 변화도 드물다. 그냥 증명 사진 찍듯 정면으로 사람을 보고 찍는 때도 많다. 그러나 그 사진 속에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이 하고 싶어하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그들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담겨 있다. 김지연, 그러므로 그는 진정한 프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