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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기술원 신동원 연구교수
한국과학기술원 신동원 연구교수 ⓒ 김태형
'생명윤리와 종교'라는 주제로 지난 6일 정동 프란체스코 회관에서 열린 '한국종교문화연구소(이사장 정진홍) 2003 하반기 정기 심포지움'에서 신동원 교수(한국과학기술원 연구교수)는 조선시대의 의서를 중심으로 '한국 전통 의학의 의학윤리와 생명윤리'를 다룬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신 교수는 조선 초기 의서인 <의방유취>와 <향약집성방>에 실린 전녀위남법(여아를 남아로 바꾸는 법)을 소개하면서 "의학이 남녀의 성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행위에 대해 의문을 품기보다는 유교적 가부장제에 따른 남아선호 관념에 봉사했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전녀위남법의 기원은 매우 오래되어서 중국의 경우 2천 년도 넘는 것으로 확인되는데 주로 가문을 이을 남아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되었다"며, "이러한 일방적인 성결정에 의학은 '전녀위남'이라는 조작적 행위를 정당화하고 지식을 제공하는 적극적인 찬조자 구실을 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이는 하늘로부터 품부 받은 생명이 자연의 이치대로 생겨난다는 동아시아 사상의 생명관이 균열을 보이는 사례"라고 지적한 후, "이처럼 인위적인 조작 행위에 대해 아무런 윤리적 고민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사회문화적 토대가 무엇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동아시아 한의학은 자연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지녔다고 생각한다"며, "양생관(養生觀)에서는 자연친화적인 사고를 보이고 있고, 병의 치료 방법이나 약재의 확장에서는 자연지배적 사고를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장석만 연구실장은 "이 논문의 요지는 전통사상에서 자연친화적인 사고뿐만 아니라 자연지배적인 사상도 있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지만, 인간중심이나 자연지배와 같은 용어 사용에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전녀위남법이나 방대한 약제 사용 등을 서구 근대적 맥락에서 비롯된 자연지배적 사고로 볼 수 있을지 좀 더 고민해 봐야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03년 하반기 심포지엄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03년 하반기 심포지엄 ⓒ 김태형


낙태 반대의 목소리만 내는 종교계의 도그마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낙태 문제에 있어 반대의 목소리만을 내고 있는 대다수 종교계의 획일적인 대응을 지적하는 김윤성 박사(서울대 강사)의 논문도 발표되었다.

김윤성 박사는 지난 2002년 12월 15일 새천년종교인윤리평화총연합(이하 새종연)이 발표한 <새천년종교인윤리헌장 실천지표 2003>에 실린 낙태 관련 조항을 거론하며, "외국의 경우 종교계 내에서도 낙태와 안락사에 관한 온갖 서로 다른 목소리가 공존하는데, 우리나라 종교계에는 왜 유독 한 가지 목소리만 내는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 김윤성 박사
한국종교문화연구소 김윤성 박사 ⓒ 김태형
김 박사는 "이러한 단일성이 (종교계의) 꽉 막힌 획일성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며, "생명윤리를 가로지르는 미세한 결들을 놓치고서는 이에 대한 충분한 해답과 전망을 열어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박사는 "낙태 문제에 내재해 있는 다양한 모호성들을 살피고 종교계의 낙태반대운동이 지니고 있는 실질적 폭력 내지 폭력의 함의를 파악해야 한다"며, "태아도 사람이라는 일반적인 인식과 낙태가 행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 사이의 틈새를 고민함으로써 이 문제에 대한 보다 건전하고 균형 잡힌 인식과 판단의 토대를 마련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낙태반대주의자들은 낙태를 허용하면 성의 문란과 선별낙태의 증가가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거나 뿌리 깊은 남성중심주의나 가부장제의 문제를 간과한 것"이라며, "합리적 조건을 갖춘 낙태 허용 법안을 조속히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몸도 일종의 자산이 되어버린 사회

뇌사와 생명복제의 문제를 다룬 박상언 박사(아주대 강사)는 “질병과 건강을 담보로 인간의 몸에 권력을 행사하는 현대의학과 생명공학의 성향”에 대한 비판적인 분석을 시도했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 박상언 박사
한국종교문화연구소 박상언 박사 ⓒ 김태형
박상언 박사는 “의사의 행위에는 암묵적으로 몸에 대한 통제라는 지식-권력의 효과가 발휘되고 있다”며, “생물적-사회적 일탈자들에 대해 의학이라는 권력은 그들을 감시하는 성격을 띠고 있고 그것은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기준을 만들어냄으로써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박상언 박사는 “죽음과 질병을 극복하기 위해 출발했던 첨단 의학 기술이 오히려 인간의 몸 자체를 욕망 충족을 위한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며, “현대 사회는 그 어떤 시대보다 몸에 대한 강렬한 애착을 드러내지만, 정작 그 삶을 기획하는 개인은 전문가들의 지식과 유통망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고 분석했다.

오후 1시부터 네 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심포지엄에는 최재천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황필호 강남대 종교철학과 교수 등이 참석해 성명윤리 논란에 담긴 다양한 종교적, 철학적, 과학적 문제들을 지적했으며, 수능시험을 마친 고등학생들과 종교계 언론인 등이 참석해 관심을 보였다.

사단법인 한국종교문화연구소(이사장 정진홍)는 반기별로 열리는 심포지움 외에도 매월 정기적으로 '종교문화포럼'을 개최하고 있으며 이러한 성과를 모아 학술지 <종교문화비평>을 발간하고 있다.

조선 시대 히포크라테스 선언 <의방유취>
의사의 도덕, 윤리를 논함(論大醫精誠)

1.······의학을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의학 원리에 대하여 널리 보고, 깊이 연구하여 한시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훌륭한 의사는 병을 치료할 때에 반드시 정신을 안정하고 의지를 든든히 할 것이고 어떠한 욕심이나 바라는 생각이 없어야 한다.

2.먼저 환자에 대한 자비롭고 측은히 여기는 마음[大慈·惻隱之心]을 발휘하여 사람의 고통을 다 구원한다는 서원(誓願)을 세워야 한다. 병이 나서 고쳐달라는 사람이 있으면 직위의 높고 낮은 것, 돈 있고 없는 것, 어른과 아이, 잘 생겼거나 못 생긴 것, 원한이 있는 자와 벗, 자기 민족[華]과 다른 민족[夷], 똑똑하거나 어리석은 사람 할 것 없이 다 자기의 살붙이처럼 똑같이 대접해야 한다. 또 이것저것 득실과 길흉을 따지지 말 것이며 자기의 생명을 보호하고 아끼려고도 하지 말아야 한다. 환자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으로 여기고 깊은 동정심을 가져야 하며, 험한 산길, 밤낮, 추위나 더위, 배고픔과 목마름, 몸의 피로를 따지지 말고 오직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겠다는 일념으로 환자를 구해야 하며, 자기가 환자를 위해 수고한다는 티를 내지 말아야 한다.······

3.옛날부터 명의들이 흔히 생명 가진 것을 써서 위급한 병을 치료했다. 비록 동물은 천하고 사람은 귀하다고 말하지만, 목숨이 소중한 것은 모두 똑같다. 남을 해하여 자기를 이롭게 한다면, 상대방이 고통받게 될텐데, 이는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 살생을 해서 생명을 구한다면, 생명 존중과 더 멀어지는 것이다. 생명 가진 물체를 약으로 쓰지 말라고 한 것은 이 때문이다.······

4.훌륭한 의사의 행동은 언제나 정신을 맑게 하고 마음을 가다듬어서, 바라보면 위엄 있어 보이고, 너그러움이 넘쳐흐르며, 교만하거나 어리석게 보이지 않도록 한다. 병을 진찰할 때에는 끝까지 생각하고 자세히 형태와 증후를 살펴 털끝 만한 것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침이나 약에 대한 처방을 할 때에 조금도 틀리지 않도록 한다. 병을 신속히 고쳐야 한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병을 돌봄에 의혹이 있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세밀하게 따져보고 깊이 또 널리 생각해야 한다. 생명이 위급한 때에 급히 서두르거나 명예를 얻으려는 행위는 ‘인(仁)’의 정신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다.

5.환자의 집에 가서도 아름다운 비단과 천에 눈을 팔지 말 것이며, 좌우를 두리번거리지 않는다. 좋은 음악소리가 들려도 못 들은 체 해야 하며, 훌륭한 요리도 맛없는 것처럼 대하고, 좋은 술로 못 본 체해야 한다. 여러 사람이 즐겁게 노는 잔치에 한 사람이 참석하지 못하면 모두가 마음이 편치 않은 법인데, 더구나 환자가 한시도 참을 수 없이 고통을 받고 있는데 의사로서 태연하게 오락을 즐기며 오만하게 있다면, 이런 일은 사람과 귀신이 모두 부끄러워하는 일로 수양을 갖춘 사람이 하지 않는 일이다. 의사노릇을 옳게 하려면 말을 많이 하거나 함부로 웃지 말며 농담을 하거나 시끄럽지 않아야 한다. 시비에 간여하거나 인물평을 하지 않아야 한다. 이름을 날리는 데 정신을 팔지 말고 다른 의사들을 비난하지도 않으며, 자신의 덕에 긍지를 갖는다.······

6.노자가 말하기를 “사람이 몰래 덕을 베풀면, 사람이 그에 대해 보답을 한다. 사람이 악한 일을 하면, 귀신이 그를 해친다.”고 했다. 이 두 경우를 보건대, 알게 모르게 보답하는 것이 어찌 거짓이겠는가? 의사가 자기의 좋은 기술을 뽐내거나 돈벌이에 정신을 쓰지 않고 오직 환자의 고통을 덜어줄 생각만 한다면, 은연중에 스스로 많은 복을 느끼게 될 것이다. 또 부자나 직위 높은 사람이라 하여 비싸고 귀한 약들을 처방하여 환자로 하여금 구하기 힘들게 하는 것으로 자기의 재능을 뽐낸다면 이는 충서(忠恕)의 도가 아니다. 생명을 구하는 일에 뜻을 두었기에 이처럼 상세히 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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