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언론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조선일보>. 진보진영에서는 이를 '수구언론'으로까지 지칭한다. 따라서 젊은 세대의 조선일보 선호도는 다른 신문에 비해 그리 높지 않은 형편이다.
언론사 세무조사가 진행된 2001년 당시에는 안티조선운동의 영향으로 조선일보 수습기자 응시율이 하락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이후 조선일보는 홍보강화와 함께 응시조건을 완화하고 공채방식을 바꾸는 등 수습기자 채용에 적극 나서 관심을 모았다.
조선일보는 올해도 서류전형을 전면 폐지해 응시자 전원에게 필기시험 기회를 부여하는 등 문호를 대폭 넓혔다. 이같은 과정을 거쳐 지난 8일, 9명의 수습기자가 조선일보에 입사했다.이중 4명은 여성 기자이다. 지난해에는 12명 중 6명이 여성이었다.
이들은 공대 출신에 약학석사에 법학학위를 소지한 사람, 국악작곡 전공자, 전 연합뉴스 기자, 조선일보 인턴기자 출신 등 이력도 다채롭다. 특기 역시 친구 초대, 최신 동요, 매체비평, 칼럼쓰기, 술마시기, 성대모사, 아나운싱, 오락회 진행, 1인극, 기차여행, 서점가기, 가야금 연주 등으로 신세대의 다양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들 조선일보 수습기자 9명의 난상토론이 조선일보 사보 12일자에 실렸다. 수습기자들은 기자를 지원하게 된 이유와 조선일보에 대한 나름의 인식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우선 기자가 된 사연을 보면 "△역사 현장을 지키고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보수적인 의견을 당당하게 말하고 싶었다 △내 생각을 널리 전파하는 게 의미있다 △세상과 직접 소통하고 싶었다 △기자는 힘이 있다 △평생 글쓰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었다 △아이템을 맛깔스럽게 가공하는 재주가 있다 △글쓰는 차선책으로 택했다 △원하는 지면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다" 등으로 '9인9색'이다.
이중 요즘 젊은 사람들에 비해 보수적인 편이라는 한 수습기자의 소개가 눈길을 끈다. "당당하게 내 의견을 말하고 싶었다"고 전제한 그는 "진보적이라는 젊은 사람들, 군사독재를 비판하면서 오히려 자신들은 파시스트적인 행태를 보인다. 이런 모순된 태도가 너무 싫었다. 보수층도 물갈이할텐데 한몫하고 싶다"면서 "차세대 보수리더를 꿈꾼다고 할까"라는 농담섞인 표현을 했다.
또 한 기자는 기자의 가장 큰 매력으로 '힘'을 꼽았다. 그는 "방송기자로 있는 선배가 어떤 지역 보도블럭을 꼬집는 1분15초 짜리 기사를 내보냈는데 1주일만에 싹 바뀌었다고 자랑했다"며 "정치인이나 정책입안자들이 몇 개월 걸려서 할 일을 기자는 단 하루만에 이뤄낸다, 이 힘을 우리 사회 어두운 곳에 올바르게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를 바라보는 수습기자들의 시선은 개인간 편차를 나타냈다. 공정한 기사를 쓰고 싶다는 기자부터 조선일보가 합리적 보수 정론지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보수의 악당 역할을 두려워선 안된다는 인식 등까지 이른다.
특히 조선일보가 합리적 보수의 정론지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고 밝힌 기자는 "진보는 누구나 쉽게 표방할 수 있지만 보수는 똑똑해야만 할 수 있다"면서 "대안은 조선일보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러모로 보수층이 위기인데, 조선일보는 이번 기회에 논조를 가다듬는 등 '보수 이론'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조선일보 악당 역할론'을 주창한 기자는 "보수를 표방하려면 악당 역할을 두려워해선 안된다, 진보가 이상을 부르짖을 때 보수는 현실을 감안한 악역도 맡아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지면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게 제기됐다. "확장을 하러 나갔다가 다른 신문을 보는 독자가 '조선일보 정치면 볼 때마다 기분 상해서 끊었다'고 말했다"고 전한 기자는 "팩트에 충실한 공정한 기사를 쓰고 싶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또 한 기자는 "독자 입장에서 봐도 상하간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인상이 든다"고 지적했다. 그는 "똑같은 팩트를 다루는데도 조선일보 기사가 다른 신문들과 논조가 다르면 '일선 기자들 생각보다 데스크 입김이 셌구나' 짐작하게 된다"면서 "반면 신문 질을 높이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은 장점"이라고 평했다.
편집국 평가시험 때 나이지리아 사람을 취재했다는 기자는 "한국 사람들에 대한 불만이 머리 끝까지 차있던 그는 내 손을 꼭 잡더니 '기자가 되면 차별없는 사회를 만들어달라'고 당부했다, 이 말을 결코 잊지 말자고 다짐했다"고 회고했다.
한편, 한 기자는 조선일보 문화면을 자신의 '드림 팩토리(꿈의 공장)'로 표현했으며, 다른 기자는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 날카로운 필력의 L모 논설위원이 사표"라고 평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