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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안현주
지난 13일 좌탈입망(坐脫入亡·참선하는 자세로 앉은 채로 열반)의 모습으로 입적한 조계종 전 종정 서옹(西翁) 큰스님 영결식이 19일 오전 11시 전남 장성 백양사에서 봉행됐다.

영결식이 거행된 백양사에는 조계종 종정 법전스님과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스님을 비롯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 조순형 민주당 대표, 이태일 열린우리당 공동의장 그리고 전국에서 모여든 3만여명의 신도들이 참석해 인산인해를 이뤘다.

대한불교 조계종 종단장으로 봉행된 이날 영결식은 이 시대 최고 선승으로 손꼽히는 서옹 큰스님이 주창했던 '참사람 주의'의 실천을 다짐하며 엄숙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사바세계 벗어났으니 대해탈, 대자유 누리소서"

전남 장성 백양사에서 열린 서옹 큰스님 영결식이 끝나고 상여가 다비장으로 옮겨지고 있다
전남 장성 백양사에서 열린 서옹 큰스님 영결식이 끝나고 상여가 다비장으로 옮겨지고 있다 ⓒ 오마이뉴스 안현주
영결사에 나선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스님은 "대종사의 관심은 오직 '참사람' 만드는 것에만 있을뿐, 붕당이나 잡사에는 무관했다"고 서옹 큰스님을 회고했다. 이어 "올해 들어 제방총림(諸方叢林)을 이끌어 주시던 선지식(善知識)들께서 약속이나 한 듯 서방으로 떠나시더니 대종사마저 홀연히 떠나 우리는 이제 누구를 믿고 따라야 할지 창황망조(蒼黃罔措)할 따름이다"고 애석해했다.

조계종 종정 법전스님은 법어를 통해 "분명하고 역력한 무위진인(無位眞人·자유자재한 인간 본래의 참모습)은 태어나도 생을 따르지 않고 죽어도 사(死)를 따르지 않는다"며 "올 때는 삼천세계가 일어나고 갈 때는 백억화신(백억이나 되는 석가의 화신)을 나투고 토한다"며 서옹스님을 추도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조문메시지를 보내 서옹 큰스님의 입적을 애도했다. 조윤제 대통령 경제보좌관이 대독한 조문메시지에서 노 대통령은 "서옹 대종사의 입적에 온 국민과 함께 깊은 애도의 마음을 드린다"며 "대종사께서는 한국불교의 수행체계를 바로 세우고, 모든 인류가 자기본성을 되찾아 주체적인 참사람으로 살아갈 것을 가르치셨다"고 회고했다. 이어 "대종사의 큰 가르침을 소중한 좌표로 삼고 온 국민과 함께 기리겠다"며 추모 메시지를 전했다.

이날 영결식에 참석한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 조순형 민주당 대표, 이태일 우리당 공동의장은 마음의 의지처를 잃은 슬픔을 표하며 서옹 큰스님의 입적을 애도했다.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 지하스님은 "대종사께서는 세상이 불화로울 때 법체를 일으켜 할과 방으로 꾸짖으며 중생의 도를 몸소 실천하셨다"며 "이제 대종사께서 선가(禪家)의 가풍으로 대자비의 몸을 떨쳐 좌탈입망하시니 사도(邪道)의 무리는 절복했고 납자(衲子)들은 생사일여(生死一如·생과 사는 둘이 아닌 하나)가 무엇인지를 체득했다"며 큰스님의 가르침을 되새겼다. 이어 "사바세계를 벗어 던지셨으니 대해탈, 대자유의 삶을 누리옵소서"라며 큰스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서옹 큰스님의 법구를 모신 연화대에 불이 붙어 타고있다.
서옹 큰스님의 법구를 모신 연화대에 불이 붙어 타고있다. ⓒ 오마이뉴스 안현주
영결식을 마친 서옹 큰스님의 법구(法軀)는 스님의 삶과 법어를 새긴 만장을 앞세우고 다비장으로 향했다. 서옹 큰스님의 법구는 좌탈입망 자세 그대로 연화대에 모셔졌다.

서옹스님 장의위원회가 외친 "불·법·승"에서 마지막 '승' 구호에 횃불을 들고있던 전국의 선방수좌 스님들은 스님의 법구가 모셔져있는 연화대에 불을 놓았다. 연화대에 불이 놓이기 직전 한 스님이 "스님 불 들어갑니다"라고 외쳤고 곧 짙은 연기가 다비장에 피어올랐다.

'석가모니불'을 염송하며 다비장 주변에 운집한 스님들과 신도들은 합장을 올리며 사바세계를 떠나는 서옹 큰스님을 배웅했다.

서울에서 온 이현숙(39·여)씨는 "중생들의 입장에서는 큰스님의 입적이 아프지만 서글픈 마음은 들지 않는다"며 담담한 눈길로 연화대를 지켜봤다. 이씨는 "큰스님의 '참사람'이라는 가르침을 마음에 새겨두며 따르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내세에서 다시 만나 큰 가르침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법명을 조 정법행(58·여)이라고 밝힌 신도는 "육신은 가셨지만, 법계에 충만한 큰스님의 법을 의지해 우리가 살아갈 것이기 때문에 큰스님은 영원히 계시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가고 오는 것이 하나라는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조씨는 그러나 "속세에 있는 중생으로서 큰스님이 떠나신 것에 마음 아프다"고 말해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낮 12시50분경부터 거행된 다비식은 20일 오후 습골 등 절차를 거쳐 사리수습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서옹 큰스님의 생애

▲ 서옹 큰스님은 평상시 정진하던 자세 그대로 입적했다.
ⓒ백양사 제공
서옹 큰스님은 1912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한학을 공부하던 큰스님은 서울로 올라와 양정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양정고보 2학년때 어머니와 할아버지가 연이어 유명을 달리하는 아픔을 겪은 큰스님은 의사가 되고자 했던 희망을 접고 출가를 결심했다.

1932년 중앙불교전문학교(동국대학교 전신)에 입학한 큰스님은 그해 7월 만암선사를 찾아 백양사로 출가했다. 28세 되던 1939년 일본 임제대학으로 유학간 큰스님은 천황에게 절할 것을 강요당했지만 거부했다. 이 일로 큰스님은 징병까지 당했지만 끝까지 버텨 가지 않았고, 이 일화는 서옹 큰스님의 성품을 소개할 때 두고두고 전해지고 있다.

1944년 귀국한 큰스님은 이후 대흥사 주지, 동국대 대학선원장, 천추사 무문관 조실 등을 지내며 불교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56세 되던 1967년 백양사 쌍계루를 지나던 큰스님은 돌다리 아래 흐르는 물살을 보고 크게 깨달아 '상왕은 위엄을 떨치며 소리치고 사자는 울부짖으니/번쩍이는 번갯불 가운데서 사(邪)와 정(正)을 분별하도다/맑은 이 늠름하여 하늘과 땅을 떨치는데/백악산을 거꾸로 타고 겹겹의 관문을 벗어나도다'라는 유명한 오도송(悟道頌)을 세상에 내놓았다.

1974년 조계종 제5대 종정으로 추대된 서옹 큰스님은 "청정한 출가행으로 참사람이 되어야"라는 취임 법어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참사람 운동'을 펼쳤다. 우주는 모두 조화롭게 서로 의지하고 은혜를 주고받으며 공조하므로 자아를 초월해 인간의 진실한 모습을 근원적으로 완전히 드러내게 하는 것이 '참사랑 운동'의 내용.

'자각한 사람의 참모습'을 참사람으로 정의한 큰스님은 백양사에 참사람수련원을 개원하고 대중들이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몸소 지도해왔다.

한국불교 발전에 기여한 서옹 큰스님의 업적을 논할 때 무차대법회(無遮大法會) 역시 빠지지 않는다. 무차대법회란 지위고하, 남녀노소 구별없이 모든 대중들이 평등하게 법을 묻고 답하는 자리다. 서옹 큰스님이 90여년 만에 부활시킨 1998년의 무차대법회에는 국내외에서 6천여명의 대중들이 운집해 고승들의 법어에 귀기울였다. 이후 무차대회는 격년으로 개최되고 있다.

수행의 방법 중 "참선만한 것이 없다"며 참선을 통한 '참 나'를 발견할 것을 독려하던 서옹 큰스님은 세수92세, 법랍 72세되는 올해 12월13일, 백양사 설선당 염화실에서 입적했다. 서옹 큰스님은 입적 직전까지도 스님들에게 법문을 들려줬으며 "이제 가야겠다"는 말을 남긴 뒤 앉은자세로 좌탈입망했다. / 이승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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