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출근하는 정규직 사원들 뒤로 비정규직 해고 노조원들이 원직복직을 촉구하는 선전을 펼치고 있다. 내년 2월이면 투쟁 3년을 맞는다. 나머지 조합원 2명은 11월 노동자대회와 관련 구속됐고 1명은 전기공사 아르바이트를 나갔다.
출근하는 정규직 사원들 뒤로 비정규직 해고 노조원들이 원직복직을 촉구하는 선전을 펼치고 있다. 내년 2월이면 투쟁 3년을 맞는다. 나머지 조합원 2명은 11월 노동자대회와 관련 구속됐고 1명은 전기공사 아르바이트를 나갔다. ⓒ 오마이뉴스 안현주

막 동이 터온 아침 7시10분. 광주 하남공단 캐리어 사내하청노조 천막에도 가녀린 아침햇살이 스며들었다. 올해도 시간은 이렇게 한해의 마지막을 달려가고 있다.

농성장 입구는 흡사 토굴이나 다름없다. 한 겨울 찬바람에 더욱 비좁아진 통로를 이들은 두더쥐나 되는 것처럼 이렇게 드나들었다. 내년이면 3년째. 2001년 2월 비정규직 처우개선으로 시작된 캐리어사내하청노조 투쟁이 또 한해를 넘기고 있다.

예닐곱 조합원들이 서둘러 몸을 추슬러 (주)캐리어 정문으로 나선다. 해고자인 이들은 매일 아침 정규직 사원들의 출근시간에 맞춰 원직복직을 요구하는 출근선전을 펼치고 있다. 통근버스에서 내려 총총걸음으로 공장에 들어가는 정규직 사원들은 한때 같이 일한 동료였다. 벌써 얼마인가. 동료들의 눈빛이 어렵기는 서로 마찬가지다.

교통정리를 하는 50대쯤 돼 보이는 아저씨한테 말을 붙였다.

"이제는 보통으로 압니다. 2년이 넘었는데…. 금년에는 거의 이 정도 숫자들입니다. 매일 아침 이렇지요."

아저씨도 비정규직이긴 마찬가지. 여기 저기 비정규직 판이다.

에어콘과 냉방기를 생산하는 이 회사는 많게는 700여명까지 용역사원을 써 왔다. 이들이 받는 임금은 상여금을 포함해봐야 정규직 평균임금의 1/3정도. 같은 라인에 들어가 같은 공정의 일을 하면서도 단지 용역이라는 신분차이 때문이다.

@ADTOP@
하청노동자로 일하다 정규직이 된 박홍용(31)씨는 뒤늦게 지난일을 문제삼아 해고된 경우. 내년 2월이면 그도 2년째를 맞는다. 강아지가 알아본 듯 꼬리를 치고 있다.
하청노동자로 일하다 정규직이 된 박홍용(31)씨는 뒤늦게 지난일을 문제삼아 해고된 경우. 내년 2월이면 그도 2년째를 맞는다. 강아지가 알아본 듯 꼬리를 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안현주
성수기에 700여명에 달했던 용역사원은 비수기에 350여명으로 대폭 줄었다. 계절적 요인에 민감한 제품의 특성처럼 그 자신들도 실상은 성수기와 비수기 때처럼 운명이 엇갈리고 있었던 것. 불법파견이 인정돼 사용주도 구속됐지만 조합원들도 7명이나 구속되는 아픔을 겪었다. 또 조합원 40명에 대해 총 1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이 아직 남아있다.

선전을 마친 조합원들이 천막 안 가스난로에 차가워진 손을 모았다. 농성장에서 유일한 난방기구다. 낮에 아르바이트나 다른 일정에 결합하는 해고자들은 매일 저녁 다시 이곳에 찾아든다. '굳이 이럴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에 "그러면 천막 농성하는 의미가 무엇이냐"고 반문한다.

군대를 마치고 하남공단에서 이곳 저곳을 찾다 캐리어 용역사원으로 일하게 됐다는 김기중(29)씨. 한 때는 시골에서 농사를 지을까 작정하기도 했단다. '그동안 어느 곳에서 일해 봤느냐'는 말에 옆 동료는 "안 찾아가 본 곳을 찾는 게 더 쉬울 것"이라고.

"처음에는 비정규직이 뭔지도 잘 몰랐습니다. 그냥 세상 탓만 했지요. 정규직은 안 뽑고 일은 해야 되고, 할 수 없이 용역직밖에 더 있습니까."

김경만(29)씨는 부안이 고향이다. 부모님은 6살과 15살 때 각각 여의고 부안에는 형님이 살고 있다. 김씨는 2001년 5월 해고된 뒤 여러 일을 전전해 왔다. 원직복직 투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생계를 꾸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거칠지만 알고보면 모두 따뜻하고 소중한 손들이다. 전기도 물도 없는 천막안이 어두침침하다.
거칠지만 알고보면 모두 따뜻하고 소중한 손들이다. 전기도 물도 없는 천막안이 어두침침하다. ⓒ 오마이뉴스 안현주
"할 줄 아는 게 용접이다 보니 찾아봤지만 하청업체밖에 없더군요. '당해 본 사람이 안다'고 형님도 처음에는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 하더니 부안투쟁 이후 지금은 몸조심만 하라고 하십니다."

김씨는 "솔직히 어디 가서 일한다고 해도 결국 비정규직으로 일할 것 같다"며 "차라리 힘들더라도 더 열심히 싸우겠다"고 말한다.

이경석(32) 노조위원장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조합원들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전망은 솔직히 불투명하기 때문. 한해가 가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 새로 취직하기에 부담스러워 지는 나이들도 그 한 이유이다.

막막하고 답답하게만 이어지는 대화. 화제를 바꾸기 위해 '오늘이 동지인데 연말 계획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맨 날 뜨는 해. 노동자가 뭐 달라질 것이 있습니까. 조합원들과 망월묘역에나 다녀올 계획입니다."

조합원들도 기자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2001년 2월 노조구성...해고-재취업 방해-구사대
캐리어 사태 어떻게 진행돼왔나

(주)캐리어는 계절적 요인에 따라 비정규직의 비중이 높았고 그 폭을 늘려오고 있었다. 2001년 2월 (주)캐리어에서 일해온 하청용역업체 수만 6개회사에 700여명. 캐리어는 광주지역 비정규직 용역업체의 최대 인력수요처였던 셈이다. 모두 '불법 파견근로'였다. 이로 인해 캐리어와 용역업체 대표가 구속되기도 했다.

같은 해 2월 18일 파견근로를 해온 6개 사내하청업체 노동자 7명이 발기인이 되어 노조 결성했다. 이때만 해도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할 때. 조합결성을 이유로 노조 간부 7명을 해고시켰고, 대화도 교섭도 진척이 있을 리 없었다.

급기야 부분파업에 이어 4월 25일 60여명이 총파업 과정에서 생산라인 점거에 들어가게 되었다. 용역 하청업체 노동자 650여명도 일시에 해고되고 말았다. 지지부진하던 협상은 5월 1일 새벽 용역깡패와 구사대의 진압에 해산되면서 마무리. 바로 노동절이었다.

캐리어는 블랙리스트로를 작성해 조합원들의 이직과 취업을 방해한 것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올해 캐리어노조 임단협 과정에서 사측 캐리어와 하청노조의 교섭창구를 마련키로 합의해 사태해결에 큰 진전을 맞는 듯 했다. 그러나 지난 7월에 가진 두번째의 협의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대화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