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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만에서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환자가 발생했다는 보도로 인해 전 세계는 다시 가슴 철렁한 순간을 맞았다. 우리나라는 현재 조류독감 때문에 사스가 관심에서 한발 물러나 있지만 현재의 방역체계상 안심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환경 변화 등으로 사스와 같은 신종 감염병이 근래 들어 늘어나고 있다. 신종 감염병(Emerging infectious diseases)이란 전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병원체에 의해 발생해 국소적 혹은 국제적으로 보건문제를 야기하는 감염병이라고 세계보건기구는 정의하고 있다.

또 미국 의학연구소는 지난 20년내 그 발생이 증가하거나 가까운 장래에 증가할 위협을 주고 있는 새로운 감염증, 재만연 감염증, 혹은 약제내성 감염증을 의미한다고 포괄적인 정의를 하고 있다.

사스를 통해 경험했듯이 국경을 통한 인구의 이동이 늘어나면서 전염병은 더 이상 국지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의 방역 현실은 어떠한가.

역학조사관 태부족

지난 4월 29일 국내 첫 사스 의심환자가 발생했다. 국립보건원은 역학조사관을 긴급히 모아 역학조사에 들어갔다.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문 역학조사관은 35명 남짓. 시도별로 1~2명 수준이다.

사스가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전파됐다면 이들 역학조사관으로는 어림없는 상황이었다. 또 천우신조로 장출혈성대장균감염증 등 비슷한 시기에 호발하는 다른 감염질환이 때마침 잠잠해준 덕분에(?) 사스 전파를 제압할 수 있었다. 조사에 참여한 한 역학조사관은 “5300여명이 감염돼 348명이 사망한 중국과 인접해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아찔했던 순간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국립보건원 관계자는 "인력이 모자라 시도 보건환경연구원까지 조사에 일부 참여하는 등 역학조사관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조직 체계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질병통제센터 모델 삼아야

이 관계자는 “비록 사스를 잡았지만 오늘 안전하다고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것이 감염질환의 현실”이라며 “현재 보건원을 질병별로 관리하는 질병관리청으로 전환해 전염질환만을 중점 관리하는 방안이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함께 김문식 보건원장도 당시 한 인터뷰에서 “역학조사관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국내에는 그 수가 너무 적어 전문가 양성이 시급하다”며 “인력을 늘리려면 현재보다 큰 조직인 질병관리본부로의 확대가 빠른 시일안에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질병통제센터(CDC, The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와 같은 조직이 필요한 시점에 왔다는 말이다. 조지아주 아틀란타시에 위치한 CDC는 170개 직종에서 8500여명이 근무하면서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감염질환을 관리하고 있다. 이중 의사만 3000여명 수준이다.

CDC의 올 예산은 42억달러 규모. 내년 예산으로 이미 65억달러를 신청해 놓은 상태다. 지난 사스 확산 때에는 300여명의 긴급대응팀을 꾸려 신속하고 조직적으로 대응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국립보건원은 전체 인력은 미국의 사스 대응팀보다 적은 180명에 채 못 미친다. 감염질환을 통제하는 방역과의 경우 직원 14명과 연구원 등 채 20명이 되지 않은 상황이다. 전염병 관리 예산은 310억원 정도.

가까운 일본의 경우 장출혈성대장균감염증, 일명 O-157 집단 감염을 계기로 전염병 전담 부서인 국립전염병연구소가 97년 만들어졌다. 중국은 지난해 미국의 CDC를 본따 직원 4000여명 규모의 질병관리센터(CCDC)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사스를 계기로 80억위안(약 1조2000억원)을 투입해 현재의 질병예방센터를 확충하기로 했다.

홍콩 역시 중국의 자극을 받아 CDC와 같은 기능의 사스연구소를 설립하기로 했다. 둥젠화 홍콩 행정장관은 지난 5월 "미국과 중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와 유사한 조직을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마사회가 이미 5억홍콩달러(800억원)를 기부하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국가 경제에 막대한 피해

이번 조류독감의 확산에서 볼 수 있듯이 인력과 예산이 뒤따르지 않은 상황에서 확산을 초기에 막을 방법은 없다. 인플루엔자나 바이러스성 질환은 일단 확산이 가속화되면 겉잡을 수 없는 국가 경제의 피해를 가져온다.

조류독감의 경우 닭이나 가금류 양육업체는 물론 가공, 소매업체들까지 연쇄적으로 경제적 타격을 입고 있다. 지난번 사스로 인해 전세계 32개국에서 8436명의 환자가 발생해 812명이 사망했다. 치사율이 거의 10%대에 육박한 것이다.

사스로 인한 인명피해도 컸지만 경제적 손실 또한 천문학적 수치를 기록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 6월 사스로 인해 세계 경제가 본 피해 규모는 300억달러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아시아에서는 한국과 중국이 관광수입과 생산성 부분 등에서 20억 달러의 손실이 예상되며 일본과 홍콩 역시 10억 달러의 피해를 전망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항공 관광산업을 위시해 주요 수출시장인 중국과 베트남 시장 위축, 현지 공장 조업 중단 등으로 정확한 피해집계는 없지만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지난해 유행한 인플루엔자(독감)으로 건강보험재정 손실액이 약 2300억원이라는 추정이 있었다. 연간 의료비가 30조원에 달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이 중 5조원이 인플루엔자와 같은 전염질환에 소요된다는 추산도 있다.

비용효과적 측면 고려해야

5조원이 소요되는 전염질환을 보다 적극적으로 예방하면 30% 가량 발생 규모를 줄일 수 있다고 보건원은 내다보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보건원 직제를 질병관리청으로 변화시키면서 예산을 대폭 늘리더라도 1조5000억원을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는 OECD 국가 중 결핵 유병률 1위라는 오명을 마치 즐기는 듯한 인상이다. 1등을 아무리 좋아하는 나라라지만 전염질환에 대한 현재와 같은 관리체계는 반드시 막대한 대가를 치를 것이란 경고도 이같은 이유에서 나오고 있다. 비용효과적인 측면에서 공중보건 분야 강화를 위한다면 한시가 급한 상황이다.

또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는 의사, 약사 등 전문가 인력을 흡수하는 고용창출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전염질환은 인명은 물론 국가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교훈을 지난번 사스와 현재 확산되고 있는 조류독감을 통해 확인한 만큼 방역체계에 대한 재검토가 시급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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