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순원씨가 <한국일보> 칼럼을 통해 "독자 노릇도 힘들어 못해먹겠다"면서 <조선일보>에 직격탄을 날렸다.
지난 10월부터 '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 코너를 연재 중인 이씨는 23일자 「독자 노릇도 힘들어 못해먹겠다」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엊그제 어느 신문에 실린 '국민 노릇 정말 힘들었던 1년'이란 제목의 사설과 '임기 말 같았던 1년…국민 노릇도 힘들다'는 해설기사를 보았다"고 운을 뗐다.
이씨는 이어 "그 말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나온 말인지는 거두절미한 채 '대통령직 못하겠다'는 부분만 얼씨구나 따로 떼어낸 말을 되받아 공격하는 말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그는 "하기야 돌아보면 지난해 대통령 선거 날 아침 '정몽준 노무현 버렸다'는 보도를 비롯해, 그들로서는 결코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고 승복하고 싶지도 않은 주도권의 상실감 속에 이 정권에 대한 저주의 폭언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라며 "저 옛날 희빈 장씨의 저주가 어디 이만 했겠는가"로 비유했다.
그는 "자나깨나 대통령이 망하기를, 나라야 어찌 되든 대통령만은 꼭 망하길, 이런저런 사건 의혹 속에 부디부디 대통령 얼굴에도 똥 묻었기를 오직 한마음으로 바라는 사람들 눈에야 오직 그 신문만이 이땅의 정론지처럼 보이겠지만, 정말 오다가다 그 '찌라시'에 눈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이젠 국민 노릇도 독자 노릇도 힘들어 못해 먹겠다"고 한탄했다.
그가 칼럼에서 신문사를 직접 거명하지 않았지만, 지목된 기사는 조선일보가 노무현 대통령 당선 1주년을 맞아 지난 19일과 20일에 걸쳐 연달아 내보낸 「임기말 같았던 1년…"국민 노릇도 힘들다"」와 사설 「국민 노릇 정말 힘들었던 1년」을 가리킨다.
조선은 사설을 통해서는 "대통령은 툭하면 그만둘 것 같은 말만 해대고 사분오열된 정치권에서는 또 무슨 폭탄이 언제 터질지 몰라 조마조마해하며 보낸 1년이었다"고 평했고, 해당 기사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후 1년'은 다른 대통령의 '임기말 1년' 같았다"고 혹평했다.
한편, 이씨가 거론한 지난해 대통령 선거 날 아침 '정몽준 노무현 버렸다'는 보도는 조선일보가 12월 19일자에 쓴 같은 제목의 사설이다. 이 사설은 특정후보 지지에 대해 비이성적인 선동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면서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이 선정한 2002년 '가장 나쁜 사설'로 꼽혔다.
96년 동인문학상 수상...2002년 '안티조선' 천명
지난 96년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27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이순원씨는 이후 조선에 칼럼을 자주 쓰는 문인 중 한 사람으로 꼽혔다. 또 수년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던 그는 2002년 4월 '안티조선'을 선언해 세간의 관심을 모은 바 있다. 당시 이씨는 인터넷소설포털사이트 노블21에 '최근 내 신상의 변화 하나'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지난해 6월 '언론개혁 공방' '언론사 세무조사 공방' 속에서 망설이며 고민하던 끝에 지난 4월 조선일보를 끊었다"고 공개했다.
그는 또 "바깥에서 보기에 조선일보와 가장 가까운 작가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비춰지겠지만 최근 조선일보 보도내용과 태도에 불만을 품고 절독했다, 안티조선운동을 하게 된 만큼 앞으로 책을 내도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는 안티조선 선언과 관련, 지난 4월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기관지 <시민과 언론>(50호)에 '나는 왜 안티조선일보를 선언하게 되었나'라는 글을 싣고 직접 설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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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는 "조선일보 절독을 처음 고민한 것은 이태 전 언론사 세무조사가 있던 여름부터였다"며 "그 무렵 아침마다 배달되어온 신문을 볼 때마다 세무조사 반대 입장에 선 신문들이 마치 신문 같지 않고 '신문사의 사보' 같은 느낌이었다, 조선일보가 가장 심했던 거 같다"고 토로했다.
그는 그 와중에 벌어진 이문열 작가와 추미애 의원의 '곡학아세 공방'을 보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두 가지를 같은 항으로 엮어서 독자들에게 이것이 잘못되었다면 저것도 잘못된 거다, 하고 심정적으로 몰고 가는 묘한 분위기를 보았다"는 것이다.
또 그는 다음해 민주당 대통령 후보 국민경선 관련 보도에 대해 "'메이저신문 국유화 논쟁'이라는 이름으로 노무현 후보를 향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연일 퍼부어대던 십자포화는 신문사 사주의 이권, 권한을 위해 사운을 걸고 편파와 왜곡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대선 전날 밤 정몽준 후보가 공조를 파기했을 때 조선일보 사설 '정몽준, 노무현 버렸다'는 "더 기막혔다"고 표현했다. 그는 당시 심정을 "국민경선 과정에서 안티 선언을 한 것이 아니라면 아마 그날 밤 그 칼럼에 맞서 '아아, 노무현, 그리고 시지프스'라는 글을 인터넷에 띄울 때 안티 선언을 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러고도 스스로 정론지라고 말할 수 있느냐"며 "신문이라기보다는 그런 세치 혀로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자기들 입맛대로 요리할 수 있다는 생각 아니면 나올 수 없는 기사와 칼럼과 사설을 우리는 늘 그렇게 봐왔고 또 봐오고 있다"고 개탄했다.
지난 88년 단편소설 <낮달>로 등단한 그는 96년 <수색, 어머니의 가슴 속으로 흐르는 무늬>로 조선일보 주관 동인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동아일보와 부산일보에 각각 <여자의 사랑> <은빛도시> 등의 연재소설을 기고한 바 있다. 대표작으로는 <그 여름의 꽃게>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그대 정동진에 가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