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봉사의 기억
몇 년전이다. 갑자기 남도쪽이 애타게 가고 싶었다. 낮에 곡성 태안사를 들렀고 다시 쌍봉사로 향했다. 길을 잘못 들어 쌍봉사에 도착한 때는 애석하게도 깜깜한 밤이었다. 부도를 꼭 봐야 하는데 걱정이 앞섰다. 해가 지면 도굴의 우려 때문에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기 때문이다.
스님을 찾아 갔다.
"스님. 쌍봉사 부도를 보려고 수백리를 달려 왔습니다. 꼭 올라가게 해 주세요."
"보고 싶으면 봐야지요."
잔잔한 미소를 보이시며 선뜻 허락하신다. 야심한 밤에 아이를 데리고 산에 올랐다. "쏴쏴" 거리는 대숲 소리가 섬뜩했지만 부도를 만나려는 나의 의지를 꺽지는 못했다. 조금 올라가니 어슴푸레 부도가 손짓하고 있다. 천년을 그 자리에서 서 있는 부도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리고 조심스레 손을 댔다.
"아… 이 곳이 가릉빈가 부분이구나. 풍성한 사자상도 느껴진다. 사천왕상의 갑옷 좀 봐라. 배흘림 기둥에 서까래도 있네."
혼자 주절거리다 보니 어느덧 난 신라의 석공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손끝으로 느끼는 쌍봉사 철감선사부도. 내 일생에서 가장 잊지 못할 감동이었다.
그 감동을 한아름 안고 산을 내려 왔다. 한밤중에 산에 오른 내가 걱정이 되어서인지 그 때까지 스님께서 기다리고 계셨다.
"깜깜한데 보이는 것이 있습니까?"
"하나도 안 보여서 손끝으로 느끼고 왔습니다."
"마음으로 느꼈으면 두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합장을 하시고는 바람처럼 휭하니 사라졌다. 참 묘한 경험이었다. 그후 스님께서 내게 주신 마지막 말씀은 내가 우리 유물을 바라보는 화두가 됐다.
"마음으로 느꼈으면 두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그 후 나는 그 화두를 들고 우리 유물을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깊게 그리고 넓게 보는 심미안.' 이것이 내가 쌍봉사에서 배웠던 교훈이다. 이렇게 쌍봉사에 늘 빚을 져 왔는데 다시 찾을 기회가 왔다.
철감선사 부도
절 입구에 도착했을 때부터 야릇한 흥분에 빠졌다. 몇 년 동안 타국에 있었던 애인을 만나는 기분이랄까? 지난 번엔 손끝으로 느꼈다면 이번엔 눈으로 확인할 차례였다. 버스가 절 입구에 섰을 때 일행 중에서 가장 먼저 뛰어 올라갔다. 그만큼 급했다.
"쏴쏴…" 소리 때문에 나를 무섭게 만들었던 대숲이 나왔다. 이상하게도 낮에는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시원한 느낌만 전해올 뿐. 비탈길을 한달음에 올라갔다. 영원한 스승 철감선사부도(국보 57호) 앞에 다시 선 것이다.
"아…."
우리 나라 부도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손꼽히는 부도가 3개 있다. 지리산 연곡사 동부도와 여주 고달사지 부도, 그리고 이 철감선사부도다. 동부도가 섬세한 여성미를 보여 준다면 고달사지부도는 웅장한 남성미가 넘친다. 반면 철감선사부도는 두 가지의 장점을 모두 소화하고 있다.
나는 3대 부도를 모두 사랑하지만 그래도 조금 더 애착이 가는 부도가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철감선사부도라고 감히 말한다.
우리네 화강암은 정을 조금이라도 잘못 내리치면 그 돌은 영원히 상처를 입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오로지 한 번의 선택밖에 허용되지 않는다. 이 부도는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완벽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긴박감이 살아 있어 숭고함이 느껴진다.
부도에는 여러 생명체가 새겨져 있다. 자세히 보면 모두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것이야말로 통일신라 미술의 결정체가 아닐까? 각 부분의 조각도 뛰어나지만 전체적으로 바라봤을 때의 탄력적인 비례 역시 감탄을 자아 내게 한다.
하대석에서는 구름 문양에 꿈틀거리는 용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정면에 보면 용 머리가 마주보고 있으며 가운데 발로 여의주를 받고 있다. 그 위에는 사자가 새겨져 있는데 연잎 기둥이 넝쿨처럼 풍성하고 자연스럽다.
팔각기둥 사이에 사자 한 마리씩 새겨져 있는데 그 꿈틀거리는 생명력이 대단하다. 고개를 젖힌 모습, 웅크린 모습, 갈기를 세운 모습 등…. 매우 다양하다. 사자가 자신의 뒷발을 물고 있는 모습이다. 왜 이런 모습을 그렸을까?
중대석에는 게 문양이 새겨져 있다. 불교의 남방전례설을 뒷받침 하는 것은 아닐까? 상대석에는 연꽃이 활짝 피어 있다. 꽃이 중첩되어 있고 내부에도 꽃을 가득 심어 놓았다.
연꽃 위에는 팔각에 기둥을 세워 놓았고 그 사이에 안상을 새겨 놓았다. 그리고 그 안에 천상의 새인 가릉빈가가 새겨져 있다. 가릉빈가는 불경에 나오는 상상의 새이며 극락정토에 살고 있다고 한다. 사람의 머리와 팔을 가졌고, 새의 몸을 하고 있다.
몸돌에 새겨진 사천왕상과 비천상은 이 부도의 하이라이트다. 한 비천상은 비파를 연주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두손을 모으고 천상에서 방금 내려온 모습을 하고 있다. 꿈틀거리는 옷자락이 그것을 말해 준다.
또한 갑옷과 무기들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옷주름까지 세세히 그려 넣었다. 연기처럼 피어 오르는 문양과 살짝 기운 머리 때문에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들은 천상 세계를 철통같이 지키고 있다.
지붕돌 밑에도 서까래와 부연까지 표현되어 있다. 숨어 있는 안쪽에는 비천상이 하늘을 날고 있다. 일제 시대에도 도굴 때문에 파손되더니 지난 3월에도 상륜부를 밀어내는 또 한번의 시련을 겪었다. 대한민국의 최고의 미인에게 칼부림을 한 것을 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유유히 흘러 내리는 기와를 보라. 저것은 하나의 돌로 만든 것이다.수막새와 암막새까지 새겼으며 수막새에는 8엽의 연꽃 문양이 그려져 있다. 이런 예술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다.
철감선사부도비
워낙 부도가 뛰어나다 보니 그 옆에 있는 철감선사부도비(보물 170호)는 별로 눈에 차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 역시 놓칠 수 없는 명작이다. 여의주를 물고 있는 거북의 모습에 힘이 넘쳐 흐른다.
오른쪽 앞발을 세우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모습 때문에 더욱 역동적으로 느껴진다. 다른 발은 세 개의 발톱으로 땅을 누르고 있다. 아무리 흔들어도 끄떡하지 않는 우직함이 보이지 않는가?
비문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이수만이 거북등에 올려져 있다. 구름 문양의 천상사계에는 용의 문양이 그려져 있으며 여의주를 희롱하고 있다.
극락전
쌍봉사 극락전이다. 세월의 무게 탓인지 단청이 지워졌지만 나무결이 훤히 드러나는 모습이 시골 새색시마냥 정결함이 묻어난다. 다포식이지만 맛배 지붕을 하고 있으며 단아한 느낌이 든다.
대웅전 뒷편의 석축이 보인다. 원래의 대웅전터라고 하는데 크기가 제각각인 반듯한 돌을 모자이크 끼어 맞추듯 단정하게 맞추어 놓았다.
용 입에서 나오는 약수가 단아하게 조각된 석조에 떨어지고 있다. 화려한 용과 대충 깍아놓은 석조가 잘 어울린다.
쌍봉사 대웅전
쌍봉사 대웅전이다. 정면 1칸에 측면 1칸에 3층 목탑 모양을 한 특이한 건물이다. 아쉽게도 해체되어 다시 수리를 기다리고 있다. 원래 건물은 1984년 화재가 나서 모두 불타 버려 1986년 다시 복원했다고 한다. 그런데 다시 균열이 보여 지금은 공사중으로 환자의 가운을 입고 있다.
불이 났을 때 석가삼존불과 현판만은 간신히 꺼냈다고 한다. 그 화재 속에서 살아남은 불상은 대웅전 옆의 임시 건물에 모셔져 있다. 수많은 시련을 겪었음에도 오른쪽 가섭존자는 변함없이 맑은 미소를 보여준다.
몇 년 동안 마음속으로만 느꼈던 부도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그 감동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도굴이라는 시련을 겪고 화재에 잿더미가 된 아픔을 겪었기에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을지도 모른다.
절을 떠날 때도 마지막으로 버스에 올랐다. 아직도 내 마음은 떠나지 않고 있나 보다. 돌아가는 버스에서 그 감동을 몇 번이고 되새김질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쌍봉사. 꼭 다시 가고픈 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