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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아름다운, 2003년의 크리스마스

머리를 파르라니 깍은 승복의 스님과 하얀 깃의 검은 예복을 입은 신부님, 그리고 흰 동정에 검은 한복을 입은 원불교의 여 교무님께서 한 목소리가 되어 노래 부르고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부처님의 자비가 모든 이에게 퍼지기를 기원하며, 한 아빠의 단식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라크의 어린이도 내 아이와 같은 어린이라고 생각하니 도저히 가만있을 수 없었노라면서 '전쟁 반대, 파병 반대'를 부르짖으며 자신의 몸에 그 의지를 실천한 아빠의 이야기를 말입니다.

신부님께서는 대학가의 떠도는 노래를 우스개로 말씀하시면서 우리 사회의 검은 돈을 이야기하셨습니다.

원불교의 교무님은 손톱에 물들인 봉숭아물이 첫 눈이 내릴 때까지 지워지지 않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우리네 속설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들의 작은 행동 속에는 의미가 있으며 그 의미를 채우기 위한 삶을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신기하지 않습니까? 불교와 천주교와 원불교가 한 자리에 모여서 성탄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었습니다. 성당 안에는 드문드문 승복의 스님들이 자리하고 있고 컴퓨터를 검색하다 '성탄특집 무등산 풍경소리 17'이라는 생명과 환경을 생각하는 이들의 작은 음악회 안내글을 보고 찾은, 결코 불자도, 천주교인도, 원불교인도 아닌 저도 앉아 있습니다.

저는 좋은 말씀과 의미가 있는 곳이라면 종교의 울을 넘어 기꺼이 찾아갑니다. 초파일이면 부처의 자비를 생각하고 성탄절엔 낮은 곳에 임하신 예수를 닮고자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원불교의 경전을 뒤적이며 그 옳은 말씀에 무릎을 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가끔씩 편 가르기를 잘 합니다. 믿는 자와 안 믿는 자를 구분해 놓고 무서운 말들을 하기도 합니다. 자신들의 믿음에 가까우면 선이고 그렇지 않으면 악으로 규정하기도 합니다. 나 또한 생각이 맞고 안 맞는다는 분별심으로 사람들을 대하기도 합니다. 또 많은 이들이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더더욱 다름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2003년의 크리스마스를 맞고 있는 이 학운동 성당에서는 분별심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개량 한복에 머리를 묶고 턱수염을 기른 사회자는 스님과 신부님과 원불교 여교무님에게 짧게 말씀하라고 요구하기도 하고 무대에 내려가신 이 분들에게 순서를 빠뜨렸노라며 다시 오르게도 합니다.

많은 이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실 그 분들에게 정말 격의없이 대하는 사회자의 자유로운 모습이 나는 보기 좋습니다. 우러름만을 받기를 좋아하는 성직자들을 가끔씩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호통치기도 합니다. '감히 스님에게, 신부에게, 목사에게'라는 말을 하며….

성당의 합창단과 사찰의 합창단이 함께 가곡을 부르고 성가를 불렀습니다. 객석에서 잘 보이는 조금 높은 무대에 흰 색의 정결한 양장의 합창복을 입은 합창단, 조금 아래 한복을 입은 합창단을 보며 양장의 합창단은 성당의 합창단이고 한복의 합창단은 사찰의 합창단이겠지 나름대로 추측한 것이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그 반대라나요? 아하, 나는 그 절묘하고 세심한 배려에 감탄했습니다. 성당 측은 방문한 사찰 합창단을 두드러지게 하기 위해 무대의 위치까지 배려해 주었으며 의상까지도 타성에 젖은 속인들에게 '겉을 보고 판단하지 말라는' 교훈을 주었습니다.

클래식과 대중음악이 공존하였습니다.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듣기도 하고 70년대의 통기타 가수 윤연선님과 함께 아름다운 동요도 불렀습니다.

또 한 가지 내 맘에 들어온 것은 별다른 화려함이 없는 성당의 모습이었습니다. 30년이나 되었다는 성당의 소박함은 정말 낮은 곳에 임하리라는 신뢰를 가지게 합니다.

대형 TV에 CCTV 및 첨단 장비로 한껏 화려함을 뽐내고 있는 무대장식, 드넓은 주차장을 갗춘 성전을 보면서 홀로 씁쓸함을 느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간 학운동 성당의 모습을 보면서 참 좋은 교우들과 신부님을 찾은 것 같아 정말 마음이 뿌듯합니다.

근무지에서 꽤나 먼 곳에 있는 증심사 밑의 학운동 성당을 혼자 가기 위해서는 대단히 큰 결심이 필요했습니다. 결국 성당과 사찰이 한 마음이 된 음악회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하는 호기심을 풀기 위해서 교통체증도 참으면서 온 것입니다. 그러나 밀리는 차량들에 짜증을 내면서 온 내 마음 속에서 '정말 잘왔어'하는 말이 솟아나옵니다.

2003년의 광주 학운동 성당에서 부처님과 주님의 만남을 보았습니다. 정말 지향해야 할 바를 보여준 작은 음악회를 보았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2003년의 크리스마스를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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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시각장애 특수학교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동료 선생님의 소개로 간간이 오마이 뉴스를 애독하고 있습니다. 바쁜 일과 중 저의 미숙하고 소박한 글이나마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좋습니다. 제가 글을 올리면 전국의 네티즌들이 모두 본다는 것을 생각하면 무서운 생각도 듭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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