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헤아려보니 6월부터 12월까지 적어도 20일은 부안에서 살았습니다. 핵폐기장 투쟁이 시작되고 많을 때는 일주일에도 두 번씩 부안과 서울을 왕복하기도 했습니다. 6월 새만금 방조제 시위와 간척에 대한 지역여론 취재를 위해 두어차례 내려갔을 때만 해도 읍내 지리가 헷갈렸는데 곧 익숙해지더군요.
눈에 익지 않은 사람에게는 부안군의 풍경이 참 신기하지 않을까 싶네요. 표지판보다 노란 '핵폐기장 반대' 깃발이 먼저 "이 곳이 부안이구나" 하는 것을 알려줍니다. 거의 모든 집들이 대문에 이 깃발을 걸어놓고, 상점들도 유리창에 깃발을 붙여놓습니다. 유리문에 핵폐기장 반대 스티커를 붙여놓은 집들도 많은데, 지난 여름에 붙인 스티커는 이미 색이 바랬고, 그 옆으로 새 스티커나 나란히 붙은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곳을 찾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 "연대하러 왔는데 힘을 얻고 간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노란 깃발로 뒤덮힌 거리, 노란색 티셔츠의 물결에 감동해 '해방구'라고 격찬하기도 합니다.
부안의 풀뿌리 민주주의는 상당히 주목할 만한 현상입니다만, 부안군민들은 이 싸움이 빨리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당장은 경찰과의 별다른 충돌이 없더라도 백지화 전까지는 언제 핵폐기장이 들어설지 모른다는 불안과 긴장이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새 봄 새 학기에는 핵없이 싸움없이...
크리스마스를 맞은 부안시장은 조용하다 못해 썰렁할 정도입니다. 지나는 사람들이 많지 않고, 아예 문을 닫고 쉬는 가게도 있습니다. 전국적인 경기침체 추세와 비교하더라도 부안의 경제악화 수준은 심각합니다. 상점 주인들은 "핵폐기장 유치신청 이후 수입이 3분의 1로 줄었다"고 하소연합니다.
부안군민들은 하나같이 '올 한해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핵폐기장 투쟁을, 그 중에서도 경찰의 진압을 인상적인 기억으로 꼽았습니다. 대부분 그 이전까지 집회에 나간 적도 없고 경찰과 몸싸움을 벌인 적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려서 자주 집회에 참석하지 못했다는 송미숙(33)씨는 "주민들은 무기래봤자 별거 없고 경찰들은 무장을 한데다가 젊지 않냐, 다쳐서 두고두고 고생하는 것은 주민들 뿐"이라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송씨의 새해 소망은 '당연히' 빠른 시간 안에 핵폐기장 문제가 해결되는 것. "언제까지 해결됐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그는 "하루라도 빨리 해결돼야하지 않겠냐, '언제까지'를 묻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몇몇 주민들은 "겨울까지는 이렇게 지낼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봄까지는 해결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비록 새해는 핵없는 해로 희망차게 열지 못했지만, 봄은 핵없는 계절로 시작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시장에서 선물을 사던 이은호(30)씨는 "노 대통령이 군수에게 격려전화를 걸고 강경진압을 주문할 때 특히 속상하더라"고 지난 2003년을 회상하며 "봄은 새로 시작하고 싶다"고 소망을 전했습니다.
송하나(19. 백산고 3년)씨는 "그동안 집회에 학생들도 많이 나갔는데 특히 처음 대규모 충돌이 있었던 7월달에는 경찰들과 싸우는 게 무서웠다"며 "새학기가 시작되는 내년 3월 전에는 핵폐기장이 백지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아무래도 분위기가 어수선하니까 공부하기 쉽지 않더라, 부안의 고3 학생들만 피해를 본 셈"이라며 후배들을 걱정했습니다.
"정부가 부안을 쉽게 놓아주겠냐" 장기전 준비중
주민들의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부안의 핵폐기장 유치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노무현 대통령은 "가급적 유치를 희망하는 지역이 주민투표를 동시에 치르게 한다, 총선 이전에 투표해야한다는 주장은 고려하지 않겠다"며 주민투표 시기를 늦출 의사를 보였습니다.
산업자원부가 다른 지역에서도 핵폐기장 유치 신청을 받겠다고 발표한 이후 부안에서는 핵폐기장 찬성단체가 늘었습니다. 부안군청 측은 공무원을 동원해 이들 단체의 창립총회에 주민을 참석시키기도 하고 군수가 직접 향우회 모임에 참여해 지지를 호소하는 등 바쁘게 찬성여론 조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부안 주민들 사이에서도 투쟁이 오래 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핵폐기장백지화핵발전소추방 범부안대책위' 관계자는 "싸움이 오래 갈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장기 투쟁을 각오해야죠"라고 답했습니다.
부안터미널 인근에서 정육점을 하고있는 안모(51)씨도 "소망은 소망일 뿐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입니다. 안씨는 "한국수력원자력에서 주민들에게 일본 핵폐기장을 견학시키고 있다, 일단 갔다온 사람들은 핵폐기장에 긍정적이던데 찬성여론을 만들 때까지 한수원이 시간을 끌지 않겠냐"는 구체적인 분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시장통에서 아동복 매장을 하는 진경순(46)씨는 "장사가 너무 어렵다, 3월달부터는 봄옷이 좀 팔리는데 그 전까지는 백지화가 됐으면 한다"면서도 "안면도는 3년을 끌었다는데 부안이라고 몇 달만에 끝나겠냐"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해가 넘어가는 지금, 지난 11월 부안읍내를 전쟁터로 만들었던 '연내 주민투표'는 이미 불가능해진 상황입니다. 지난 여름부터 5개월을 넘긴 '해방구' 부안군민의 고통과 상처는 2003년을 넘어 2004년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