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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터 전 미국 대사가 미 국무부에 보낸 비밀전문.
포터 전 미국 대사가 미 국무부에 보낸 비밀전문. ⓒ 신미희

수신 : 국무성
발신 : 주한 대사관

주제 : 선거 후 파티; 또는 한국에서 줄을 잘못 선 신문 발행인이 신문을 지키는 방법에 대한 지름길

얼마 전 한국의 선거기간 동안 나는 특별히 동아일보 편집국 간부들의 번민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동아일보의 선거보도 때문에 학생들과 한국 중앙정보부가 동시에 신문을 괴롭혔다. 물론 학생들이 덜 위협적이었지만, 동아일보 발행인 가문이 한 대학에 인도주의적인 지원을 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일부 학생들의 위협은 신문이 공정보도를 위해 애쓰는 측면을 확인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는 사실 그와 같은 공정보도에 가장 근접한 언론이었고, 그래서 발행인 김상만씨가 선거 후 일어날지 모를 중앙정보부장과의 대립으로부터 신문을 지켜보려고 하는 것을 관대하게 바라볼 수 있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발행인이 편집장을 통해 나에게 접근했다. (정부와의) 대립 때문에 정부가 그에게 편집국 간부들을 교체하라는 압력을 넣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하는 나의 의구심에 대해 그는 수긍하는 것으로 보였고, 예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음을 지적했다. 사실 나에게 발행인의 메시지를 전해준 편집국장 자신이 이번 선거보다 덜 심각한 이유로 2년여 동안 런던으로 쫓겨간 적이 있었다.

그러나 김상만씨는 이같은 우울한 전망 때문에 나를 괴롭히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서울 외곽 발행인의 소유지에서 선거 후 작은 파티를 마련하는데 내가 참여해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가 몇몇 정치인들도 초대한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누가 오는지 궁금했다. 박 편집국장은 다음의 이름들을 풀어냈다.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정일권 전 국무총리, 김성곤 여당 재정위원장, 김대중 전 민주당 대선후보, 이철승 전 민주당 경선후보, 김영삼 전 민주당 경선후보, 그리고 동아일보의 선임 편집인 두 명.

나는 내 친구 편집국장에게 "좋아, 좋아"라고 말했다. 대단한 파티가 되겠는데, 자네 사장은 아주 발상이 대단한 사람이군. 동아일보를 보니 이들은 국회가 열리기도 전에 상대방의 선거 당시 행적들을 맹비난하고 있는데, 이 사람들이 초대에 응하리라는 것을 그가 어떻게 아는가?

박 국장은 어찌됐건 내가 이해할 것이라며 솔직히 말하겠다고 했다. 나를 제외한 다른 손님들에게는 "미 대사를 축하하기 위한 파티"라고 알리고 다른 손님들 명단도 보여줬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사람들을 이해한다면" 참석률은 100%에 이를 것이라고 단언했다.

내가 김대중씨는 자동차 사고 후 아직 병원에서 쉬고 있지 않느냐고 물으니 박 국장은 "그도 올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선거에서 졌기 때문에 우리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온다는 것이 더 흥미로웠다.

(* 편집자 주 : 포터 대사와 박권상 편집국장의 대화를 대화체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포터 대사 : 그래, 자네가 관심 있는 건 이후락 부장이지?
박권상 편집국장 : 그렇지.
포터 대사 : 이 부장이 전에도 김상만의 별장에 간 적이 있는가?
박 국장 : 아니다. 그러나 그는 올 것이고, 좋아할 것이다.
포터 대사: 아내도 동반하나?
박 국장 : 물론 아니다. 한국 남자들은 아내가 옆에 있으면 편히 쉬지 못한다.
포터 대사 : 허, 그렇다면 이 작은 모임은 '미국' 대사가 주선하는 거네?
박 국장 : 그렇다. 멋지지 않나?
포터 대사 : 이후락씨가 초대에 응한다면 자네는 그걸 자네가 선거운동 기간동안 쓴 사설로 인해 징벌을 받지 않는 징표로 받아들인다는 것이지?
박 국장 : 김 사장 생각이 바로 그거네.
포터 대사 : 중앙정보부 사람까지 끌어들이고, 자네… 사람 모으는 데는 귀신이네.


나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김상만 사장을 좋아하기 때문이지만, 또 하나는 이것이 한국인들의 심리를 파헤치는 모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이 안 오면 파티는 취소되느냐?"고 묻자 박 국장은 "전부 올 것이고, 재미있는 파티가 될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이틀 후에 내 사무실로 다시 찾아와 "모든 일이 아주 잘되고 있다"고 말했다.

포터 대사 : 병원에 있는 김대중은 물론이고, 이후락도 온다는 얘기인가?
박 국장 : 다른 참석자들 명단을 보더니 단 한사람도 안 오겠다고 하지 않았다. 김대중은 김영삼과 이철승이 미국대사와 이후락을 만나는 것을 모르는 채 병원에 머물 수 없다. 모든 것이 완벽하고, 발행인도 아주 좋아한다.
포터 대사 : 그럴 것 같네. 여자들은 초대하지 않는다고 말했지?
박 국장 : 부인들은 아니지만 다른 여자들이 올 거야.
포터 대사 : 오, 여자라? 산중에서 기생파티를 벌인다는 건가?
박 국장 : 기생이 아니야. 김 사장은 여자 탤런트들을 좋아해. 그러나 그들은 접대만 할거야.
포터 대사 : 몇 시에 시작하지?
박 국장 : 오후5시.


나는 생각했다. "이거 정말 재미있겠네. 김상만이 이후락을 잠시 제어해 뭔가를 얻어내기 위해 마련한 정교한 시나리오의 와중에 내가 있다. 좋아! 그들이 모두 나타나면 아주 재밌겠다."

6월 2일 늦은 오후 나와 (편집)국장은 김 사장의 별장이 있는 덕소로 출발했다. 우리는 약 50분간 산자락을 타고 서울 동쪽으로 이동해 뜻밖에 한 기차역에 멈춰섰다. 아주 평범한 역이었다. 놀랍게도 기차역(플랫폼)에 미니스커트를 입은 젊은 여자 8명이 있었다. 그들은 뭔가를 찾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이게 뭔가? 파티가 여기서 열리나? 이 여인들은 누구냐?"고 물었다. 나는 이들이 별장에서 접대할 여성들로, 김상만의 별장으로 데려갈 차편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차 문을 잠그게, 저들을 우리 차에 태우면 안돼"라며 가자고 말했다.

그때 동아일보의 이모 선임 편집인이 더 많은 여인들을 데리고 역에서 나왔다. 그는 다가와서 "아가씨들을 태운 미니버스가 고장났으니 좀 태워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안된다고 했다. 나는 박 국장에게 "동아일보가 이들(아가씨들)을 (역에) 놔두고 왔다고 비난받더라도 이런 여자들을 데리고 별장에 함께 갈 수 없다, 별장에 카메라 기자들도 있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박 국장도 "좋다"면서 "별장 가서 신선한 위스키를 좀 마시면 기분이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번 파티를 위해 김 사장이 아가씨를 몇 명이나 동원했는가"라고 물었고, 박 국장은 "모르겠다"면서 "상당히 많을 것 같다"고 답했다. 나는 "7명의 손님에게는 충분하겠지"라고 얘기했고 박 국장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내가 미니스커트 여성들을 태우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었다. 약 5분 후 우리가 산자락을 따라 잘 정돈된 잔디밭에 도착했다. 우리가 차에서 내리자 한 작은 남자가 바쁘게 카메라 셔터를 바쁘게 눌러대고 있었다. 내가 김 사장과 악수를 할 때, 박 국장은 김 사장에게 미 대사가 역에서 접대 여성들을 태우지 않은 것에 대해 설명했다. 김 사장과 정일권, 이후락, 김성곤, 김영삼 등은 크게 걱정하며 운전기사들에게 빨리 가서 아가씨들을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이후 세 시간은 다채롭고 흥미로웠다. 날씨도 좋았고, 작은 별장은 보석처럼 아름다운 한국식 구조였다. 접대도 융숭했다. 한국인들, 특히 선거 때 치열하게 싸웠던 박 대통령의 측근들과 김대중씨가 자제하며 정중하게 술을 마시는 것을 지켜보는 게 가장 유익했다.

이들은 서로 어울려 두세 명씩 사진을 찍었고, 정치 얘기도 많이 했다. 이후락의 경호원들이 동아일보의 경쟁지 중앙일보 기자들이 몰래 들어온 것을 찾아냈을 때 잠시 소란도 있었다. 지시에 따라 경호원들이 주먹과 발길질, 빈 포도주병으로 기자들을 언덕 아래로 쫓아냈다. 그리고 손님들은 파티를 즐겼다. 다음날 중앙일보는 쓰레기만 남겨진 별장 사진과 함께 이날 모임을 헤드라인 기사로 올렸다.

밤 9시경 김 사장과 이후락 부장은 서로 얼싸 안았다. 나는 "끝냅시다. 이 시골의 전원적 풍경을 뒤로 하고 나는 가야겠다"고 하자 참석자들이 당황했다. 산기슭의 어둠 속에 자기들만 남겨놓고 가는 것이냐고 농담을 하면서 가지 말라고 항의했다.

정일권 전 총리가 한국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 정 전 총리는 "좋아요. 우리, 서울로 갑시다. 그러나 당신이 집에 가면 우리가 원한다 해도 이 저녁을 함께 즐기는 것이 정치적으로는 어렵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민당 의원들도 여기에 동의했다.

정 전 총리는 "유일하게 논리적이고 건전한 해법은 함께 청운각(서울의 유명한 기생집)에 가는 것"이라고 말했고 파티 참석자 두어 명은 이러한 천재적인 발상에 동의해 정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넘어지는 사람들은 경호원이 부축했다.

내가 너무 늦었으니 안된다고 하지만, 그들은 함께 갈 것을 고집했다. 나는 결과적으로 정중하게 양보했고, 내가 이 파티에 책임이 있다는 생각으로 나의 나약함을 합리화했다. 그러자 이후락 부장은 "앞으로 진행될 파티는 '포터의 평화파티'로 부르자"는 선언을 해 감사를 표시했다.

1시간10분 후 나는 청운각이 아니라 이 부장의 집무실 근처에 있는, 그가 좋아하는 다른 기생집에 도착했다. 별장 아가씨들은 동행하지 않았다. 나중에 듣기로 아가씨들은 교통편이 없이 별장에 그냥 남겨졌다가 다음날 동아일보 신문배달 트럭이 문제를 해결했다.

나는 이 아슬아슬한 옷차림의 여성들이 불편을 느꼈을지 모른다며 항의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른 일들에 정신이 팔려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신문사 직원 한 사람이 "아침 일찍 트럭이 서울을 떠나 아가씨들은 다음날 오후까지 별장에 머물러 있었다"고 말했다. 이 부장이 "통금은 걱정 말라"고 약속했지만, 결국 나는 모임에서 떠났다.

이 신문이 정치적으로 알찬 내용으로 채워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중앙일보는 다음날 이 모임이 아주 중요하고 한국의 성숙한 정치의 증거라고 보도했다. 나도 이 보도에 100% 동의한다. 이 파티(모임)를 보도한 중앙일보 기사(1967년 6월3일자 번역)를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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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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