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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연기문학은 제9집 발간 기념식과 시 낭송회를 열었다. 조치원 읍내 군민회관에서 열린 이날은 시인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듯 첫눈이 엄청나게 쏟아졌다. 군수와 지역의 열렬한 문학 애독자들이 함께 한 이 자리에는 시인들이 자작시를 낭송을 해 눈 내리는 겨울밤을 더욱 포근하게 만들었다.

▲ 동인들의 표지 사진
ⓒ 장승현
굴다리 동네

경부선 철길 아래
굴다리 입구에
주막 한 집이 있다
하루에 한두 번 지나치다 보면
어설프게 닫혀있는
또 다른 세상
코끝을 스치는 흥건한 막걸리 냄새에
어쩌다 다투는 소리만 들릴 뿐
몇 목숨 찌든 삶을 감추고
흔들리는 목로에 앉아 있는지
지나는 사람들은 모른다

굴다리 동네에는
사는 게 별 수가 있겠냐는 사람들이
처마 밑에 모여 앉아 서로
술잔을 부딪치며
화투장이나 패다가 때로는
멱살을 잡고 함께 넘어졌다가
툭툭 털고 일어나 비틀거리면 그만인 삶들이
언제부터 머물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욕심 없는 얼굴로
마음 없는 가슴으로 그저
살아있음에 행복하다는 마음이기에
굴다리 저편으로 뛰어가진 않는다

-김일호 시인-


연기문학은 군 단위 지방에 있는 조그만한 문학회지만 역사와 전통으로 보면 다른 문학회가 따라오지 못할 만큼 깊이가 있는 문학회이다. 연기문학이라는 제목으로 책이 나온 건 1995년부터이지만 그 구성원들이 지방에서 문예활동을 시작한 건 반세기가 훨씬 넘은 때부터였다.

내부 사정으로 회원들 대부분이 갈라져 나와 연기문학이라는 새 둥지를 틀기는 했지만 과거 '백수문학'의 전통은 현대문학과 역사를 거의 같이 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문학이야 중앙에서 월간지로 이어왔지만 열악한 지방지로서 꾸준히 문학회를 해온 건 오로지 백수문학 뿐이었다.

초기 창립 동인이던 강금종 선생님, 김재붕 선생님, 배기덕 선생님 등은 벌써 돌아가신 지 오래지만, 연기문학의 역사를 잇고 있는 김제영 여사는 아직도 정정하게 활동 중이다.

이번 연기문학 9집을 살펴보면, 소설에서 김제영 여사가 연재소설 "간지럽고 뜨거운 발바닥"을 7회째 연재하고 계시고, 얼마전에 중앙지에 발표하기 시작한 최광식 회장님의 "나는 어떻게 소생하는가" , 안휘 "황쏘가리의 꿈" 조민식 "솔방울 캐피탈"이 개재되어 있다.

시에서는 이번 충남시문학회에서 상을 받는 강신용씨의 "공주를 지나며"와 김길중, 김일호, 김정한, 신기숙, 임동천, 장시종, 조병철, 진영대, 채태종, 황규용 등이 시를 발표하고 있다. 산문엔 장세문의 "날라리 농사꾼의 귀농일기"와 김동훈씨의 "밤나무골 아이들"이 실려 있다.

연기문학의 자랑이라면 시골에 있는 작은 문학동인이지만 걸출한 인물들이 많다는 것이다. 중앙에서 희곡이라면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윤조병 작가, 소설가로서 유명하고 미술 평론으로도 유명하신 김제영 여사, 또 시 하면 대전 충남에서 문학상이란 문학상을 다 휩쓸은 강신용 시인과 실천문학 출신 진영대 시인과 시문학 출신의 임동천 시인, 장시종 시인 등은 외부에서도 알아주는 시인들이다.

소설에서도 최광식, 안휘, 강영숙, 장세문, 조병식 등도 다른 문예지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는 평들을 듣곤 한다. 아쉬운 건 아직 소설에서는 개인 창작집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만간 공동 창작집이든 개인 창작집이든 소설에서도 창작집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연기문학이 새로운 재목을 달고 시작한지 10년이 가까워진다. 예전과 다른 건 요즘의 연기문학은 창작이 완성해졌다는 것이다. 저마다 본업이 따로 있지만 직업작가 만큼이나 창작의욕이 대단하다.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앞으로도 연기문학은 연기지역 군민들한테 순수한 문학의 향취를 오래도록 남길 것이다.

건널목에서

산다는 것은 의미가 아니다
잠시 비를 피하기 위하여 코트 깃을 추켜 세우고
빨간 신호등이 점멸하기를 기다리는 순간
길 건너편에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엇갈리며 마주치며 역행하는 일이다.
목례를 보내는 순간의 짧은 만남과
등뒤로 떠나는 사람들과의 이별,
생사의 건널목을 조심스러이 건네는 일이다.

-장시종 시인-


시낭송회가 있던 날 열정적인 주사파(술과 생각을 많이 하는)들은 밤을 새워 술을 마셨다. 문학인들이 항상 그렇듯 술판은 밤을 새워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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