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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최명희가 서지문 교수에게 생전에 준 파일에서 혼불에 대한 긍지와 자존심이 가득하다. 사진 속의 시스템 수첩은 내가 받을 것이 아니라 살아 있다면 작가가 받았어야할 것이다.
작가 최명희가 서지문 교수에게 생전에 준 파일에서 혼불에 대한 긍지와 자존심이 가득하다. 사진 속의 시스템 수첩은 내가 받을 것이 아니라 살아 있다면 작가가 받았어야할 것이다. ⓒ 황종원
" 생전에 최명희씨가 내게 준 것입니다. 황선생님이 복사를 해서 한부를 가지시고 다시 돌려주세요. 하나도 잃으시지 말고요."

서 교수는 파일 말고, 시스템 수첩 한 권을 내게 건네준다.

" 나는 이런 거창한 수첩은 못써요. 학교에서 주는 수첩으로 충분해서요. 혹시 쓸모가 계실 듯하여서요."

사실 나는 그런 수첩을 줄 곳 써왔다. 직장 생활 내내 시스템 수첩은 나의 시간별 일과와 생각들로 조각조각 이어졌었다. 나는 최명희씨를 기리는 비디오에서 최씨의 낡은 공책을 보면서 시스템 수첩에 있었더라면 더 차분하고 꼼꼼한 자료 정리가 되었을 것이라고 안타깝기도 했었다.

시스템 수첩에서는 자료를 빼고 넣기가 아주 쉬워서 자료 정리에 아주 쉽상이 아닌가. 작가 살아있다면 이 수첩은 작가에게 전했을 수첩이리라.

나는 서 교수가 내게 주는 그 마음은 내가 작가 최명희를 찾아다니는 격려이기에 소중하다. 서 교수는 작가와 혈육도 아니며 작가 최명희와의 친밀한 관계는 갑자기 굴러온 돌인 나하고 견줄 바가 아니다.

2 년 전 혼불 독후감 수상작을 한길사와 혼불을 사랑하는 모임이 발표하는 자리에 서 교수가 있었다. 서 교수는 모임에서 조용한 미소만 흘리며 조용하다. 그 곁으로 내가 다가 갔었다. 작가 최명희에 대한 기록을 모아놓은 유인물이 하나 있다고 했다. 서 교수는 반기며 그 책을 보았으면 하기에 나는 바로 서 교수에게 보내주었다.

책 속에는 작가 최명희의 중학 시절부터 작가 생활의 초년까지 쓴 글을 모아놓은 글에다가 내 감상이 비릿하게 끼여 있어서 당당한 최명희씨의 글에 비하여 내 글을 엄청 부끄럽기도 한 글이었다.

서 교수는 그 책을 만든 내 수고가 대단하다고 했다. 거기다가 어느 신문 칼럼에다가 내 이름을 넣어서 칭찬하는 글까지 써주었다.

이번 12월 작가 최명희의 5주기 추도회장에서 작가를 기리는 말 가운데 내 이름을 말하면서 내 노고에 감사한다는 말을 했다. 좌중의 몇 몇을 빼면 다른 이들에게 나는 유명인사가 아니며 생전의 작가와 교감이 있었던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

그런 나를 존중해주는 서 교수에게 나는 마치 초등학생 1학년이 담임선생님에게 칭찬 받는 듯한 기쁨을 느꼈다. 더구나 이런 부상까지 받게 되다니. 삶의 보람이며 윤기이다.

2003년 12월 10일 한길사에서 있었던 작가 최명희의 5주기 추도 모임에서 서교수는 작가를 추모하며, 혼불의 영어 번역을 다짐한다.
2003년 12월 10일 한길사에서 있었던 작가 최명희의 5주기 추도 모임에서 서교수는 작가를 추모하며, 혼불의 영어 번역을 다짐한다. ⓒ 황종원
나는 지난 번 내 책에 대한 답례로 서 교수가 보내주었던 " 영어로 배우는 논어 " 에 이제야 서명을 받았다. 그리고는 나는 서 교수에게 실례가 될지 모르는 말을 시작했으니

" 교수님께서 혼불을 번역하시겠다는 말씀을 듣고, 저는 아주 기뻤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혼불에 가득한 우리말을 도저히 영어로 옮길 수 없다는 말을 하지만 그것은 어딘가 고정 관념에 묶였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보세요. 이 만화를 . 이 만화는 마르셀 푸루스트의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을 만화화 한 것입니다. 책 줄이나 읽는다는 사람들도 혀를 차고 나가는 난해한 소설을 이 만화가 스테판외는 만화로 만들었습니다. 책을 수십 번씩 읽고 고증을 하고 1년데 한 권씩 만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혼불을 영어 번역한다는 것도 마치 만화로 만드는 것처럼 무모할지 모르지만 영어로 바뀔 때는 정서의 번역이 아닐까요. 우리말에 너무 얽매이지 마시고 자유럽게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보는데요."

" 어렵다는 것을 알아요. 차근차근히 해야지요. 내가 10년 뒤에는 은퇴를 하고나서 전념을 하여야지요."

" 지금부터 시작을 하세요. 나이가 들면 모든 것이 힘들어지니까요. "

서 교수는 웃는다. 한 번 결심을 하면 자기 길을 가는 학자에게 나는 나이 값도 못하게 감상적이다.

서 교수는 작가 최명희의 글을 찾는 내게 예전에 자신이 읽었던 글을 말한다.

" 하이틴이라는 잡지의 글이 너무 좋았어요. 그 글을 명희씨가 전화로 읽어주는데 너무 좋아서 녹음을 부탁했는데 그때 명희씨에게 녹음기가 없어서 녹음을 못하고 그냥 떠나고 말았지요. 그 글을 챙겼어야 하는데 못 챙겼어요. 그 잡지는 중앙일보사에서 발행하였는데 아마도 1993년 인가 1994년 4월에서 6월사이로 기억해요. 명희씨는 인터뷰기사도 썼었어요. 여성동아에서 유명인사 부인과 인터뷰를 하고는 정리를 해서 글을 올렸었지요. 그때가 아마도 1980년대 초 일거예요."

작가가 스크랩을 만들어 건네준 파일 안에는 물론 그 글이 없다. 속에는 혼불에 대한 작가가 보여주는 혼신의 사랑과 지존심이 가득하다.친구 사이에도 친구가 세상을 떠나면 잊고마는것이 세상인심이다.

서 교수는 다만 한 가지 자신이 아끼던 친구, 작가 최명희의 묵은 글을 찾아내는 내게 고맙다한다. 우리들 흔히 그렇듯 내 친구를 다른 남이 좋아하던 무엇을 찾던 그의 일이지 마치 자신의 일보다 고마워해본 일이 있던가.

" 서 교수님께서는 영어 번역을 하시고……. 저는 에스페란토로 번역을 해 볼까 생각을 했지요."
" 에스페란토는 어휘상 느낌이 다르지요."

대학 1학년 때 시작을 하고도 나는 아직 그때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에스페란티스토이지만, 내가 못하면 다른 이가 번역을 했으면 하는 욕심도 가져보았었다.

다른 누가 안하면 내가 못할 것이 무엇인가. 남들이 영어로 못한다면 나라도 에스페란토로 번역을 나서 볼 만하지 않은가. 내가 꿈꾸는 일보다 서 교수의 희망이 더 현실적이다. 생명을 걸고 할 일. 그러니 나 자신은 쉽사리 그리 하겠다고 남들 앞에서 말 못한다.

내 자신은 작가 최명희의 글을 찾는 것은 좋아서 한 일이었지만 생명을 바쳐서 한 일은 아니었다. 그에 비해 서 교수가 이제 시작하려는 혼불의 영어번역은 신명을 바쳐서 할 일이다. 그것은 작가 최명희처럼 목숨을 바쳐야 할 일이다. 누가 말리랴.

한 번 작정한 목표를 향해 끝장을 볼 장승 같은 이 서 교수를 앞에 두고 내 자신은 길손처럼 무심하게 느껴졌다.

덧붙이는 글 | 도서관에 묻힌 글을 찾으러 나는 국립도서관에 갔다. 서지문 교수가 일러준 잡지와 연도를 가지고 자료 검색에 들어간다. 하이틴이라는 잡지는 1988년까지 낙본이 더 많다. 서 교수가 일러준 1990년 이후는 아예 없다. 

작가 최명희가 사회 유명인사 부인과 인터뷰를 했다는 여성동아는 마이크로필름으로 보관되어있었다. 필름을 롤에서 빼어 검색기에 감는 일도 내게는 큰일이었고, 자료자체가 잘 보이지 않아서 힘들다. 지루하고 긴 노동이 되는 것을 참기로 했지만 기계를 잘못 다루어 작동 불능으로 만들고 나니 자료 검색할 기운이 빠졌다. 생각하니 도서관에서 찾는 것보다는 그 잡지를 발행했던 잡지사를 방문하여 잡지사의 보존 자료를 검색하면 될 것이 아닌가. 아무래도 잡지사를 방문하여 자료를 찾는 일이 더 간단하고 분명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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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본부 iso 심사원으로 오마이뉴스 창간 시 부터 글을 써왔다. 모아진 글로 "어머니,제가 당신을 죽였습니다."라는 수필집을 냈고, 혼불 최명희 찾기로 시간 여행을 떠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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