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페미니스트 공동체 '꿈꾸는 지렁이들의 모임(꿈지모)'이 함께 펴낸 <꿈꾸는 지렁이들>은 부제가 말해주듯, 젊은 에코페미니스트들이 바라본 세상의 이런저런 모습들을 담고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여성들의 생리대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발열, 피부짓무름, 가려움 등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생리대 회사들이 ‘얼마나 빠르고 감쪽같이, 혹은 얼마나 깨끗하게’를 기준으로 제품 경쟁을 하는 동안 이같은 여성들의 고통은 간과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수많은 화학약품이 생리대에 사용되고, 이를 수많은 여성들이 주기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리대의 화학약품이 여성의 몸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꿈꾸는 지렁이들>이 제기하는 것은 단순히 생리대의 안전성 여부가 아니다(물론 그에 관한 언급도 있다). 그들이 던지는 물음은 ‘왜 생리대의 안전성이 간과되는가?’하는 것이다.
이들은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한 <꿈꾸는 지렁이들>의 접근도 새만금 개발의 경제적 이익 혹은 생태적 가치를 중심에 두지 않는다.
대신 ‘현지에 사는 주민들과 갯벌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주민들은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물음으로 새만금 문제를 바라본다. 남편을 잃고 다섯 식구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50대 여성이 준 답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이 생합(백합조개) 나오는 것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어요. 생명이잖아요. 그게 나오면 ‘아유, 너 밖에는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구나’ 내가 그래요. … 어느날, 하루에 여기를 딱 막아서 이 모든 생명을 다 죽일 일을 생각하면 진짜 눈물 나와요. 그때는 마음이 아픈 정도가 아니라 내가 아파버릴 것 같아요.”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귀농에 대해서도 이들은 고유의 시각으로 문제점을 지적한다. 여성이 동의한 귀농이라고 해도 농지구입, 농사일정, 영농자금 결정 등에서 여성의 의견은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의 노동 비중이 적은 것도 아니다.
특히, 하우스 작물이 늘어나면서 여성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농사일은 점점 증가하지만, 가사노동은 여전히 여성의 몫이다. 그러나 대체로 보수적인 농촌에서 이에 대한 문제제기는 그리 쉽지 않다. 다시 여성의 의견이 배제되고 만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 <꿈꾸는 지렁이들>이 낭만적이고 생태적이라고 하는 귀농에서 발견한 여성들의 고통은 대략 이런 것들이었다.
이와 같은 <꿈꾸는 지렁이들>의 접근법은 생명, 여성, 평화와 같은 단어들을 포함한다. 그러나 몇 개의 단어만으로 그들의 생각을 축약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리고 그것을 에코페미니즘이라고 부르든, 생태여성주의 혹은 생명여성주의라고 부르든 그 본질은 변함이 없다. 그것은 어떤 이에게는 불편한 도발이고, 또 어떤 이에게는 매력적인 전복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꿈꾸는 지렁이들’이 열심히 꿈틀거리며 일구어낸 그 자리에는 생명과 평화가 깃들 가능성이 좀 더 커진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그 가능성의 조그만 예가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