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무를 주제로 어린이들이 그린 다양한 그림
나무를 주제로 어린이들이 그린 다양한 그림 ⓒ 홍지수
5일 늦은 오후 부산 시민회관 제1전시실을 찾은 기자는 잠시 주춤거렸다. 다소 특이한 이름의 미술 전시회가 눈에 띄여 들어간 전시관은 온통 어린 아이들로 시끌시끌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시실에 걸린 그림들도 온통 아이들이 그린 그림들 뿐이었다. 얼핏 보아 100여 점은 넘을 듯한 그림들과 소란스런 아이들. 전시회를 잘못 찾아온 것이 아닌지 당혹스러울 따름이었다.

기자는 입구에서 열심히 무엇인가 준비 중인 안혜진 원장을 만나고서야 이 특이한 미술 전시회를 제대로 관람할 수 있었다.

우선 기자는 '키치마을'이 무슨 뜻인지가 궁금해졌다.

" '키치'란 스케치에서 유래한 말로 가벼운 그림, 진흙탕 속에서 놀면서 그리는 자유로운 그림을 뜻합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이야기를 그려나가기를 바라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죠."

그러나 단지 이름에서만 표현의 자유를 추구하는 것은 아닌듯 싶었다. 안 원장은 키치마을은 실제 그림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의 다양성을 최대한 존중해 준다고 말한다. 전시관 입구에 그려놓은 여러 모양의 나무 그림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었다.

기자에게 설명하는 안혜진 원장
기자에게 설명하는 안혜진 원장 ⓒ 홍지수
"나무를 그리라고 할 때 흔히 학교나 다른 학원에서처럼 정형화된 틀을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어떤 나무를 그리든지 그저 칭찬해주고 더 자신감을 갖게 해주죠."

안혜진 원장의 안내를 받아 전시관에 걸린 그림들을 훑어보며 기자는 아이들의 그림이 참 '아이답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래 아이들이 다른 학원에서 배우는 기술적인 빼어남은 없어보였지만 작은 스케치북 한장 한장에 풀어놓은 이야기들은 순수한 상상의 세계에 동참할 기회를 마련해주고 있었다.

"학원마다 스타일이 있습니다. 그림을 보면 '아, 이 그림은 어느 학원에서 가르친 것이구나'하고 알 수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획일화된 스타일이란 것이 없습니다."

아이들의 그림 앞에서 안 원장은 마치 거장의 그림에 숨긴 의미를 읽어내기 바쁜 듯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이들의 그림을 굳이 전시회장을 빌려서까지 전시를 해야 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얼마 전 차를 타고 가다가 도로변에서 그림 전시회를 열고 있는 어린이 집을 본 적이 있던 터라 그에 관해 질문을 던졌다.

"자신의 그림이 소중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었어요. 길거리 전시회를 하면 비나 바람을 맞을 경우 그림이 찢기기도 하죠. 그러다보니 아이들이 자신의 그림을 아무렇게나 여기게 되더라구요. 비록 작은 공간이기는 하지만 아이들에게 자신들의 그림이 실제 미술관에 걸려있다는 자신감을 주기 위해 공간적인 구성에도 의미를 두었습니다."

자신의 그림 앞에서 멋지게 포즈를 취한 어린이. 이 어린이는 무슨 상상을 하고 있을지.
자신의 그림 앞에서 멋지게 포즈를 취한 어린이. 이 어린이는 무슨 상상을 하고 있을지. ⓒ 홍지수
획일화된 입시 위주의 교육 풍토에서 이런 실험적인 시도들이 부모들에게 어떻게 비칠지에 대해서 물어보자 안 원장은 " 한가지를 얻으면 다른 한 가지를 잃어버리기 마련이지만 학부모님들은 아이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가장 좋아하신다"며 자신 있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들에게 우리는 종이와 필기구를 쥐어주며 아이들이 무엇인가 그려내기를 요구한다. 그리고 그 그림은 아이들이 원하는 자유로운 상상의 표현이 아닌 우리가 읽고 해석할 수 있는 결과물이기를 원한다.

추상화의 거장 칸딘스키는 "한 작품 속에서 하나의 점이 때로는 인간의 얼굴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했다. 우리들은 이 무수한 의미와 상상력을 가진 아이들의 순수한 점 하나를 구도와 색채, 기술로만 평가하려는 외눈을 가진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아름답고 화려한 그림도 없고 조용한 클래식 음악이 귀를 간지럽히는 정숙한 분위기도 아니었지만 스물 네 명의 어린 화가들이 펼치는 "키치마을 전시회"에서 기자는 오랜 전 잃어버린 순수함을 잠시나마 맛볼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 디비지뉴스 송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