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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 스님(성불사 주지, 속명 김판권)은 55년 전북 순창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집안이 부유했던 그는 8살 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고단한 삶으로의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친척집을 전전하며 어렵게 고등학교를 마친 대우 스님은, 어린 시절의 어려움을 돌아보며 '남을 위한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에 열여덟의 어린 나이로 전남 순천 선암사에서 출가를 하게 된다.
현재 스님은 청송 제2감호소를 비롯해 부산과 광주 등의 교도소에 불법을 전하러 다니신다. 특별한 계기가 있느냐는 질문에 스님이 들려준 이야기는 퍽 흥미롭다.
"그 때 머무르던 사찰이 광주 교도소 바로 앞에 있었는데 어느 겨울 아침이었지요. 마침 그날 눈이 많이 왔어요. 아침에 창 밖을 내다보니 어떤 사내가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교도소 문 앞에 벌벌 떨며 서 있더군요.
사연이 궁금해서 데려다가 물었더니 그 날 출감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 사람이 여름에 죄를 지어 겨울에 풀려났는데 그렇다보니 옷이 한여름일 수밖에. 그 사람을 데려다가 밥 한 끼 먹이고 옷 한 벌 입힌 것이 벌써 20년 전 일이네요."
20년을 한결 같이 재소자와 출소자들을 위한 교화에 힘써온 대우 스님. 스님은 교도소를 갈 때마다 꼭 떡을 해 간다고 하신다. 떡은 비용이 만만치 않아 여타의 종교단체나 사회봉사단체들은 통상 빵을 들고 간다.
"떡은 아무 때나 먹는 음식이 아니죠. 명절을 대표하는 음식입니다. 떡을 먹다보면 명절이 생각나고 자연스럽게 가족들이 떠오르게 됩니다. 그럼 다시 '다음 명절에는 가족들과 같이 이 떡을 먹을 수 있도록 죄를 짓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항상 떡을 해갑니다. 그래서인지 교도소에 가면 다들 저를 떡스님이라고 해요."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스님은 떡에 담긴 또다른 뜻을 가르쳐 주신다.
스님은 현재 8명의 출소자들과 함께 기거한다. 아래층에 작은 작업실을 만들어두고 출소자들이 재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 밖에도 출소자들의 가정을 꾸려주는 등 남다른 열정을 보이고 계신다.
"어느 미혼모와 출소자 한 명을 소개시켜 가정을 꾸려준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명절이면 전화가 와서 죄 안 짓고 잘살고 있다고, 아이들도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는 안부 인사를 전해 옵니다. 그 순간이 제일 행복합니다"라고 말하는 스님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우리는 범죄자들을 다른 시각에서 보아야 합니다. 자세히 따지고 보면 그들의 죄는 다 우리가 만들어낸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그들을 돌보아 주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지금도 한 달에 서너 차례 교정시설에 떡을 들고 찾아가는 대우 스님. 추운 겨울이 돌아오면 한동안 쉴 법도 한데 오히려 재정적인 어려움 때문에 더 자주 못 가는 것을 못내 아쉬워하는 눈치다.
짧고도 아쉬움이 남는 인터뷰를 마치며 기자는 대우 스님을 찬찬히 살펴 보았다. 작지만 다부진 몸에, 세상을 다 끌어안고도 남을 법한 넉넉한 가슴을 가진 대우 스님.
드러나지 않는 작은 곳에서 오늘도 우리 사회를 맑게 하는 연꽃처럼 피어있는 대우스님을 보며 이 겨울이 그다지 춥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올 겨울은 우리 이웃을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을 갖고자 하는 의미에서 여러분들과 이 기사를 나누고자 합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대우 스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 부처님의 자비를 널리 나누어 주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경제적인 후원을 해주실 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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