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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원 주최 제17회 <국민강좌> '동북공정의 배경과 내용 및 대응방안'
국학원 주최 제17회 <국민강좌> '동북공정의 배경과 내용 및 대응방안' ⓒ 김태형
고구려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하려는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 프로젝트가 한중간의 최대 외교 현안으로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우리역사 바로알기 시민연대', '국학원' 등 민족 진영 시민·학술단체들이 고구려사 논란과 관련 적극적인 행보에 나섰다.

지난 23일부터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저지와 민족의 주체성 확립을 위한 100만 국민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는 '우리역사 바로알기 시민연대(이하 시민연대)'는 31일까지 완료된 1차 서명운동에만 40여만 명이 참여했고, 5일부터 재개된 2차 서명에는 11일까지 무난히 100만 명을 넘어설 전망이라고 6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밝혔다.

시민연대 측은 이렇게 모아진 서명지를 13일 중국대사관측에 직접 전달하고 항의집회도 함께 할 예정이다.

‘국학 부흥과 민족정신의 교육’을 표방하는 학술단체인 '국학원'도 지난 6일 세종문화회관 컨퍼런스홀에서 최광식 고려대 박물관장을 초청해 고구려사의 연구동향 및 문제점을 다룬 ‘제17회 국민강좌’를 개최했다.

이날 강연에서 최 관장은 90년대 이후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이라는 연구센터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추진된 중국의 연구현황을 소개하며, 특히 가장 큰 논란이 되고 있는 고구려 관련 연구 주제들의 주요 쟁점들을 살펴봤다.

최 관장은 “과거에도 고구려를 고대 중국의 일개 지방정권으로 여기는 부정확하고 착오적인 견해가 일부 존재했으나, 국가적 프로젝트인 ‘동북공정’으로 인해 이제는 중국측의 단정적이고 공식적인 견해로 확정돼 버렸다”며, “중국측이 몇 가지 근거를 제시하고 있으나,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대부분 수긍하기 어려운 주장들이다”고 강조했다.(상자기사 참조)

국학원은 이와 같은 고구려사 관련 대중강좌를 3월까지 지속적으로 개최할 예정이며, 시민연대와 공동으로 서명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지난 12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단군문제 통합공과’로 법적 소송까지 벌였던 홍익문화운동연합(회장 장영주, 이하 홍문연)도 고구려사 문제와 관련 차후 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펼칠 계획으로 알려졌다.

홍문연 관계자는 “현재 홍문연 차원에서 고구려사 문제에 참여하고 있지는 않지만 민족의 역사와 뿌리에 관심이 많은 회원들이 개인 자격으로 활발히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앞으로 계기가 마련된다면 보다 적극적으로 고구려사 문제에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측 주장 역사적 근거 부족, 논리적 모순 많아"
최광식 관장이 정리한 고구려사 귀속 논란의 주요 쟁점

고구려사 귀속 논란과 관련된 주요 쟁점들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최광식 고려대 박물관장은 중국측의 주장과 이에 대한 반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1. 고구려는 중국영역내의 민족이 건립한 지방정권이며 활동중심도 한사군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고구려의 주민은 예맥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사군 이전에도 이미 고조선이 있었기 때문에 한사군은 이 지역을 일시적으로 지배했다는 사실은 중국인들도 인정하는 바이다.

2. 고구려가 줄곧 중국역대왕조와 군신관계를 유지했고 '중국' 밖으로 벗어나기 위해 그 관계를 스스로 끊지는 않았다?
-조공과 책봉은 당시 동아시아 전체에 적용된 외교형식이다. 중국이 백제·신라·왜·베트남과 맺었던 조공책봉 관계와 하등의 차이가 없다.

3. 고구려 멸망 후 주체집단이 한족에 융합되었다?
-당나라에 강제로 끌려간 사람도 있지만 신라로 넘어간 사람도 있으며, 대부분 고구려 지역에 남아 발해의 주민으로 살아갔다.

4. 고구려의 고씨와 고려의 왕씨는 혈연적으로 다르며 시간적으로도 250년이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역사적 계승성이 없다?
-왕조의 계승은 혈연의 계승이 아니라 역사적 계승이다. 중국의 주장대로라면 한족과 북방민족이 번갈아가며 중원을 차지했고 한족의 왕조도 모두 성씨가 다른 중국은 역사적 계승성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이 외에도 최 관장은 "삼국지의 동이전, 제천의례, 광개토왕릉비 등의 사료를 보면 고구려가 중국과 다른 독자적인 천하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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