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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우주공간을 통제해 지구를 장악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 우주사령부 비전 2020)
"앞으로 미국은 지구와 우주공간에서 미국의 국가이익을 위해 우주공간 안팎에서 군사작전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럼스펠드 보고서)
'영원한 제국'을 꿈꾸고 있는 부시 행정부에게 있어서, 지구 생명의 기원이자 미지의 영역 '우주'는 기회의 공간이다. 우주를 선점하고 통제할 경우 무한한 우주의 자원을 독식할 수 있고, 미국 주도의 세계화에 불만을 품고 있는 세력을 우주에서 통제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구상은 자신의 강력한 정치적, 경제적 기반은 군수산업체의 잇속을 챙겨주고 미국인들의 '스타워즈 환상'에 호소함으로써 재선의 강력한 기반이 될 것이다.
부시의 우주 구상을 주도하고 있는 인물은 군산복합체 및 에너지 자본과 강력한 유착관계를 맺어온 딕 체니 부통령과 도날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이다. 미국의 이라크 정책으로 톡톡한 재미를 보고 있는 헬리버튼과의 유착관계로 파문을 일으킨 바 있는 체니는 부통령으로 입성하기 전에 TRW의 이사를 지냈다. 그리고 그의 부인 린 체니 역시 2001년 1월까지 록히드 마틴의 이사로 활약했다. TRW와 록히드 마틴은 미사일방어체제(MD)를 비롯해 미국의 우주 산업을 이끌고 있는 핵심적인 군수산업체들이다.
럼스펠드 역시 군수산업체의 이익을 대변해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국방장관 취임 전에 군수산업체로부터 기금을 받는 '미국에게 힘을(Empower America)'이라는 단체의 이사와 안보정책센터의 핵심 간부로 활동했다. 이 두 단체는 MD와 우주의 군사화를 부르짖어온 대표적인 싱크탱크이다. 럼스펠드는 이를 주도해온 인물로서, 그 공로로 1998년에 안보정책센터로부터 '불꽃의 유지자(Keeper of the Flame)'라는 상을 받기도 했다.
이들 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군산복합체 및 정부 감시 활동을 벌여온 세계정책연구소의 윌리엄 하퉁 소장은 "부시 행정부 전체적으로는 외교안보팀의 전체 임명자의 약 3분의 2가 주요 군수산업체의 간부, 대주주, 컨설턴트 출신으로 짜여져 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MD를 비롯한 우주의 군사화 프로젝트가 부시 행정부 안팎의 '사적인 이익'과도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체니와 럼스펠드가 은밀히 주도하고 있는 우주 정복 계획의 실체와 목적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럼스펠드가 위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작성한 보고서에 비교적 상세하게 나와 있다.
럼스펠드는 1998년 7월 탄도미사일 위협 평가 보고서를 통해 MD 구축 필요성을 역설한데 이어, 장관 취임 직전인 2001년 1월에 우주위원회 보고서를 작성해 미국의 우주지배 전략을 총화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이 보고서에서 미국이 우주를 군사적으로 선점하지 않으면 '제2의 진주만 사태'를 겪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우주공간에서 군사적 우월성을 확고히 할 필요가 있고, 대통령은 우주무기를 배치할 권한을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1967년 체결된 우주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조약(Outer Space Treaty)에 미국이 제한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강조해, MD 구축을 위해 ABM 조약을 파기했듯이, 우주의 군사적 지배를 위해 우주조약에 제약을 받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미소간의 우주 군비경쟁
물론 이러한 미국의 우주 구상은 부시 행정부 들어서 새롭게 나온 것은 아니다. 미국이 군사적인 차원에서 우주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 것은 소련과의 핵군비경쟁이 첨예해진 1950년대부터이기 때문이다. 특히 1957년 10월 4일 소련이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호 발사에 성공하자, 소련이 머지 않아 지구 궤도상에 무기를 배치해 미국을 공격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해졌다.
소련에게 한발 뒤진 미국은 우주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1958년 1월에는 한달전 실패의 쓴맛을 뒤로하고 익스플로러 1호를 궤도에 올려놓는데 성공했고, 그 해 7월에는 국가항공우주국(NASA)을 창설했다.
NASA는 공식적으로는 우주의 '상업적' 이용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으나, 민군연락위원회와 대통령을 의장으로 하는 국가항공우주위원회를 별도로 창설해 NASA와 국방부를 연계시키도록 했다. 이로써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이어 우주 무기에서도 미소간의 군비경쟁은 첨예해지기 시작해진 것이다.
미국과 소련이 처음으로 시도한 것은 핵무기를 이용해 ICBM을 요격하는 방안이었다. 이러한 계획하에 1958-62년에 걸쳐 미국은 7차례, 소련은 4차례에 걸쳐 우주 공간에서 핵실험을 단행했다. 그러나 우주 핵실험은 군사적 목적을 충족시키기는커녕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곳곳에서 라디오 및 TV 수신에 차질을 빚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정전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특히 핵폭발로 방출되는 고농도의 전자 펄스는 군사정찰위성의 작동을 일시 불능으로 만들기도 했다. 쿠바 위기 당시에 미소간의 우주 핵실험 경쟁은 정점을 달했는데, 이러한 핵실험이 상대방의 핵공격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는 경고가 제기되기도 했다.
이렇듯 우주 핵실험이 군사적 목적은 충족시키지 못한 채 많은 문제점을 나타내면서 미국과 소련은 우주의 군사적 이용에 제한을 두는 방향으로 선회하기 시작했다. 1963년에는 제한핵실험금지조약에 우주에서의 핵실험 금지를 포함시켰고, 1967년에는 UN 결의안 형태로 우주의 군사적 이용을 금지하는 조약이 통과되기도 했다.
이 조약을 통해 우주의 이용은 민간용으로 제한하고,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군사기지 및 무기 배치가 금지되었다. 또한 1972년 ABM 조약을 통해서는 미소 양측이 우주 배치 미사일방어망(MD) 구축을 금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부시 행정부는 우주조약과 ABM 조약, 그리고 포괄핵실험금지조약(CTBT) 등 MD와 우주의 군사적 이용에 제약을 두고 있는 국제조약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가속도 붙고 있는 미국의 우주지배 전략
세계 유일 초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미국은 자신의 패권적 지위를 유지·강화하는데 우주에 대한 군사적 지배를 강력한 수단으로 인식해오고 있다. 유럽이 지난 수세기 동안 '바다'를 점령함으로서 지구를 지배할 수 있었듯이 인류 최후의 전장으로 일컬어지는 우주를 지배함으로써 전지구적 패권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의 군사적 지배에 대한 미국의 계획이 구체화되기 시작한 시점은 미국 우주사령부가 1996년 '비전 2020'을 발표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 보고서는 "우주공간을 장악하는 것은 수세기 전 세계 각국이 자국의 상업적 이익을 보호·증진하기 위해 해군을 강화한 것과 마찬가지"라며 "유럽의 제국들은 바다를 장악함으로써 세계를 장악할 수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이 보고서는 "세계경제의 통합은 지속될 것이며, 부국과 빈국의 간극은 더욱 커질 것"이라며, "우주공간과 이를 통한 지구 장악을 통해, 미국은 빈국의 불만을 묶어둘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전쟁과 분쟁의 씨앗인 빈곤문제를 '치료'하기보다는 힘으로 '억압'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비전 2020'은 1998년 발간된 '장기계획서(Long Range Plan)'를 통해 구체화된다. 이 보고서에서는 미국의 우주 전략의 지침으로 △정보전에서 우주의 중요성 인식 △무한한 우주산업의 성장 가능성 인식 △우주는 권력의 군사적, 경제적 도구로서 부상하고 있다는 점 △미국은 도전받고 있다는 점 △적의 우주 접근 예방 등을 제시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군사작전 원칙으로는 △미군의 우주 지배력 강화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면밀한 감시 및 개입 △우주군과 타군간의 통합 증대 △민간에서 활용되는 우주기술 군사적 이용 강화 등을 추진키로 했다.
미국이 우주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이유는 미국 스스로도 밝히고 있듯이,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를 강화하고, 혹시 이에 대한 도전 세력이 나타날 경우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를 통해 도전 세력을 물리치기 위한 것이다.
미국이 계획대로 우주무기 개발 및 배치에 성공할 경우, 미국은 군사력 행사에 있어서 거의 '무한한 자유'를 획득하게 된다. 우주 공간에 MD를 배치해 날아오는 미사일을 요격하고 지표면에 있는 목표물을 우주레이저로 공격하며 적의 첩보 위성을 우주레이저나 우주지뢰로 파괴하는 등, 미국은 다양한 무기체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MD는 우주 지배를 향한 첫걸음
럼스펠드 보고서에서도 명시되어 있듯이, 부시 행정부가 사활을 걸고 추진하고 있는 MD는 우주를 군사적으로 선점하는데 '사전작업'의 의미를 갖고 있다. 이는 부시 행정부가 왜 MD에 사활을 걸고 있는지, 그리고 이를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 왜 대북한 비타협주의를 고수하면서 '북한위협론'을 활용하는데 몰두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패트리어트 최신형인 PAC-3 → 이지스함에 SM-3를 장착하는 해상방어체제 → ICBM으로부터 미국 본토를 방어하는 지상방어체제 → 보잉 747기에 레이저를 장착해 적의 미사일을 이륙단계에서 요격하는 '항공기탑재레이저(ABL) 등으로 이어지고 있는 부시의 MD 구상의 총화는 우주에 레이저를 장착한 무기를 배치하는 'SBL' 프로그램이다.
SBL은 미사일요격 뿐만 아니라, 적 위성 파괴, 지구상의 목표물 공격까지 수행할 수 있다. 미국 매파들에게는 '꿈의 무기'인 것이다. 그러나 SBL을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핵연료외에 대안이 없다는 것이 미국 정부 연구기관을 비롯한 전문연구기관의 공통된 결론이다.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는 SBL의 전력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은 핵연료밖에 없다는 것이다.
SBL에 대한 환경 평가는 이러한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독립적인 연구자들은 SBL이 엄청난 양의 독성물질을 유출시켜 환경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는 거대한 핵폭발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이유로 '反 스타워즈' 활동가들은 SBL을 "죽음의 별(Death Star)"이라고 부르고 있다.
미 국방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SBL 개발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미국은 전 지구를 아우를 수 있는 20-30개의 레이저 기지로 구성되는 우주 작전 네트워크의 배치 단계에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점은 2020년 전후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필자는 2002년 5월 미국에서 열린 국제평화대회에서 미국 군수산업체들이 만든 '2010년이후의 한반도 상황을 염두에 둔 전략 시뮬레이션'을 본 적이 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휴전선 바로 위에서는 조기공중경보기(AWCS)와 U-2 정찰기 그리고 무인정찰기인 글로벌 호크가 북한 전역을 24시간 감시한다. 지구 저궤도에는 우주적외선시스템이 배치되어 첩보위성과 함께 북한 전역을 마치 사진 찍듯이 촬영해 이미지 파일을 만들어 전투지휘통제통신본부(BM/C3)로 보낸다.
무인폭격기인 프레디터는 이상 징후가 포착되자마자 북한의 군사 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출격 대비를 갖추고, 목표물 지정 정보는 지표면으로부터 수백킬로미터 상공 위에 배치된 전지구 위치추적장치(GPS)로부터 제공받는다. 오산 미공군기지 등에는 패트리어트 최신 개량형인 PAC-3가 북한의 미사일 요격 준비를 갖추고, 동해에는 일본으로 향하는 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해 이지스함이 떠 있다.
휴전선 인근 상공에는 북한의 미사일을 발사단계에서 요격하기 위해 레이저를 탑재한 보잉 747기(ABL)가 떠 있고, 우주 상공에는 미사일 요격뿐만 아니라 유사시 지표면 및 지하시설 목표물을 파괴하기 위해 우주레이저무기(SBL)가 북한을 주시한다."
엉뚱한 얘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부시의 대북정책은 이처럼 미국의 세계전략 차원을 넘어 '우주전략'과도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럼스펠드가 1998년 북한을 최대 위협 국가라고 명시하면서 MD 조기 구축을 강력하게 주장한 보고서를 내고, 뒤이어 우주보고서를 통해 우주지배 전략의 사전단계로 MD를 명시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이는 럼스펠드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는 것 역시 중요하다. 두 보고서는 미 의회가 위원회를 구성해 럼스펠드를 위원장으로 임명해 작성된 것일 뿐만 아니라, 정부-의회-싱크탱크-언론 등 강력한 '군비증강 네트워크'에 힘입어 추진되어온 것이기 때문이다.
"전지구적 저항에 나서야"
모든 형태의 군비경쟁이 그렇듯이, 미국이 인류 최후의 금기를 깨고 생명의 근원인 '우주'를 점령하겠다는 계획에 박차를 가함으로써, 향후 군비경쟁은 우주에서도 첨예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과 유럽연합 등이 미국의 '우주 독식'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 국가와 유엔은 미국이 우주조약과 달조약을 준수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여왔다.
미국의 우주점령과 강대국간의 우주에서의 수십년 후의 일일지 모르지만, 인류는 분명 중대한 분수령에 서 있다. 21세기의 프로메테우스가 되겠다는 부시의 위험천만한 불장난을 그대로 둘 경우 미래 인류사회의 불확실성은 더욱더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인류사회는 무분별한 개발과 전쟁 등으로 '생명의 터전'인 지구 환경으로부터 역습을 받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를 주도하고 방치해온 미국은 이를 '생명의 기원'인 우주로까지 확대하려고 하고 있다. 그것도 위험천만한 '핵추진' 로켓과 레이저를 갖고 말이다.
10여년전부터 이러한 미국의 우주지배 전략에 맞서 싸워온 브루스 가그넌 글로벌네트워크 사무총장은 "전지구적 저항만이 부시의 불장난을 막을 수 있다"며, 국제사회의 관심과 참여를 호소하고 있다.
전세계 120여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글로벌네트워크는 4월말 미국에서 대규모 '스타워즈 반대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 또한 전세계의 반핵평화운동가들은 4월말부터 5월초까지 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 회의가 열리는 뉴욕에 모여 1990년대 이후 최대 규모의 '반핵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 이러한 반전반핵 운동이 부시를 멈추게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미국의 우주 전략에 대한 한글자료는 평화네트워크 홈페이지(www.peacekorea.org), 영문자료는 글로벌네트워크 홈페이지(www.space4peace.org)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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