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년 새해 벽두부터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여성들이 잇따라 등장해 주목을 끌고 있다. 경찰 첫 여성경무관이 탄생하고, 의대 역사상 첫 여성학장이 선출된 데 이어 YWCA 역사상 최초로 30대 사무총장이 선출되는 등 갑신년 벽두부터 희망찬 소식이 이어지고 있는 것.
만 20세의 나이로 순경 여성 공채 1호로 경찰에 입문한 김인옥(52)씨는 지난 9일 최초의 여성경무관으로 승진해 경찰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티켓다방 척결, 비행청소년 계도 등 여성·청소년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온 김 경무관은 서울 방배서장으로 재직하면서 직원 500여 명과 배우자의 생일을 일일이 챙기는 등 여성경찰의 장점을 십분 발휘했다.
경찰계의 여성 바람은 의료계에도 불어닥쳤다. 직선제로 치러진 의대 학장 선거 최초로 여성학장으로 선출된 박인숙(55) 서울아산병원 교수는 갑신년 의료계의 최대 화제인물이 됐다. 박 교수의 학장 선출은 직선제로 학장을 뽑는 의대가 드문 국내 현실에 비쳐볼 때 의료계의 역사를 재정립하는 큰 사건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성단체에는 젊은 여성의 바람이 불었다. 국내 대표적인 여성단체 YWCA 82년 역사상 최초로 30대 사무총장이 선임되어 화제를 일으킨 것. 이화여대 신방과 재학 때부터 YWCA 활동을 해온 유성희(35) 신임사무총장은 국제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국제적인 감각을 선보여 일찌감치 YWCA를 이끌 차세대 지도자로 꼽혀왔다.
여성 최초의 역사를 썼던 인물의 명예로운 퇴진도 화제다. 2002년 1월 건국 이래 최초의 여성장군으로 진급해 화제를 모았던 양승숙(53) 준장은 2년 1개월 동안 간호사관학교장 임무를 훌륭하게 소화한 후 지난 9일 명예롭게 전역했다. 양 준장은 정계에 입문해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군인정신을 정치권에 심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여성 최초의 역사를 쓰는 인물들이 늘어나고, 기업의 여성채용 비율이 신년초부터 급격히 확대되는 등 여성들이 ‘갑신년의 신바람’을 주도하고 있다.
| | “왜곡된 의료체계 개선 노력” | | | 첫 직선 여성 의대학장 박인숙 교수 | | | | 서울아산병원 소아심장과 박인숙(55) 교수가 우리나라 ‘최초의 직선 여성 의대학장’으로 선출되어 또 하나의 금녀의 벽을 깼다. 여교수가 의대 학장이 된 적은 있지만 직접 선거로 학장이 된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지난 7일 서울아산병원, 강릉아산병원, 울산의과대학병원 등 3개 병원 의사들이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울산의대 학장으로 박인숙 소아심장과 교수가 선출됐다.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울산의대 학장 선거에 입후보한 박 교수는 교수들의 직접 투표에서 61.7%의 지지로 선출됐다. 전체 423명의 교수 중 여성교수의 비율이 10%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15년 동안 울산의대 교수 겸 아산병원 겸임의사로 재직해온 박 교수는 학장에 출마하면서 서울, 울산, 강릉을 오가며 동료 교수들을 한사람씩 모두 만났다. 그들과 울산의대의 비전에 대한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고 자신을 밀어줄 것을 호소했다. 박 교수는 이 과정에서 시대가 바뀌었음을 실감했다고 한다.
그는 “10년 전쯤 내가 의대학장이 되겠다고 했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내 자신의 노력이 50%라면 여성에 대한 편견이 없어진 사회의식의 변화가 50%는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최초의 직선 여성 의대학장이지만 박 교수는 주류 여성계의 시각과는 조금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 그는 “여자니까 뭐 한다는 식의 특혜는 없어야 한다”면서 “여성이 남성과 똑같이 경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위로 올라갈수록 주요보직을 맡기지 않는 의학계의 현실에서 ‘직선 의대 학장’에 정면 도전한 것도 그 특유의 정공법이다. 그는 “선거라는 공정한 경쟁토대가 있었기 때문에 출마를 결심한 것”이라면서 “내심 더 높은 지지율을 기대했다”며 자신감을 표했다.
박 교수는 공약으로 “울산의대를 더 좋게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현재 서울아산병원, 강릉아산병원, 울산의과대학병원 등 3개 병원의 의사가 교수를 겸임하고 있는 울산의대지만 병원의 유명세에 비해 울산의대는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대학이 재정적으로 병원에 종속되어 교수는 연구와 교육보다 진료에만 매달려야 하는 것이 우리나라 의료계의 현실”이라면서 “이런 의료체계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특히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의료계의 여러 문제점도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보고 있다.
박 교수는 소아심장과 전문의다. 학장이 되면서 그는 의사로서의 책임감을 더 강하게 느끼고 있다. “선천성심장병 연구에 30여 년을 매달려 왔다. 심장병 전문의로서 활동을 계속하는 것은 의사인 나와 환자와의 약속”이라며 애착을 보였다.
임기 2년의 학장으로서 그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서울과 강릉, 울산을 오가며 진료와 교육에 자신의 열정을 쏟아나갈 것이다. / 우먼타임스 송옥진 기자 | | | | | |
| | | “양성평등사회 총선 통해 실현” | | | 대한YWCA 신임 사무총장 유성희씨 | | | | 지난 주 한국 여성계는 30대의 유성희씨(35)가 지난해 12월 31일로 임기가 만료된 대한YWCA 김은경 사무총장의 뒤를 이어 신임 사무총장에 선임되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것도 실행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결정된 것이다.
82년의 역사를 거치는 동안 대한YWCA 회원의 평균 나이는 40~50대의 중년으로 세계 YWCA가 강조하는 ‘20대의 YWCA(이하 Y)’가 아니었다. ‘세대교체’로 표현되는 유 총장의 선임은 그래서 대한YWCA가 그 이름답게 젊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품게 한다.
그러나 유 신임총장은 “젊은 제가 되었다는 것은 세대교체가 아닌 세대계승으로 Y의 전통을 잇는 것과 혁신을 같이하라는 의미”라고 자신의 총장 지명을 평가했다.
지난 9일 대한YWCA 회관에서 있었던 이·취임식에서도 젊은 유 총장은 어머니뻘의 임원들과 회원들의 각별한 축하를 받았다. 회원들은 유 총장에 대해 굳이 흠을 잡자면 ‘나이가 젊다는 것’뿐이라며 유 총장의 총장 선임을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유 총장은 “처음 어른들 모시고 일을 할 땐 쓰는 말이 달라 세대차도 느끼고 말이 빠르다고 지적도 받았지만 이제는 내가 젊은이들과 세대차를 느낀다”며 나이를 부담스러워 하지 않았다.
유 총장이 선임된 데는 그의 지도력과 활동력이 높은 평가를 받은 때문이다. 1987년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해 Y 회원으로 인연을 맺은 그는 90년 대학Y 전국협의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91년 졸업과 함께 Y에 정식 입사해 청소년부, 국제부, 사회문제부, 대학부 등에서 정력적인 활동을 펼쳐왔다. 지난 95년 7월부터 99년 9월까지는 세계 YWCA 실행위원으로 선출돼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을 높이기도 했다.
유 총장은 “올해 외부적으로는 총선 대비 활동을 하고, 내부적으로는 유아교육 시범 어린이집, 주부생활공동체, 회원운동 등에 주력할 계획”이라며 의욕을 보였다. 총선여성연대에서 활동하고 있고 다수의 지역 Y 회원이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에서 선정한 여성후보 101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유 총장은 “궁극적으로 50 대 50의 양성평등사회를 만드는 것이 Y의 목표이니 만큼 후보들이 올바른 여성정책을 갖도록 유도하고 젊은 유권자가 선거에 참여하도록 운동을 펼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회활동을 하는 여성으로서, 두 아이의 엄마로서 가정과 일의 양립이 어려웠던 유 총장은 보육사업에도 중점을 두고 있다. 현재 Y가 운영하는 31개 어린이집의 환경을 향상시키고 내실을 강화하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젊은 유 총장의 선임은 차기 여성지도자를 발굴했다는 점에서 여성계 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유 총장 자신도 앞으로 다른 여성단체의 젊은 지도자들과 교류를 확대해 여성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갈 계획이다. / 우먼타임스 송옥진 기자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