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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 코앞에 왔습니다. 우리 집은 오늘 시골에 있는 아이들의 큰집으로 떠납니다. 본격적으로 시작될 귀향행렬에 앞서 길을 나서려는 것입니다. 어쩌면 덜 막히는 도로를 달리는 행운을 누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며칠 전부터 한복은 당최 입으려 들지 않아 늘 새 것을 입어 보지도 않고 작아지도록 하여 애를 태우게 하던 딸아이가 한복을 사달라고 조릅니다. 반신반의하면서 큰맘 먹고 한 벌 사 주었더니 좋아라 하면서 세배 드리는 법을 가르쳐 달라 합니다.
시골 큰집에는 여든을 훌쩍 넘기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시고 외가에는 외할머니가 계시다는 것을 염두에 둔 모양입니다. 해마다 아이들의 큰어머니도, 큰아버지도 아직 자기네들은 젊다면서 영 세배를 받지 않으려 하시기 때문에 할머니, 할아버지께만 세배 드려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아이들입니다.
"채홍아, 진수야, 올해는 꼭 큰엄마, 큰아빠, 작은엄마, 작은아빠께도 세배 드려야 한다."
"치, 내 한복은 새것도 아니잖아. 누나만 새것 사 주고…."
우리집 '삐질이' 아들 녀석은 끝내 울음을 터뜨리려 합니다. 말짱한 새 한복이 있는데도 누나가 새로 얻어 입은 설빔을 질투하나 봅니다.
"엄마, 세배 드릴 때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만 하는 거예요?"
"아니, 할머니 할아버지 연세가 많으시니까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라는 인사를 드리면 더 좋지."
"아, 그래요 엄마, 저는 오늘 처음 알았어요."
머리에 아얌까지 쓰고 오늘 우리 채홍이는 기분이 날아갈 듯한가 봅니다.
딸아이는 늘 바지만 고집하였습니다. 아기 적부터 치마라고 생긴 것을 입혀 보려 들면 늘 울고불고 난리가 납니다. 그러던 아이가 없는 한복을 졸라서 한 벌 얻어 입고는 저리도 좋아합니다. 아무래도 철이 들려나 보다고 생각하며 피식 웃습니다.
언제 아이들이 이렇게 커 버렸는지요. 이제 딸아이는 우리 나이로 열 한 살, 아들은 열 살이 됩니다. 시골 큰집의 아이들도 다들 커서 이제는 대학생이 둘이나 됩니다. 세월이 이리 빠르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중년을 넘긴 나이 탓이 아닌가 싶습니다.
설을 쇠러 고향으로 향하는 아이들은 무척이나 신이 나 있습니다. 시골에 닿으면 비료 포대를 썰매 삼아 언덕을 구르며 눈썰매 신나게 탈 터이고 얼음 언 물가에 나가 팽이치기를 하겠다고 벼르고 별렀으니까요.
모두들 고향으로 향하는 와중이거나 고향 꿈에 부풀면서 설맞이 준비에 한창일 터이지요? 귀향길 안녕히들 다녀오세요. 설맞이 잘 하시고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