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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국회앞에서 1인시위를 갖고 있는 재독 송두율 교수의 장남 송준씨.(오른쪽) 그의 옆에는 어머니 정정희씨가 함께 하고 있다.
20일 국회앞에서 1인시위를 갖고 있는 재독 송두율 교수의 장남 송준씨.(오른쪽) 그의 옆에는 어머니 정정희씨가 함께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오는 2월 6일부터 열리는 '제54회 베를린 영화제'에 아버지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경계도시'가 재상영됩니다. 이번엔 아버지의 현재 상황 등이 담긴 10분의 소개 영상물도 함께 상영될 예정입니다."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구속된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59. 뮌스터대. freesong.jinbo.net) 교수의 부인 정정희씨가 지난 13일 국회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인 데 이어 20일엔 첫째 아들 송준(29)씨가 시위 주자로 나섰다.

오는 25일 출국 예정인 송씨는 위와 같이 말한 뒤 "영화 상영과 함께 팸플릿 3만 부를 찍어 각국의 기자들과 영화 관계자들에게 돌릴 것"이라며 "(팸플릿에는) 아버지 구속 당시 수갑 찬 사진과 이에 대한 설명, 하버마스와 귄터그라스의 탄원서 등이 소개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송씨의 이날 시위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시민모임'(www.antikukbo.net. 이하 시민모임)에서 233번째 계속하고 있는 '국가보안법 폐지 국회 앞 1인시위'의 일환이다. 이날 시위는 20일 오전 11시부터 1시간동안 진행됐다.

독일에서 고분자 화학 박사학위를 받은 송씨는 현재 막스 프랑크 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송씨는 지난 12일 2주간 무급휴가를 내고 귀국했다.

추위에 귀볼이 빨갛게 달아오른 송씨는 '국가보안법 폐지하라! 16대 국회는 인권탄압 공범', '제2의 국가보안법 테러방지법 제정 반대'라는 문구가 앞뒤에 새겨진 피켓을 걸고 시위에 나섰다.

시위에는 송씨의 어머니 정정희(61)씨도 함께 했는데 정씨는 한국말이 서투른 송씨의 통역을 자처했다. 시위 내내 계속되는 기자들의 질문에 송씨는 단호한 표정으로 또박또박 대답했다. 다음은 송씨와 기자들간의 대화 내용이다.

- 처음 아버지 구속당시 어떤 마음이었나?
"당시 분노가 치밀었고 대단히 충격적이었다. 사실인지 믿어지지 않았다. 마치 추리소설의 한 장면 같았다. 양심적 학자가 평생 한반도 문제만 연구하고 사셨는데 37년만에 조국에 와서 준 범죄자로 취급받는 것에 아직까지 분노를 삭힐 수 없다. 민주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 아버지와 몇 번 만났고 주로 무슨 이야기를 나눴나?
"한국에 와서 공휴일 말고 매일 아버지를 찾았다. 총 8번이다. 아버지께서는 재판이 진행될수록 자심감을 회복하시는 것 같다. 수구 언론이 거짓을 사실인 것처럼 여론재판을 벌였지만 진실이 밝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면서 기다리시는 것 같다."

- 설날인데 세배도 못 드리게 됐다.
"어릴 때 세배를 드리기도 했는데 37년만에 고국에서의 첫 설날을 이산가족으로 지내게 돼 서글프다. 감방에서 지내시는 아버지가 안쓰럽다. 특히 휴일엔 면회도 안돼 설날엔 아버지께 인사도 못 드리게 됐다."

- 이번에 와서 느낀 한국사회는 어떤가?
"경제적으로 많이 발전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 문화적 축적이 없고 아직까지 극복해야할 문제가 많은 것 같다. 민주국가 대열에 끼기엔 멀었다. 아직까지 국가보안법 희생자가 계속 되는 것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단어 그대로 민주국가로 가기 힘들 것이다."

- 아버지의 공판 과정에서 느낀 것이 있다면?
"검사들이 자리 챙기기에 급급해 비공개로 증인을 세우는 등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국가의 원칙대로 공정한 판단을 내렸으면 한다."

영화 경계도시는...

홍형숙 감독의 <경계도시>는 지난 2002년 만들어진 영화로 한국 정부로부터 간첩 혐의를 받고 30여년 간 입국 금지된 송두율 교수의 상황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다룬 영화다. 이 영화는 지난 해 제53회 베를린 영화제 포룸 부분 특별 프로그램에 초청돼 주목을 받기도 했다.

홍 감독은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번 베를린 영화제 재상영과 관련 "송 교수의 국내 귀국 뒤 상황을 알리는 영상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제에서 특별한 경우 이외에 한 영화가 재상영되는 경우는 드물다. 만약 이번에 <경계도시>가 영화제에 다시 오른다면 송 교수의 현 상황을 전세계적으로 더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송 교수측은 기대하고 있다.

홍 감독은 "경계도시 후속편의 완료지점을 논의 중"이라며 "송 교수의 귀국 뒤 과정은 너무 우여곡절이 많아서 감독으로서 시간을 더 두고 고민이 필요할 것"이라고 속편 작업이 진행중임을 밝혔다.
송씨는 이어 "아버지는 권위를 앞세우기보다 따스한 친구 같았다"며 "더구나 어릴 때부터 남북을 떠나 한반도 통일을 위해 노력하셨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14살 때 독일 통일을 지켜보면서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서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송씨는 또 "여러 언론과 사람들로부터 실망과 충격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아버지를 이해하는 주위 분들과 여러분들의 격려를 받으며 한국의 가능성을 봤다"며 "이런 분들과 힘을 모아 성숙한 사회로 갈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한다"고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고마움의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송씨는 1시간동안의 시위를 끝낸 뒤 "독일에서 1인시위는 생소한 방식"이라며 "짧은 시간이지만 국보법 폐지 운동에 동참하게 돼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송씨 옆에서 함께 시위에 동참했던 어머니 정씨는 시위가 끝난 뒤 "아들이 이 자리에 선 것 자체가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며 "이 추운 날씨에 남편은 감옥에서 아들은 국회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는 것이 모순 아닌가"라고 한숨을 쉬었다.

이들은 곧바로 오후 1시30분부터 예정된 송 교수의 특별 면회를 위해 서울구치소로 향했다. 송씨는 한국에서 설날 연휴를 보낸 뒤 25일 독일로 떠날 예정이다.

ⓒ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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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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