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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딴 곳에 자리잡은 시댁 풍경
ⓒ 이임숙
설 추위가 사람을 설설 기게 만들었습니다. 남들보다 일찍 서둘렀기 때문에 별로 막히지 않은 귀성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이튿날부터 바짝 서두르는 추위 탓에 집이 걱정이었습니다. 일기예보는 평년을 훨씬 밑도는 수은주를 가리키고 있었고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고도가 높은 외딴 곳에 위치한 시댁은 창을 훑는 바람소리가 여간 을씨년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추위도 타지 않는지 신나게 눈밭을 뒹굴다 들어와 장갑이며 옷에 붙은 눈을 집안에 털어놓습니다. 세배 손님들도 어지간히 치르고 하나, 둘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도 돌아가고 맏동서가 친정 나들이하고 올 동안 시어른 모시기 교대 당번서는 일도 마쳤습니다.

친정에서 여동생이 언니 얼굴 좀 보고 가려고 설 당일부터 기다리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설 이튿날도 역시 추운 날씨여서 느지막이 점심해 먹고 청주에 있는 친정으로 향합니다. 아이들은 또래이거나 어린 외사촌들을 만날 생각에 들떠 있습니다. 복개 된 길 쪽으로 나 있는 친정 뒷문은 언제나 개방되어 있습니다.

살그머니 들어섰더니, 강아지 한 마리가 쪼르르 달려나오고 어떻게 아셨는지 어머니께서 반갑게 달려 나오십니다. 남동생네, 여동생네 식구들이 함께 뒤엉키니 한바탕 떠들썩한 소리에 좁고 낡은 친정이 들썩들썩합니다. 주방에서는 올케 혼자서 손님 맞을 준비로 바쁜 듯합니다.

"오셨어요? 그나저나 걱정이네요. 저희 집 보일러가 터져서 오늘 밤 여기서 지내야 하는데 집이 좁아서 어떨지 모르겠네요."

친정은 앞집, 뒷집에 가려 보이지 않을 만큼 푹 꺼진 낡은 집입니다. 집 지은 지가 벌써 30년도 훨씬 넘었지만 수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거기다가 집터의 반은 카센타에 세를 주고 나머지 반은 두 칸 방에 외풍 센 거실과 청국장 냄새 진동하는 주방이 다입니다. 친정어머니는 장작불에 콩을 삶아 청국장을 만들어서 납품하는 일을 하시기 때문에 어쩌다 한번씩 들르는 친정은 언제나 청국장 냄새가 진동합니다.

친정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까탈스런 큰딸 오기 전에 냄새 덜나게 청소도 말끔히 하신다지만 숨쉬기가 불편할 정도로 청국장 뜨는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제발 이제 이 일 좀 그만 두시라고 해도 어머니는 눈도 꿈쩍 않습니다. 부지런히 일을 많이 하신 탓일까요? 친정어머니의 성품은 아직까지도 잔뜩 풀먹인 빨래처럼 빳빳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맏딸인 저와는 언쟁이 잦은 편입니다.

저녁 식사 후, 오랜만에 만나는 동서, 처남, 친정어머니까지 합세해서 동네 횟집에서 1차를 하고 노래방까지 들렀다가 새벽 1시가 다 되어서야 모두들 집으로 돌아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집이 너무 비좁습니다.

옛날 집들은 방이 왜 이리 좁은 걸까요? 건넌방은 남동생 부부와 조카와 친정어머니가 함께 자기로 했고 안방은 아무리 많이 잔다고 해도 너다섯 명 잠잘 공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집 아이들과 나, 여동생네 아이 둘과 여동생 이렇게 여섯이 자면 모로 세워 누워야 간신히 누울 공간이 됩니다.

▲ 무심천변 풍경
ⓒ 이임숙
남자들은 할 수 있나요? 뜬내 진동하는 주방에서 자라고 할 수밖에요. 그런데 문제는 남편입니다. 스쳐 지나가는 말로 처남네 집 보일러가 터졌다고 일렀으니, 하룻밤 날밤을 새더라도 군말 않고 주방에서 지냈으면 오죽 좋았을까요? 글쎄 여관에서 자겠다고 그 밤에 혼자서 집을 나서지 뭡니까?

저는 처음에는 동서끼리 나서서 여관에 잠을 자러 간 줄 알고 그도 괜찮겠다 싶었는데 무던한 성격의 아이들 이모부는 주방에 자리 깔고 이미 누웠고, 소동의 낌새를 알아챈 여동생이 자기가 주방에서 남편과 함께 자겠노라고 나가 버립니다. 그제서야 사태를 알아채고 남편 휴대폰으로 전화를 해댔지요.

"사람이 왜 그렇게 너그럽지가 못해! 빨리 들어와. 하룻밤 좀 불편하게 지내면 안 돼? 다들 잠 못자고 기다리니까 알아서 해!"

고함을 치고 얼마 안 되어서 미안했는지 남편이 아무 소리 못하고 들어왔습니다. 이럴 때 사람 성품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일까요? 친정어머니는 "맏사위가 저럴줄 몰랐다" 하시고 나는 나대로 친정 식구들 보기가 민망했습니다. 이튿날 아침이 되자 남편은 민망한 얼굴로 귀경을 서두르고 매섭기로 소문난 친정이 자리한 무심천 뚝방 찬바람도 좀 잦아들어 있었습니다.

귀경길은 그리 붐비지 않았습니다. 덜 풀린 날씨 탓에, 날밤을 새운 탓에 몸도 피곤했지만 그동안 모르고 지낸 남편의 부정적인 성품을 보아 버려서인지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집에 도착해서 막 우리집 앞에 섰는데 앞집 빌라에 사는 사람이 불러 세웁니다.

"몇 층에 살아요?"
"3층인데요."
"그럼 4층 사람 보면 말 좀 일러주세요. 앞집 빌라에 사는 친정어머니 댁 보일러가 얼어 터져서 저것 좀 보세요. 저 고드름 기둥 보이지요? 빨리 수리 해 줘야지 우리가 불편해서 못살겠네요."

▲ 고드름 기둥이 생긴 빌라
ⓒ 이임숙
이번 한파로 소동을 겪은 집이 곳곳에 눈에 띕니다. 우리 위층 집은 친정과 마주 보고 앞 뒤 다세대 주택인 빌라에 살고 있는데, 친정 보일러가 터져서 한바탕 또 소동을 겪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집에 도착해서까지 친정에서 있었던 소동을 떠올리게 하는 일들이 똑같이 벌어지고 있었으니까요.

어떠십니까? 이번 한파에 별일들 없으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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