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부터 시작된 근대화에 따른 산업화, 도시화로 국내의 가족 모델은 큰 변화를 겪었다. 농업사회에서의 대가족제가 도시화 시대에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던 것. 근대화 시대의 가족 모델은 부모와 자녀 등 4인으로 이뤄졌다. 이후 4인 가족모델이 우리 사회의 주류를 이뤄왔다.
그러나 탈근대화와 함께 근대적 가족모델에도 균열이 생기고 있다. 이혼율 47% 시대는 필연적으로 '한부모 가정'을 낳고 있으며, IMF 이후 장기 경기 침체를 겪고 있는 과정에서 부모 세대가 빠진 자녀 세대만의 가정이나 할머니·할아버지와 손주만으로 이뤄진 가정도 나타났다.
한부모 가정에 대한 정확한 통계자료는 없지만 새로운 가족 형태가 결코 극소수가 아니며 향후 더 늘 것이라는 데 이견을 제기하는 전문가는 없다.
인권의식이 강한 일부 서구국가 중에는 레즈비언이나 게이 부부를 법적 가족구성원으로 인정해 사회보장제도를 누릴 수 있게 하는 사례도 최근 몇 년 사이에 보도된 바 있다. 아이를 낳지 않는 '딩크족'도 늘어가는 추세다. 사회학자들은 혼자 사는 1인 가족도 가족의 한 형태라고 전한다.
이 같은 다양한 가족 구성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대가족제에서부터 기인한 가부장제적 인식으로 인해 이들 가정에 '편모(偏母)가정' '편부(偏父)가정' '결손(缺損)가정'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 말 그대로 온전하지 못한 가정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이 말들은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혈통 중심의 4인가족 모델이 기준점이다.
국내 입양의 가장 큰 난제도 바로 이 같은 가부장제 전통의 혈통주의 때문이다. 또 이 같은 낙후된 관습에서 비롯된 법적인 제약 탓에 국내입양은 여전히 후진적이다.
외국에선 서류상 양·친자기재 이중장치
국내에는 홀트아동복지회, 대한사회복지회 등 4개 기관이 국내입양과 국외입양을 맡고 있고 국내입양만 하는 기관이 1곳이다. 또 전국 각 시·도 아동상담소나 영육아 시설 등 20여 곳에서도 국내입양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홀트아동복지회 자료에 따르면 1957년부터 1998년까지 국외입양은 14만735명인 반면, 같은 기간 국내 입양은 5만6992명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국내입양은 가계계승을 위한 목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남자 아동을 선호해 여자 아동은 국내 입양에서 소외된 시기도 있고, 또 심신의 장애 등 의료 문제를 가진 아동의 입양은 제한됐다.
특히 체면을 중시하는 혈통주의 관습으로 인해 사적입양, 비밀입양이 주류를 이뤘다. 이 같은 입양 형태는 국내입양 활성화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홀트아동복지회 홍보과 이현주씨는 "불임가정의 입양 활성화와 공개입양이 정착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홀트의 신일현 국내입양과장은 "외국의 경우 입양신고를 하면 서류상 법원에서는 양자로 기록되지만 일반 민원서류에는 친자로 기재되는 이중장치가 되어 있지만 우리나라는 '입양 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으로 입양신고를 하면 서류에도 양자로 기록되는 문제점이 있어, 입양부모들이 자신들이 낳은 것처럼 출생신고를 하는 문제점이 있다"며 "이 법에도 외국 같은 이중장치 조항이 필요하고 출산휴가와 같은 기간의 입양휴가가 법에 보장되도록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 “아기가 웃으면 힘든 줄도 몰라요” | | | 이화여대 자원봉사동아리 ‘아가뽀뽀’ | | | |
| | | ▲ 이화여대 자원봉사 동아리 ‘아가뽀뽀’회원들. | |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사랑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누구의 아기인지 상관없이 말이에요."
서울 홀트아동복지회 임시보호소에서 활동하는 자원봉사 동아리 '아가뽀뽀'는 스물한두살의 이화여대 학생들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 대학 초년생들이지만 이들은 아기 엄마 역할을 듬직하게 해내고 있다.
2년 전부터 홀트아동복지회와 인연을 맺은 '아가뽀뽀' 회원 양아름(21·정치외교학과)씨는 매주 한 번씩 이곳을 찾는다. 틈틈이 시간을 내서 봉사하는 자신을 주변에서는 기특하다고 말하지만 양씨는 "기특한 건 오히려 아기들"이라고 전한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요. 속상하고 피곤한 일이 있어도 돌보던 아기가 한 번 싱긋 웃어주면 스트레스가 확 풀려요. 도움을 주는 게 아니라 받는 셈이죠."
아가뽀뽀 회원들은 오전, 오후 팀으로 나눠 일주일에 하루씩 활동한다. 하루 3시간 봉사를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아기들의 모습에 흠뻑 빠진 회원들이 하루 종일 봉사하는 경우가 흔하다. 심지어 M.T를 갔다가도 아기들이 보고 싶어 피곤한 몸을 이끌고 홀트로 달려오는 회원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아기들을 사랑하는 회원들의 이 같은 마음 때문에 그만큼 가슴 아픈 일도 많이 겪게 된다. 두 돌이 다 되도록 입양이 되지 않는 아기를 지켜봐야 할 때, 장애가 있는 아기가 자주 아플 때, 일년이 넘게 돌보던 아기가 외국으로 입양돼 멀리 떠날 때, 회원들의 마음은 미어진다.
"다른 나라로 입양을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6개월 동안 이곳에서 활동하면서 국내 입양은 한번도 보지 못했어요."
길은애(20·교육학과)씨는 얼마 전 외국인 양부모가 미리 받은 사진을 프린트한 티셔츠를 입고 공항에 입국하는 모습을 봤는데 그것이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다고 전한다.
애지중지 돌본 아기들이 자신들이 태어난 나라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과 그 모습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입양과 미혼모 문제를 늘 접하다보니 회원들은 스스로 동아리 내에서 입양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시도한다. 그러나 혈연과 근본을 중시하는 한국의 풍토 앞에서는 무기력해지기 일쑤.
아가뽀뽀 회원들은 "임시보호소에 머물고 있는 아기들도 엄마 아빠가 모두 있는 가정에서 태어난 다른 아기들처럼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과 권리가 있는 아이들인데 사회는 그 단순한 이치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어 너무나 안타깝다"고 입을 모았다. / 우먼타임스 이재은기자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