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명으로 시작했던 1기 아리코리아가 지금은 40여명에 가까운 대규모 아리코리아팀을 꾸려 새로운 항해를 준비하고 있다.
김형준씨(중앙대 연극학과 4년)는 아리코리아 맏형으로 총 기획단장을 맡고 있다. 형준씨는 단순한 배낭여행을 넘어 공연을 준비하는 미래 예술인의 끼를 살리고 싶었단다. 우리와 외국의 전통을 함께 체험해볼 수 있다는 매력. 젊고 공연에 대한 열정이 있다면 그는 한번쯤 세계를 두드려 볼만하다고 강조한다.
“2기 아리코리아는 1기 활동에 이어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를 무대로 보다 수준 높은 전통공연을 선보일 겁니다.”
우리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게 주 목적이라는 김형준씨. 세계인들과 만남을 통해 살아있는 체험을 하고 한국과 세계 문화예술의 공동체를 마련하고 싶다는 형준씨는 “거창한가요?”라며 웃는다.
“우리 것 하면 고리타분하다고 치부해버리잖아요. 우리가 소홀히 하고 있었던 것에 관심을 갖고 젊은이들이 직접 북치며 외국에 우리 문화를 알리고 싶었답니다. 외국에 나가 공연하면서 그동안 외면한 전통의 의미를 알아갈 수 있으니까요.”
413일간의 세계여행, 꽹과리와 우리네 마당극
김형준씨는 2002년, “한학기 등록금으로 끝(?)을 보자”며 세계일주를 기획했다. 그렇게 시작한 다섯명의 결의. 배를 타고, 버스를 타고, 비를 맞으며 걷고, 눈을 밟으며 사서 고생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한 도전이었죠. 학생이다 보니 제일 큰 장애물이 돈이었거든요”
이 때문에 이들은 세계문화탐험대라는 그럴듯한 이름과 달리 인천항에서 중국행 배를 탔다. 땅으로 연결된 곳은 모두 육로로 이동했고, 대륙간 이동에만 비행기를 이용했다. 그렇게 시작한 여행은 중국, 동남아시아, 인도, 유럽, 남미, 북미로 이어졌다.
그들의 여정은 외롭지 않았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 이유는 바로 흥겨운 풍물과 전통마당극 공연 때문이다.
“네팔에서 그 곳에 사는 한국 분을 만났죠. 그 분 말씀이 옛날 티베트 스님들은 춤, 악극, 음악을 통해 자국의 불교문화를 여러 나라에 설법했다고 해요. 또 한국까지 온 스님들이 고향을 그리며 부른 노래가 ‘아리’라는 아리랑의 기원설(說)도 있다는 걸 알았죠.”
그때부터 이들은 한국문화를 알리고 티베트 스님의 넋을 기리고자 아리코리아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아리코리아는 비록 가진 것이 하나도 없지만, 공연을 통해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풍물하고 마당놀이를 준비해 갔어요. 가는 곳마다 공연했고요. 역전이나 길거리에서 주로 소개했는데요. 운이 좋으면 극장에서도 선보일 수 있었죠.”
가장 기억에 남은 공연은 프랑스 아비뇽 ‘세계 연극 페스티벌’에서 벌인 한판이다.
“아비뇽에서 공연하는데요. 사물놀이가 잘 알려졌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공연하는데 사람들 호응이 굉장히 좋았답니다.”
이 덕분에 유럽에서 머무는 5개월 동안 자체 숙식을 해결할 수 있게 됐다. 처음엔 우리 문화를 알려주는 취지였는데 수입이 생긴 것이다. 김형준씨는 “유럽은 공연을 하면 지불하는 문화가 있다”고 말했다.
“돈이 들어오는데 처음에는 받기가 참 ‘거시기’하더라고요. 수거통(?)을 놓을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어요.”
가장 긴 나라인 남미의 칠레를 여행할 때는 무려 50시간 이상을 버스에서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역만리에서 만난 한국인들이 고국의 소리와 마당극을 감상하며 눈물을 닦는 모습을 보고 어느 때보다 뿌듯했단다.
아프리카의 오지에서는 학교에서 주로 잤다. 한국대사관에서도 밥을 많이 얻어 먹었다. 아프리카와 남미는 서로 어울리고 춤추고 즐기는 모습이 우리네 문화와 비슷했다고.
“여정이 길다보니 노트북, 디카를 잃어 버렸거든요. 여권도 분실했고요. 노트북은 남미에서 동포 한 분이 남은 여행기간 동안 대여해 줬죠. 각 나라 친구들은 저희를 신기하게 보면서도 부러워했습니다. 그들과 친해지면 바로 홈스테이에 들어갔죠.”
그렇게 알게된 인연이 수백 여 명. 그저 감사할 따름이란다. 자신보다 나이 어린 친구들을 이끈 김형준씨에게 가장 큰 고민은 새로운 나라들에 대한 적응이었다. 자국 전통문화를 알리는 것은 뿌듯했지만, 당장 오늘의 먹거리와 잠자리가 해결되지 못할 때는 당혹스러웠다고.
“처음엔 국내 지원팀도 기획했죠. 그런데 저희가 외국에 나가있는 동안 국내에 문제가 생겨 도움을 못 받게 됐어요. 저를 믿고 따라온 친구들이 힘들어 할 때는 억장이 무너지고 또 무너졌죠.”
팀원들과 마찰도 생기고 즐거운 일과 동시에 일이 꼬일 때면 당장이라도 귀국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우여곡절 끝에 413일의 세계여행을 마치고 북미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탔을 때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사실상 직접 체험해 보지 않으면 그 나라, 그 사람들을 몰라요. 그들과 부대껴볼 때 자신에게 돌아오는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거든요”
그는 세계일주에서 수많은 산 경험에서 얻은 깨달음은 앞으로 삶에 나타나리라 믿는다.
젊음과 재미!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음이라는 무기 하나만으로도 20대는 충분히 도전을 통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그는 밑천 없이 시작해서 즐거움과 재미를 얻고 덤으로 우리 것의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때문에 2004년 그가 새로이 준비하는 ‘2기 아리코리아(cafe.daum.net/aricorea)’는 전반에 걸친 대대적 업그레이드다. 우선 국내 기획지원·연출·배우로 나눠 체계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공연예술을 전공하는 이들이 중심이 되기에 전통공연의 질을 최대한 향상시키겠다”고 밝힌 형준씨는 이번에는 출정에 나서지 않고 국내에서 기획지원을 총지휘한다. 지난해 12월 전국대학생을 상대로 1차 모집을 통해 20여 명 넘는 단원과 연출 및 기획팀이 모였고 오는 1월 말까지 추가모집을 통해 총 40여 명으로 구성된 6개팀을 꾸릴 예정이다.
각 대륙별로 떠나게 될 2기 팀들은 이미 회화공부와 함께 전통연희에 대한 안무를 대학로에서 시작했다. 안무해 줄 스승을 직접 찾아다녔다는 형준씨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가득하다. 풍물강습, 한국무용/승무, 판소리/민요, 탈춤, 채상소고춤/설장고, 남사당패/연희 등 다양한 전통연희를 전수해줄 스승들은 인간문화재를 비롯, 대학과 극단에서 활동하는 이들이다.
“지금은 2월말까지 기초연습에 들어갔어요. 출국은 7월에 해서 내년 2월 귀국입니다. 준비기간 반년, 현지서 반년이죠. 공연이란 완성도가 높을수록 좋거든요. 어느 정도 체계가 잡힌 5월에는 2개월간 합숙하며 각 대륙의 문화에 맞게 수정할 계획입니다”
1기팀 경험을 바탕으로 불필요한 여정은 줄이고, 당사국 젊은이들과 서로 전통문화를 교류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갖겠다는 형준씨. 그의 바람이 있다면 ‘아리코리아’가 외국인들에게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자기네 문화를 알리고 다니는 공연팀”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라고 한다.
“죽도록 준비하겠습니다!”라고 앞으로의 포부를 밝힌 그는 아직 준비해야 할 것도 많고 도움 받을 곳도 찾아봐야 한다지만 “전통공연, 삶이라는 것도 재밌어야 하지 않겠어요. 젊음과 재미로 1년을 투자해서 많은 이들이 평생 잊지 못할 세계여행을 만들어 보겠습니다”라며 당당하게 웃는다.
아울러 세계를 향하고 싶은 이들에게 추가모집의 문이 열려있다고 귀뜸 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연습실에서는 우리 것에 대한 애착과 세계에 대한 기대로 어색한 이들이 서로 하나가 돼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대학생 전문 주간지 '대학내일(www.naeilshot.co.kr)'에도 송고된 기사임을 밝힙니다. 우리의 전통과 세계여행에 관심있는 분께서는 아리코리아 카페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