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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가는 날이 장날이다.
자명종이 울리지 않은 탓에 늦게 출근하니, 일찍 출근하는 법이 없는 보스가 오늘따라 먼저 나와 있다. 미운 눈도장 하나는 시원스럽게 찍은 셈이다.
그저께도 지각을 하였다. 역시 자명종이 문제였다. 집안에 시계가 몇 개씩이나 되지만 쓸만한 놈이 없다. 개중 낫다는 시계를 골라 시간을 맞추어도 이놈의 변덕은 죽 끓듯 하여 울고 싶을 때 울고 성깔이 나면 울지를 않는다.
새로 산 충전기에 녹색 램프가 켜질 때까지 오롯이 충전시킨 건전지를 먹여준 성의를 생각하면 이놈이 정말 괘씸타. 배실대는 다른 놈들도 싸잡아 얄밉다.
하지만 자명종 탓이 아니다. 마누라 탓이다.
결혼생활 18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까지 난 단 한 번도 내 힘으로 아침에 눈을 떠 본 적이 없다. 천성인지 습관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올빼미과에 속하는 인사라, 마누라의 기상 나팔소리가 없으면 아침에 때맞추어 일어나는 것은 꿈도 못 꾼다.
나와 반대로 마누라는 조기 취침 조기 기상의 습관이 태어날 때부터 굳은 살처럼 배어 있는 처자라 해가 동으로 뜨면 자동으로 눈을 뜨는 신통한 재주(내가 보기엔 이보다 더한 재주는 없다)를 보인다. 그리하여 지금껏 마누라의 남편 깨우기는 한 치의 차질도 없이 십수년을 이어온 것이었다.
한데, 자명종 탓이라니! 이는 당연히 마누라 탓이 아니고 무엇이랴!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을 확률로 나보다 늦게 일어나서, 그것도 연거푸 두 번씩이나 하필이면 장날에 맞추어 남편을 미운 털 박힌 오리새끼로 만들다니. 고약한 마누라 같으니! 칸트의 시간관념보다 더 정확한 기상 습관을 지닌 마누라의 실수에 대해 은근히 부아가 나며 옆에 있으면 살이라도 꼬집어 주고픈 마음이 살포시 솟는다.
하지만, 하지만, 마누라를 탓할 자격이 나에게는 결코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십 수 년을 어김없이 날마다 깨워준 은공을 어찌 두 번의 실수로 상쇄시킬 수 있겠으며, 어찌 감히 탓을 할 수 있으랴!
더군다나 그 두 번의 실수도 고주망태가 되어 야밤에 귀가한, 마누라의 표현을 빌면 ‘기어 들어온’남편을 기다리느라 졸린 눈을 비빈 끝에 일어난 것이니 말이다. 결국 탓할 대상은 명백하다. 자명종도 마누라도 아닌 바로 내가 원인제공자요 과실의 주범인 것이다. 하여 자명종 탓, 마누라 탓은 적반하장도 유분수인 꼴임이 증명되었다.
한데 돌려 생각해 보니 큰 걱정이 뒤따른다. 두 번의 늦잠이 행여 마누라의 건강에 이상을 말해주는 징후이거나 혹은 나이가 들면서 쇠로해가는 조짐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세 아이(남편과 두 아들)를 키우느라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가는 건 아닐까? 못난 남편 뒷바라지에, 넉넉치 않는 살림살이에, 바람잘 날 없는 아이들의 치다꺼리에 점점 피곤해 하는 것은 아닌지?
어김없이 새벽같이 일어나는 그 철두철미한 습관이 점점 자명종에 의존해 가는 모습을 요즈음 들어 간간히 보던 차에 두 번의 늦잠을 대하고 보니 걱정과 더불어 내 자신에 대한 자괴와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가득 밀려온다.
가만히 속으로 되뇌어 본다.
‘아내여. 늦잠을 자더라도 좋으니 제발 아프지만 말아주오. 세월 따라 나이 먹는 것은 막을 수 없다 하더라도 언제까지나 지금처럼 그렇게 내 곁에 머물러 주오.’
하여 오늘부터라도 아내를 기쁘게 해줄 방법을 찾아야겠다. 어떻게 하더라도 아내가 나에게 베푼 내조의 은덕은 다 갚을 수 없겠지만 조금씩 조금씩 갚아나가리라. 그래서 그 시작으로, 오늘 저녁에는 기필코 ‘기어 들어’가지 말고 얌전히 서서 귀가를 하련다. 그리고 오늘 뿐 만 아니라 내일도 모레도…
안드레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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