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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용민
세계 유력언론 중 하나인 WP가 한국의 상황을 집중적으로 다룬 관계로 이 뉴스는 '연합뉴스'를 통해 국내에 전해졌고, 연합의 이 보도는 각 언론사 웹사이트에 '노 자신, 반부패 운동의 표적'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그대로 게재됐다.

연합은 WP 보도를 철저하게 '노무현 기사'로 탈바꿈시켰다. 마지막 문장 역시 '이 신문은 "한국인들은 노에 철저히 환멸을 느껴 검사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냈다"면서 일반 국민은 정치권의 부패를 수사하는 검사들에게 인삼 등 보약을 보내거나 온라인 팬클럽까지 결성하면서 성원하고 있다고 전했다'고 썼다.

'노에 철저히 환멸을 느껴 검사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냈다'로 끝나는 연합 기사를 보면 WP가 작심하고 노무현을 비판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WP 기사의 주제는 그렇지가 않다. WP는 철저하게 검찰독립, 부패한 한국을 유례없이 변화시키고 있는 검찰의 독립성에 대해 심층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검찰 독립의 근원에는 자기 스스로 검찰의 '타깃'이 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소신이 자리잡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기사가 'WP발 반노무현 기사'로 탈바꿈될 수 있는지 의아할 정도다.

WP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불법정치자금 수사가 진행중인 것과 관련) 법학자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하고 있는 12개월 동안 유례가 없을 정도의 검찰 자율을 보장해 한국 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부패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어지는 문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노력은 개혁성향의 검찰을 자신의 문 앞까지 이끌었다('노무현 대통령의 노력'이 주어임을 감안하면 검찰 수사가 노무현 대통령을 향할 정도로 자율적이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이다.

우리는 중·고교 수업시간에서 영문 해석은 처음 몇 문장에 주제가 들어 있다고 배웠다. WP의 앞 두 문장으로 이 글의 주제를 파악하면 '한국 검찰이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부패청산에 나섰고, 검찰이 이렇게 나설 수 있게 된 배경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스스로 표적이 될 정도로 '검찰독립'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가 될 것이다. 맞다! WP 기사 전문을 읽어본 네티즌이라면 원문의 전체적인 주제가 바로 그것임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이어지는 WP의 기사는 검찰 수사의 활약상에 대해 길게 기술하고 있다.

△ 불법정치자금 수사가 진행된 지난 6개월 동안 한국 검찰은 팬클럽이 탄생했을 정도로 국민적 지지를 얻고 있다.

△ 2002 대선 때, 불법자금을 주고받은 혐의로 16명의 정치인, 재계인사 등이 구속됐는데 이 중에는 노무현의 최측근 4명이 포함돼 있다.

△ 16대 국회의원 273명 중에서 33명이 부패 혐의로 기소됐다. WP와 인터뷰 한 검찰 관계자들은 동일하게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이 독립적으로 수사할 것을 지시했으며 우리는 현재 눈치보지 않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고 말했다.

△ 지난해 3월 검사들과의 대화에서 노 대통령은 신뢰받는 검찰이 될 것을 주문했다. 이후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법무장관에 오른 강금실 장관의 지휘 아래 검찰은 재편됐고, 적극적인 법조인들이 정치부패를 담당하는 핵심 부서에 배치됐다.

△ 미묘한 사안에 대해 청와대에서 수사를 담당하는 검찰에 간섭 전화를 넣는 일은 중단됐다. 한 검사는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을 조사한다고 해도 불이익을 걱정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 강금실 장관은 "검찰 수사를 방해하기 위한 외부 간섭을 막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만일 대통령이 '은폐'를 원했다면 불법정치자금에 대한 조사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전에도 전두환, 노태우 등 전직 대통령이 구속됐고,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들이 구속되는 등 검찰이 정치적 사건을 다루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번의 경우는 유례가 없을 정도다. 노무현 후보 캠프와 관련이 있던 16명이 구속됐고, 한나라당 의원 5명 역시 감옥에 있다. 지금도 수십명의 정치·경제인들이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으며 구속될 처지에 놓여 있다.

△ 서울대 박효종 교수는 "우리는 지금 전혀 새로운 검찰을 보고 있다. 과거 정치검찰과는 달리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이 자신의 업무를 맡고 있는 검찰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Thoroughly disillusioned with Roh, 문구 해석 여지 많아

검찰 독립과 관련된 내용을 장황하게 보도한 WP는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검찰의 활약상에 한국 국민들이 큰 호응을 보내고 있다고 소개했다. 온라인 검찰팬클럽을 만든 한 농부를 소개하고 있으며 공정한 수사를 격려하는 시민들이 검찰에게 선물공세를 펴고 있음도 덧붙였다.

WP 기사는 검찰팬클럽을 만든 농부 정성근씨와의 인터뷰로 마무리하고 있다. 정씨는 인터뷰에서 "불법정치자금 수사는 필요하다"며 "더 이상 더러운 정치인들에게 특권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 검찰을 신뢰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WP의 기사를 살펴봤다. 이 기사의 주제는 '불법정치자금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에 국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정치자금에 대해 검찰이 수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검찰독립에 대한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심지어 검찰의 수사는 노 대통령을 향할 정도로 거침이 없다'이다.

그렇다면 왜 연합뉴스는 "한국인들은 노에 철저히 환멸을 느껴 검사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냈다"는 식의 기사를 썼나. WP 기사 본문 중에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된 부정적 표현은 'Thoroughly disillusioned with Roh, South Koreans have applauded the prosecutors'가 전부다. 이 문장을 직역하자면 "노무현 대통령에 환멸을 느낀 한국 사람들이 검사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이다.

'disillusioned'는 분명 부정적 어휘다. 영한사전에는 '환멸을 느끼는'으로 해석돼 있다. 그러나 영영사전에 나와 있는 이 단어는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많다. 옥스퍼드 영영사전은 이 단어를 'disappointed because the person you admired or the idea you belived to be good and true now seems without value'로 해석해 놓고 있다. 우리 해석인 '환멸을 느끼는'의 의미와는 사뭇 다르게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WP 기사의 전체적인 내용은 위에 자세히 기술한 바 있다. 현직 의원이 구속된 수만 놓고 보더라도, 재벌로부터 불법자금을 받은 액수만을 놓고 보도라도 '한국인들이 노에 철저히 환멸을 느꼈다'고 글을 전개하는 데에는 무리가 많다. WP 보도 역시 한나라당의 불법자금 수수 사례 및 그로 인한 구속 사례를 더 자세히 보도한 뒤, 문제의 문장을 삽입했다.

전체적으로 한국 검찰이 권력으로부터 독립해 '성역'으로 인식되던 정치권력, 심지어는 대통령까지 가리지 않게 된 상황을 보도한 WP의 기사를 마치 '반 노무현 기사'인 것처럼 보도하는 것은 언론의 공정성을 묻게 만드는 대목이다.

부패국가로 인식돼 온 한국이 '검찰발 혁명'을 하고 있다는 좋은 기사가 왜 '반 노무현 기사', 부정적인 기사로 둔갑해야 하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덧붙이는 글 | 연합뉴스의 "盧 자신 反부패 운동의 표적"  기사를 보시려면 이것을 클릭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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